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이곳은 마치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닌 듯합니다. 이 거리는 괜스레 나를 주눅 들게 만듭니다. 모델 같은 외모의 사람들은 명품을 휘감고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화려한 거리를 런웨이 삼아 반짝반짝 수놓습니다.
'저들은 판타지 영화 속 엘프일까?'
'저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저렇게 돈이 많은 걸까?'
압구정... 이곳은 욕망과 과시의 동네입니다.
한때 뉴스의 헤드라인에 연일 '퇴폐와 향락의 온상지'라고 나오기도 했으니, 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눈뜨고 코베일 것만 같아, 어디 하나, 마음 부치고 발부칠 자리 한 곳 보이지 않습니다.
카페, 레스토랑, 술집, 라운지바... 편집숍... 베이글 가게... 옥션, 팝업스토어. 화려한 낮과 밤의 거리, 이곳은 오직 욕망만 있는, 무언가 소비하지 않으면 이방인이 되는 곳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봄직한 빨갛고 파랗고 노란,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들은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화난 듯… 나 좀 봐달라는 듯 앙! 앙! 연신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아닌, 저들이 사는 저.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압구정을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이 거리를 걸으면, 한 때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은 시절, 그 화양연화 花樣年華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꼭 압구정동에서 오렌지를 들고 다니지 않았더라도, 단 한 번도 이 동네에 오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우린 모두 X세대입니다. 내 멋대로 살아라! 그게 바로 X세대의 사명였습니다.
나도 한때 불꽃같은 사랑이 있었다.
나도 한때 뜨거운 여름날이 있었다.
나도 한때 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압구정은 아직도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마시지 않아도, 놀지 않아도 청춘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니, 그러한 이유로 나는 여전히 이곳 압구정을 그리워합니다.
이른 새벽... 거리와 거리, 골목과 골목에 전날의, 밤의 시끌벅적한 소음의 시간이 지나간, 동트기 전, 조용히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이 그러합니다. 이 시간이 되면 압구정은 소돔과 고모라의 거리도, 고담 시티의 골목도 아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동네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덧씌워진 장막을 걷어올리면, 우리가 보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거리에 달고나를 파는 허리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0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아주 오래된… 대여섯 평 남짓 낡은 문방구 역시 화려한 가게와 상점들이 수없이 들어섰다가 바뀌는 세월의 사이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동네 압구정의 진정한 주인임을.... 그들이 바로 이 동네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원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압구정... 어쩌면 이곳은 욕망과 과시의 동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 또한 보통의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여느곳과 다를 바 없는 동네임을 알게 됩니다.
살면서 평생 한 번도 밟지 않을 동네 같지만.. 바로 옆 청담동에 산지도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이곳 압구정동도 내가 사는 옆동네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내 아이의 친구가 사는 동네, 압구정입니다.
P.S.
광고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는 광고 속 아파트와 사무실은 모두 세트입니다. 뒤돌아 들어가면 나무판자를 덧부쳐 겉만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화려함의 뒷면에 늘 진실된 삶이 있습니다... 라나 뭐라나...
어쨌든, 부자동네입니다. 나… 나도 참 속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