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망할!'
미켈란젤로는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 어쨌든, 원래 화가 많은 그다. '조각도 모르는 저 애송이 라파엘로가 심사를 맡았으니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복원이 될 수밖에!'
라오콘 조각의 발견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교황은 즉각 조각상을 바티칸으로 옮겨 자신의 정원 안뜰을 장식했다. 어마무시한 작품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데, 개중 작품을 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진짜 2천 년 전 작품이라고? 혹시 미켈란젤로가 몰래 묻어뒀던 게 아닐까?' 소문에 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너나없이 진품명품 감별을 하고 싶었던 탓이다. 결국, 교황은 궁을 개방하기에 이른다. 이게 바로 바티칸 미술관의 첫 시작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시스티나 성당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라오콘 군상> 덕이다. 포도밭 농부 아니면 어쩔 뻔했어?
그런데, 왜 미켈란젤로는 미칠 듯 화가 났던 걸까? 1510년, 교황의 수석 건축가 브라만테는 라오콘의 부러진 오른팔 복원을 위해 경연을 벌였다. 발굴 당시 오른팔이 없었던 거다. 브라만테는 자신이 늘 총애하는 화가 라파엘로에게 심사를 맡겼고 그는 우승작으로 라오콘의 오른팔이 하늘로 쭈~욱 뻗은 작품을 선정했다. 미켈란젤로는 경연이 눈곱만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오른팔이 굽어져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게 다 수십 번 인체를 해부해 본 그의 방대한 해부학 지식 덕이다. 그렇지만 복원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왜일까?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여긴 탓이다.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브라만테와 사이가 안 좋았고, 더군다나 새파랗게 젊고 자신에게 싸가지 없는 라파엘로가 심사 위원이라니, '지들 하고 싶은데로 하라지' 했을 것이다. 결국, 라오콘은 하늘 높이 팔을 뻗은 불편한 자세로 수백 년을 지내야만 했다.
1906년, 로마의 한 건축장에서 라오콘의 오른팔로 보이는 조각이 발견됐다. 어땠을까? 맞다! 미켈란젤로의 말이 옳았다. 그것은 몸 쪽으로 굽혀진 잃어버린 라오콘의 팔이었다. 결국 1957년, 치켜든 팔을 제거하고 지금의 굽혀진 팔로 복원을 하게 된다. 미켈란제로 승!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들은 목과 팔다리가 없다. 너무 오래된 탓이다. 잘려나간 B급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더 아름답게 느낀다. 왜일까? 1530년 경,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자, 교황청은 몸통만 남아있는 토르소 조각의 복원을 의뢰한다. '어이! 천재 조각가 양반! 이것 좀 완벽하게 복원해 주쇼!' 어찌 됐을까? '싫은데요! 그냥 냅두쇼! 잘려나간 그 자체로 완벽하니까.' 더 이상 손댈 이유가 없다는 거다. 그가 보기에 몸통만 있는 그 불완전함이 바로 완벽함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처럼 완벽하지 않다. 결국 신의 몸을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완벽하지 않더라도 상상을 하는 것, 이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맞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한 것, 그것이 바로 B급의 시선이다.
TIP. 그리스 조각과 헬레니즘이 남긴 유산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는 서명 대신 피부 껍질만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때 미켈란젤로의 살가죽을 들고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몸이 바로 토르소의 몸이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살가죽, 어쩐지 팔다리가 잘린 토르소와 제법 어울린다. 미켈란젤로의 잘려나간 B급 시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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