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나니, 미술이 있으라 하니 미술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보기 좋았더라.
태초에 미술이 있었다. 사실이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자신이 거주하는 동굴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다. 그들은 춥고 배고팠다. 변변한 음식도, 따스한 보일러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을 하지 못할 때는 몇 날며칠 배를 곯아야 했고,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이웃 부족에게 몰살을 당하기고 했다. 한마디로 세상 살기 팍팍했던 때다. 그런데도 그들은 벽화를 그리고, 돌을 쪼아대고 뼈를 깎아가며 조각을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먹기 살기도 힘들어죽겠는데 그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았던 걸까?
선사시대 인간들은 보는 게 다였다. 멀리 들판에 사냥감을 찾아야 했고, 맹수나 적이 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야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시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것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렸다. 문자도 없었으니, 후손에게 정보를 남기기 위한 궁여지책의 묘수였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겼다. 그렇다. 인류는 태초부터 ‘호모 스토리텔러’였다. 이것이 바로 벽에 남긴 사냥꾼의 흔적에서, 수천 년 뒤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화폭 속 시선에서, 우리가 늘 이야기를 찾는 이유다. 맞다.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 시선을 19세기로 돌려 한 스토리텔러를 만나보자. 한 화가의 작품 한 점이, 어떻게 수많은 이야기의 실타래가 되는지 당신은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여기 19세기 파리가 있다. 회색빛 하늘 아래, 젖은 돌길이 잔잔한 물비늘처럼 반짝인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 우산을 쓴 사람들은 조용히 거리를 오고 간다. 바스락거리는 빗소리와 규칙적인 말굽 소리,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도시의 숨결이 고요하게 흐른다.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지만, 그 사이엔 우산보다 넓은 침묵의 교감이 흐른다. 그들의 걸음은 바쁘지 않다.
당신은 이 작품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19세기, 파리를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다. 그림은 마치 한 장의 스냅사진 같다. '찰칵!' 순간을 찍다 보니, 화폭의 프레임 안에서 잘려나간 사람도 보인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대체 누굴까? 빙고! 누가 뭐래도 화면 중앙을 차지한 우산 쓴 커플일 테다.
프록코트에 흰 셔츠와 조끼, 나비넥타이와 실크햇 모자를 쓴 적당히 살 오른 콧수염의 신사, 베일 두른 모자와 보석 귀걸이, 모피 코트를 입은 붉은 입술의 여인. 어떤가? 딱 봐도 파리의 부르주아가 틀림없다. 풍요로워 보이는 이 파리지앵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길 건너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곳엔 분명 새로 생긴 물 좋은 카페나 최신 유행의 신상 부티크가 있을 것만 같다. 이들 옆으론 화면에서 반쯤 잘려나간 한 남자가 비켜선다. 그는 우산을 모로 누이며 급히 주인공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사람들은 비가 내려도 뛰지 않는다. 우산을 펼치면 펼치는 대로, 비에 젖으면 젖는 대로, 그것이 일상이라 말하는 듯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 마차, 여인과 노동자들은 모두들 제 갈 길을 걷는다. 찰칵! 그 순간, 화가의 붓이 셔터를 눌렀다. 비 오는 오후, 파리의 한 순간이 고스란히 캔버스에 새겨졌다. 맞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시대의 한 장의 아름다운 스냅샷인 셈이다.
작품의 배경은 파리 북부 뒤블랭 광장과 그 주변의 거리다. 이곳은 프랑스 북부 루앙, 도빌, 노르망디 지역으로 출발하는 생라자르 역과 유흥가가 넘쳐나는 피갈광장, 몽마르트르 언덕 사이에 위치해 있다. 어라? 그런데 180년 전의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왜일까? 19세기,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남작을 시켜 파리를 대대적으로 개조한다. 도시 빈민 문제와 좁은 도로, 낡은 도시 환경을 한방에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파리의 빈민들은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내밀렸고, 그 자리엔 널찍한 대로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섰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형적인 파리'의 모습이 이때 탄생한 거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난 돈 없도 백 없는 사람들은 달동네 몽마르트르에서 빈궁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몽마르트르는 풍차가 돌고 포도밭과 공동묘지만 덩그러니 있는 파리 외곽의 경계였다. 그런 까닭에 방값, 밥값이 아주 쌌다. 가난한 빈털터리 예술가들이 몰려든 것도 다름 아닌 싼 생활비 탓이었다. 게다가 술값마저 쌌으니 예술가들에게는 눈이 번쩍 띄는 핫플레이스 아닌가. 금상첨화다. 이것이 바로 로트렉, 고흐 같은 수많은 화가들이 부어라 마셔라 압생트를 마시며 주정뱅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술과 사람이 넘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맞다! 자연스레 커다란 유흥가가 생겨났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낮에는 물감 냄새와 붓질 소리가 가득했고, 밤이 되면 클럽과 카페에 불빛이 번져나갔다. 파뤼피플~! 19세기의 파리는 부르주아와 도시 빈민들이 한 데 뒤엉킨 변화의 시기였다. 카유보트가 그린 파리의 거리 역시,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중적인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부르주아와 도시 빈민, 예술가와 노동자가 뒤엉킨 풍경.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이들이, 파리의 빗속에서 같은 길을 건너고 있었다.
이제 카메라를 줌인하듯 그림의 프레임을 살짝 당겨보자. 어떤가? 화면 중앙의 커플이 사라지자, 포석 깔린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과 마차들이 보인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렇다. 누가 뭐래도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람들과 뒤블랭 광장이 될 것이다. 프레임을 바꾸자 그저 배경이었던 이들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조금 더 프레임에 변화를 줘 보자. 우산 아래 고개를 숙인 남자가 지긋이 눈을 내리깔고 걸어가고 있다. 수척해 보이는 그의 뒤로 두 여인이 지나간다. 이 남자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여인을 홀로 연모하는 주인공일 수도 있다. 두 여인이 피갈 광장 쪽으로 가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생계를 위해 밤마다 술집과 카바레, 카페에 나가는 비련의 여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아마 남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는 중일 것이다. 프레임이 바뀌는 순간, 한 장면은 수많은 이야기의 문이 된다. 프레임 한번 바꿨을 뿐인데 세상이 달리 보이는 거다.
이제 좀 더 과감하게 옮겨보자. 프레임을 왼쪽으로 옮기면, 우리의 눈에 우산을 받친 두 남자가 들어온다. 완고한 인상의 키 큰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베르 경감일지도 모른다. 그의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빤히 응시하는 남자는 그의 조수일수도 있다. 이들은 얼마 전부터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었고, 앞에 남자는 용의자일지도 모른다. 어떤가? 그렇다면 이것은 스릴러 영화의 한장면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 프레임 밖으로 과감히 나가보면 어떨까? 어떤가? 스틸 사진의 한 장면처럼, 몸이 잘려나간 남자는 르네 마그리트의 모자를 쓴 신사의 뒷모습 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남자는 베일을 쓴 여자와 한때 사랑했던 사이일 수도 있다. 그녀가 애써 피하려는 시선을 보며 옛사랑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사랑스럽게 보였던 우산 속 커플이 실은 불륜 관계이고 이를 알아본 남편인 주인공이 얼음처럼 굳어버린 상황일 수도 있다.
프레임의 시선이 달라지면 주인공도 달라진다. 늘 배경으로만 알던 사람들, 1인자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도 세상을 보는 '틀'이 바뀌면, 주인공이 된다. 1인자와 2인자, A컷과 B컷을 나누는 기준은 실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맞다! 그림을 보는 각도가 달라질 때,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B급 시선은 결국, 존재의 재발견이다. 어떤가? 이제부터 B급 시선으로 세상을 보자! 꿀 떨어지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TIP. 카유보트와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 남긴 유산들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여느 화가들과 달랐다. 다른 화가들처럼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는 평생 먹을 것 걱정할 것 없이 산 사람이다. 금수저다. 그런 까닭에 가난한 동료화가들에게는 기부천사였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손가락 빨고 있던 모네의 첫 번째 작품을 구매해 준 사람도 카유보트다. 다 가졌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늘 어딘가 달랐다. 인상주의 속에서도 묘하게 B급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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