: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파리에는 파리만의 시간이 흐릅니다.
거리의 가게는 도대체 언제쯤 오픈을 하고 언제쯤 문을 닫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손님수보다 많은 직원들은 제각기 삼삼오오 모여 수다 삼매경입니다. 수다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자에게만 원하는 물건을 직원에게 물어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230센티 신발 있나요?’ ‘잠시만요 찾아볼게요’
시원하게 말하고 사라진 매장직원은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식당을 찾습니다.
메뉴판을 주고 사라진 웨이터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 옆을 지나쳐도 좀처럼 주문을 받지 않습니다. 웨이터는 또 다른 웨이터와 수다 삼매경입니다. 수다가 끝나면 주문을 받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기 위해, 또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합니다.
‘라디시옹 실부푸레’ ‘라디시옹? 위!’
사라집니다. 웨이터는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리 시청에서 운영하는 관광사무국에 원하는 티켓을 알아봅니다. 사무국 직원은 또 다른 직원과 수다 중입니다. '뮤지엄패스 4일권 찾고 있는데요? 실부푸레' '위! 잠시만요' 다른 곳에 전화를 돌려 한참을 통화하기를 10분. ‘4일권 이랬죠? 이곳에는 없고 이쪽으로 가세요’ 다른 곳을 찾아가라며 손수 지도에 표시를 해줍니다.
분명합니다. 파리는 지구상에서 분명 다른 차원의 시간이 존재하는 도시입니다.
어제의 앙팡루주 시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탈리안 식당의 아저씨의 매력에 빠진 결과입니다. 우리와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주문도 바로 받고 식사도 바로 나오고 계산도 바로 합니다. 맛은 덤으로 좋습니다. 생각해 보니 파리도 이탈리아도 또 다른 시간의 나라입니다. 각자의 시간이 존재하고 이를 인정하게 됩니다. 앙팡루주 시장은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지붕이 있는 시장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이탈리안, 아랍, 아시안, 버거, 샌드위치 등 다양한 음식점이 빼곡합니다. 조금 이른 점심이지만 이미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시장 주변으로 벼룩시장이 열렸습니다. 규모로 보아 방브 시장에 버금갑니다. 파리에는 방브시장, 생투앙 시장 등의 큰 벼룩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은 오래된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파리 시내 곳곳에 빈티지 매장도 많습니다. 낡고 오래된 옷과 생활용품, 가구와 장식품까지 천천히 흐르는 그들의 시간만큼이나 세월이 켜켜이 쌓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그 이유일 겁니다.
이제는 낯설었던 파리 거리들이 익숙해져만 갑니다. 여행이 거의 끝나간다는 증거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에펠탑을 보고 콩코드 광장을 지나 튈르리 공원을 걷습니다. 파리는 진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파리를 떠나면 또 누군가 이곳을 찾아와 빈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튈르리 공원의 비워진 의자에 누군가 다시 찾아와 앉듯 말이죠.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를 지나갑니다. 얼마 전 내가 서있던 긴 입장줄은 여전히 지금도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센강을 따라 걷자니 좋은 날씨 탓에 센강변으로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흐르는 센강에 유람선이 지나갑니다. 얼마 전 내가 손을 흔들었던 자리에 오늘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기분이 아주 묘한 오후입니다.
P.S.
파리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여행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제 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짐을 다시 정리해야겠습니다.
2024년 1월 27일 파리에서 조금은 기쁘고 슬픈 BOX 입니다.
* 브런치북 연재가 30회인 관계로 나머지 여정은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