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결점의 존재, 자고로 신을 일컫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신을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라 했다. 한마디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거다. 게다가 이들을 무한한 능력과 지식, 절대선(善)을 가진 존재로 여겼다. 그러니까 전지 전능한 능력자란 말씀. 그런 까닭에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태고 때부터 신에게 자신의 안위를 빌었다.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며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칭송을 위해 신전을 짓고 대리석을 쪼아 조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결점? 전지전능? 정말 그런가? 막상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영 딴판이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인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온갖 여신과 여인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최고의 여신 헤라는 또 어떤가? 질투심으로 매일밤 남편의 외도를 추적하는 사생활 파파라치다. 아레스라는 미치광이 전쟁광도, 디오니소스라는 주정뱅이도 있다. 무결점의 존재라더니,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 아닌가? 어찌 보면 인간보다도 못한 결점투성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점이 이야기가 되고 예술이 됐다. 대체 왜일까? 막장드라마가 세상 무엇보다 흥미롭듯, 신들의 막장이야기가 더 꿀.잼.이었기 때문이다.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자. 아무튼 인간은 자신의 시선으로 신들을 조각했다. 물론 완벽하면서도 완벽하지 않았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여기 아름다운 한 여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만있어보자. 세상모르고 잠든 그녀는 오늘도 오운완을 했는지 아름다운 애플힙을 자랑한다. 여기에 어깨에서 허리로 흐르는 선과 살짝 치켜올린 발끝은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게다가 이건 살아 숨 쉬는 우윳빛깔 피부가 아닌가? 그렇다. 완벽한 인스타 각이다. 미술사에서는 이런 조각을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미美라 뜻으로 관능미 官能美라 한다. 한마디로 아주 섹시하다는 말이다. 어떤가? 별점 다섯 개는 될 법하다.
아름다운 뒷모습에 홀딱 반한 관람객들은 이제 슬쩍 뒤로 돌아 앞모습을 본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일가? 매끈한 엉덩이 곡선을 따라가던 시선은, 갑작스럽게 남성의 성기와 마주친다. 어라? 반전이다. 순간 사람들은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에 얼어붙고 만다. 대체 이 조각은 뭘까?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당황시킨 이 조각은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다. 그녀는, 아니 그는, 아니 아니 이 조각에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헤르마프로디토는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다. 아프로디테가 누군가? 맞다! 바로 미의 여신이다. 그 엄마의 그 자식! 그러니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팔자다. 한데, 그에겐 출생의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뭘까? 사실 그의 부모인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는 모두 제우스의 자식들이다. 그러니까 남매가 낳은 자식이 바로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거다. 그렇다. 폐륜 막장드라마다.
어느 날, 꽃미남으로 자란 헤르마프로디토스에게 연못의 정녕 살마키스가 플러팅을 날린다. 때마침 목욕을 하려던 그를 보고 살마키스가 홀딱 반해버린 거다. 어찌 됐을까? '노노! 관심 없거든!' 쿨하게 거절이다. 끝일가? 천만의 말씀. 이쯤에서 물러날 그녀가 아니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목욕을 하던 순간, 그의 뒤로 다가가 온몸을 껴안아버렸다. 발버둥 치는 그의 뒤에서 집착녀가 된 살마키스는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신에게 기도를 했다. 기도발이 통했는지, 결국 두 사람은 하나의 몸이 돼버렸다. 자웅동체, 이제 환승연애도, 환승이혼도 없게 된 셈이다. 뭐 어쨌든. 이 막장드라마가 어찌나 인기가 있었던지, 헤르마프로티토스의 이야기는 이후 수많은 예술작품으로 탄생을 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특징은 완벽한 미의 추구다. 그러니까, 하나의 몸에 남성과 여성이 공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추구한 최고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나머지 당황이야 어차피 관람객의 몫일테니까!
그리스인들은 신을 닮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면 신의 몸을 닮고 싶어 했다. 떡 벌어진 어깨, 벌크업 가슴, 빨래판 식스팩, 8등신 비율을 동경했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몸을 가꾸고 단련했다. 왜일까?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라 여긴 탓이다. 이쁘고 잘생긴 게 최고라는 거다. 외모지상주의다.
그런 이유도 올림픽 영웅은 완벽한 몸의 신이, 인간의 몸에 강림한 반신반인(半神半人)이었다. 무엇을 했을까? 빙고! 사람들은 영웅의 모습을 깎고 다듬어 조각하고 숭배했다. 맞다. 그들의 기준으로 박태환, 김연아는 0.5는 신인 셈이다. 어떤가? 이쯤이면 오늘 저녁 바로 헬스클럽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기원전 5세기, 조각가 미론은 한 올림픽 영웅을 조각으로 남겼다. 영웅은 원반을 막 던지려는 참이다. 활처럼 휜 허리, 땅을 디딘 단단한 두 다리. 이 정도면 피트니스 잡지의 표지모델이 따로 없다. 그의 몸을 보자. 어떤가? 체지방 4%의 몸이 아닌가? 그렇다. 2,500년 전에도 오운완의 헬스는 계속됐고 인간은 조각을 멈추지 않았다. 어찌나 좋았던지, 히틀러는 이 작품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독일 민족이 원래 그리스 민족과 같다는 정신 나간 과대망상과 함께 이 작품을 사들였다가 2차 세계대전 독일 패망과 그의 죽음 이후 이탈리아에 반환됐다. 자신의 몸이나 가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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