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뒷모습_2.

by BOX

B컷의 도시 남자


여기 또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있다. 창가의 남자는 파리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숭고하다면, 이 남자는 어딘지 세속적이다. 그렇다. 자연 대신 도시, 낭만 대신 현실이다. 남자의 시선을 어디로 향한 걸까? 가만있어보자. 그의 눈은 거리를 가로지르는 한 여인에게 꽂힌 듯하다. 그런데 이 남자의 뒷모습은 어쩐지 고독해 보인다. 무슨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Gustave_Caillebotte_-_Jeune_homme_à_sa_fenêtre_(B_32) (1).jpg <창가의 남자>, 귀스타브 카유보트, 1876


<창가의 남자>귀스타브 카유보트가 자신의 집에서 동생 르네 카유보트를 그린 작품이다. 붉은 의자와 화려한 카펫, 넓디넓은 창문, 당시 파리 부르주아가 살던 오스만 양식의 2층 주택 풍경이다. 그래서일까, 화면 가득 금수저 냄새가 난다. 앞서 보았듯 이러한 구도를 뤼켄피구어 Rückenfigur라고 한다. 말 그대로 '뒷모습'이란 거다.


<창가의 남자>는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도시 버전인 셈이다. 그렇다. 방랑자의 B컷이다. 그래서인지 두 그림의 구도는 확실히 닮아있다. 도긴개긴, 뒷태의 이들은 모두 어딘가를 내려다본다. 어떤가? 붕어빵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달라진 거라곤 자연에서 도시로 배경만 바뀐 것뿐인데, 그 도시의 화려함 때문인지 남자의 뒷모습은 어딘지 더 쓸쓸해 보인다. 거리의 저 여인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역시 그의 눈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기 때문일까? 어쨌든, 도시 앞의 남자는, 산 위의 남자보다 더 쓸쓸하고 고독하다.



참을 수 없이 고요하고,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고요하다. 이토록 조용한 그림이 또 있을까. 방안엔 안개 낀 자연의 소리도, 도시의 소음도 없다. 시간이 멈춘 듯, 그림자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뒷태다. 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손끝을, 시선을, 감정을 짐작할 뿐이다. 이때 우리의 시선은 그녀의 올린 머리 뒷덜미에 딱! 꽂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이 불친절한 여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


Vilhelm_Hammershøi,_Stue_med_kvinde_ved_klaver,_Strandgade_30,_1901.jpg 〈피아노 치는 여인, 스트란가데 30번지>, 빌헬름 함메르쇼이, 1901


덴마크의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 Vilhelm Hammershøi, 사람들은 그를 '침묵의 화가'라 불렀다. 그의 그림엔 언제나 한 여인이 등장한다. 다름 아닌 아내 이다 Ida다. 눈이 세 개, 코가 두 개인 것도 아닌데, 화가는 아내의 뒷모습만 죽어라 반복해서 그렸다. 그림 속 여인은 결코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관람객은 그녀의 뒷태만 볼 뿐이다. 그녀는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다. 그렇다. 이건 초상화가 아닌 부재의 초상화다. 그녀의 등은 말이 없다. 데시벨 제로다.


한데, 그 고요함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소리 — 침묵의 울림 — 으로 다가온다. 그 침묵은 수천 가지 감정으로 진동한다. 그게 바로 함메르쇼이의 바라보기 방식이다. 그녀는 세상이 아닌, 내면을 바라본다. 안개의 산도, 창밖의 파리도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이제 자기 마음의 벽 앞에 서 있는 거다. 어떤가? 집에 하나쯤 걸어 놓고 싶은 그림이 아닌가? 언제쯤 그녀는 고개를 돌릴까? 까꿍!



-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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