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뒷모습_1.

by BOX

모나리자를 보건, 고흐의 자화상을 보건 우리는 언제나 주인공과 마주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왜일까? '정면'은 곧 권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직 예수만이 정면을 바라봤고, 왕만이 그 중앙을 차지했다. 그렇다. 대부분의 그림은 그렇게 센터본능, 정면본능을 따랐다. 그림 속 주인공이 점차 일반 대중으로 변해갔지만, 이 정면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뒷태가 아름답다 한들, 뒷통수가 이쁘다 한들, 뒷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은 극히 드물었다. 맞다. 정면은 존재의 증명이다. 증명사진이 그렇듯, 세상에 남기고 싶은 얼굴은 언제나 앞모습이었던 탓이다. 당연하다. 그렇지 않을 거면, 엉덩이만 보여줄 거면 무엇하러 비싼 돈 들여가며 화가를 고용하고, 그림을 그려 후대에 남겼겠는가?


그런데. 이 정면의 법칙을 깨뜨린 이들이 있었다. 모두가 앞만 바라볼 때, 뒤를 바라본 사람들. 그들은 얼굴 대신, 뒷태 하나에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자 미술은 달라졌다. 정면에서 벗어나니 듣도 보도 못한 시선의 자유가 생긴 거다. 그 시선은 새로웠다. 이제, 그들의 뒷태를 따라가 보자.


자세가 낭만이 되다


그림 중앙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보았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다. 웬만하면 앞을 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법도 한데, 그는 말없이 뒤돌아 서 있다. 우리는 그가 어떤 표정과 눈빛일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한데, 이상하다. 어찌 된 일인지 이 그림은 오히려 숭고미가 넘친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봐도 정情이 간다. 왜일까?

Ueber-die-sammlung-19-jahrhundert-caspar-david-friedrich-wanderer-ueber-dem-nebelmeer.jpg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1818

그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인 탓이다. 맞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우리도 함께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남자는 바위산 정상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의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와 휘몰아치는 안개가 파도처럼 넘실댄다. 한편으론 호연지기가 느껴지고, 한편으론 불안이 엄습한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짝다리를 짚은 채 긴 지팡이 옆에 찬 그는 의연한 정복자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 모델 같은 포즈다. 그림은 고요하면서도 폭풍 같다. 어쩐지 낭만적이다. 우리는 그와 함께, 위태로운 바위산 위에 서서 안개의 바다를 함께 내려다보고 있는 거다.


이 그림은 낭만주의 시대의 위대한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다. 그런데 낭만주의 Romanticism란 대체 뭘까? 19세기 초 서유럽에서 등장한 낭만주의는 이성이 닿지 않는 감정과 상상의 영역에서 인간의 내면을 발견하려 한 운동이었다. 뭐, 어려울 것 없다. 어떤 작품을 보고 마음이 확 울컥한 적이 있는가? 맞다! 그게 바로 낭만주의다.


하지만, 화가의 삶은 그의 그림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 7살 나이에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병으로 잃었고, 스케이트를 타던 중, 자신을 구하려던 형이 얼음 호수에 빠져 죽는 모습은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 상처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는데 이 마저도 실패다. 점점 더 우울의 마법에 빠졌고 그때 생긴 상처를 가리려 긴 수염을 기르고 다녔다고 한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주인공이 뒷모습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풍경 속에 이렇게 큰 뒷태를 그려 넣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 주인공은 대체 누굴까? 화가 자신일까? 학자들은 괴테라도 하고 혹은 어떤 군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미술사에서 살아생전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는 이는 드물다. 그 역시 죽은 후 명성을 얻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화가는 결혼하던 해에 이 그림을 그렸다. 자신보다 20살 어린 신부에 대한 불안감일까? 위태로움일까? 뒷모습만으로는 남자의 표정을 알 도리가 없다.


"등만 보여서 너무 쓸쓸하거든!"

아내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싫어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해. 내면의 것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하지." 이것이 바로 정면만 봤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화가가 깨달은 B급 시선이 아니었을까?


-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




* 작가의 책 보러가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18615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557417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인간의 눈으로 신의 몸을 훔치다_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