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하룻밤 사이, 크니도스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틀림없다. 분노한 신은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불벼락을 내릴게 뻔했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어마무시한 범죄가 일어난 탓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앞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몸에서 신처럼 아름다운 비율을 찾아냈다. 그에 따라 신을 닮은 완벽한 인간을 조각했고 도시 이곳저곳에 전시하고 숭배했다. 하지만, 그 인간에 '여성'은 없었다. 이 무슨 시나락 까먹는 소린가? 그렇다. 허구한 날 전쟁만 일삼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건강한 남성만을 예찬했다. 그들에게 시민이란 오직 '남성' 뿐이었다. 여성은 외국인이나 노예와 다른 바가 없었다. 에잇! 더러운 세상이다. 그런 이유로, 남성만이 벌거벗을 채로 체육관에서 신체를 단련했고, 그들만이 누드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당연히 미술작품 속 누드 역시 오직 남성만의 특권이었다.
그러던 기원전 4세기, 도시국가 코스와 크니도스에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에게 각각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만들어달라 했다. 싸움판을 만들려 했던 걸까? 어찌 된 일인지 프락시텔레스는 하나는 옷을 입을 모습으로, 하나는 누드로 조각상을 제작했다. 주문한 도시들은 어떤 조각을 원했을까? 맞다. 당연히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였다. 여신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눈엔 식스팩 복근도,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 몸매도 아닌 ‘여성의 누드’가 그저 볼품없고 하찮아 보였던 탓이다. 티격태격 끝에, 우선권을 얻은 코스는 옷 입은 조각상을 차지했고, 크니도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누드 조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상에 홀딱 반하고 만다.
'뭐야? 완벽한 누드란 오직 남성만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 조각이라니?' 소문에 소문이 퍼지며 다른 도시국가의 사람들도 너도 나도 크니도스로 몰려와 누드 조각상을 구경하려 들었다. 그리스의 우주대스타가 된 셈이다. 결국 이 조각상을 위해 신전을 새로 짓기까지 했다. 보통 신전이 만들어진 후 조각상이 채워지지만 주객이 전도된 거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금기되었던 누드 조각이 비로소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여신의 조각상을 지나던 크니도스의 제사장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무슨 일일까? 조각상 옆 기둥에 말라붙은 체액을 발견한 거다. 소문을 들은 크니도스의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전승에 따르면, '한 청년이 조각상에 반해, 몰래 신전에 들어와 끌어안고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결국 너무나 관능적이어서 진짜 인간처럼 욕망의 대상이 된 최초의 여인 조각상이 된 셈이다. 아마도 예술사 최초의 미투 사건이 아니었을까?
한 번쯤, 헬레니즘 (기원전 323~31)에 대해 들어봤다. 뭘까? 신의 완벽함 대신,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을 예술로 드러낸다는 거다. 한마디로, '아몰랑! 이제 신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인간답게 한 세상 살다 죽을란다.'던 시대다. 한데 이상하다. 기껏 좋다고 신을 동경하고 따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신 따위 모르겠다고? 실상은 이렇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그가 누군가? 33살의 나이에 세상 모든 나라를 정복한 위대한 인물이 아닌가? 신의 자리를 차지했던 '한 인간'의 죽음에 사람들은 멘붕이 왔다. 신이라 믿었던 이가 죽자, 신의 완벽함이 무너지고, 그 빈틈을 인간의 고통, 쾌락, 불안의 감정이 채워버린 것이다. 그렇다. A급이던 신의 절대성 대신 이제 인간은 B급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 시선이 바로 헬레니즘이다.
'이런 망할!'
미켈란젤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누구인가? 23살의 나이에 <피에타>를 조각하고 29살에 <다비드>를 완성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 최고의 조각가이자 예술가로 불리는 르네상스 최고의 천재 예술가가 아닌가? 가뜩이나 고집과 자존심으로, 지랄 맞은 성격으로 유명한 그였다. 그런 그가 불같이 화를 내다니, 무슨 이유였을까?
1506년, 로마의 한 포도밭 농부에 의해 놀라운 조각상이 발견됐다. 뒤틀린 인체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격정적인 감정이 담긴 어마무시한 대리석이 흙속에서 툭 튀어나온 거다. 보고를 받은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총괄 아트 디렉터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젊은 스타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급히 현장에 보냈다. 두 사람은 조각을 보자마자 먼 옛날 헬레니즘 시대의 <라오콘 군상> 임을 알아차렸다. 그와 함께 미켈란젤로는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가만있어보자, 이게 2천 년 전 작품이라고?' 천하의 미켈란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침 피렌체에서 다비드 조각을 완성하고 조각가로 이탈리아의 우주 대스타가 된 그가 아니던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교황의 영묘 조각 프로젝트도 맡은 그였다. 자신이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대보다도 2천 년 전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화도 나고 질투와 절망감도 들었을 테다.
라오콘 Laocoön은 트로이의 사제다. 맞다! 목마에 숨어있던 병사들을 끌어들여 나라를 절단 낸 것으로 유명한 그 트로이다. 10년간의 전쟁에도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한 그리스는 마지막 꼼수를 하나 쓴다. 거대한 목마를 해변에 놓고 도망간 척한 거다. 목마를 본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 군대가 남긴 제물이라 기뻐 날뛰며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오려했다. '잠깐! 난 반댈세!' 그러던 중 의심 많은 사제 라오콘이 목마를 창으로 찌르며 속임수를 증명하려 들었다. 뜻대로 됐을까? 천만의 말씀. 바다에서 두 마리 뱀이 나타나 그와 두 아들을 고통스럽게 죽였다고 한다. 그렇다. 조각은 죽음에 몸부림치는 바로 그 순간의 한 컷을 조각으로 담은 것이다. 어떤가? 천하의 미켈란젤로도 감탄할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후 그가 남긴 <시스티나 천장화>의 인체 비틀림이나 <최후의 심판> 속 역동적 근육, <노예들>의 고통스러운 긴장감은 모두 라오콘 조각과 많이 닮아 있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콘에서 B컷의 무언가를 발견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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