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그림은 아름다워야 하는 거 아닌가? 미술 美術이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잖은 가 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뭘까? 어쩐지 불편하다. 아름답기보다 추하다. 16세기 초, 먹고살기도 힘든 시기에 비싼 돈 들여, 고작 이런 '못생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다 빈치가 피렌체에서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을 무렵, 플랑드르 화가 쿠엔틴 마세이스 Quinten Massys는 비슷한 크기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당시는 르네상스 때가 아닌가. 아름다운 그림이 넘쳐날 때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상적인 미美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플랑드르 화가들은 신의 완벽함보다, 현실의 욕망과 인간의 어리석음 같은 인간 내면에 더 관심을 가졌던 탓이다.
그림을 보자. 주름진 얼굴과 들창코, 처진 가슴을 드러낸 노파가 철 지난 귀부인 복장을 하고 있다. 뿔처럼 솟은 머리장식과 화려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사라진 젊음을 되살리려는 듯하다. 어떤가? 어째 마음이 좀 짠하다. 손에는 사랑을 꿈꾸는 듯,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쥐어져 있다. 그렇다. 비록 늙고 못생겼어도 마음만은 불타는 청춘이다.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거든! 니들도 나이 먹어봐!' 노파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림의 실제 모델이 누군지, 왜 그려졌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한데, 한 가지 흥미로운 학설이 있다. 이 그림이 다 빈치의 잃어버린 작품에서 따왔다는 거다. 이유가 뭘까? 그의 유명한 비밀노트에 깜짝 놀랄 만큼 유사한 스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못생긴 공작부인>은 <모나리자>의 또 다른 B컷이 아니었을까? 한쪽은 젊음과 신비한 미소, 다른 한쪽은 노쇠와 허영의 진실을 담은 A컷과 B컷일지 모른다.
종교에서 일컫길, 태초에 신은 자신의 모습과 닮게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붕어빵 틀에 넣어 만든 신의 B컷이 인간이란 거다. 그런 이유로 그림 속 신의 모습은 모두가 인간의 형상이다. 한데, 화가들은 골치 아팠다. 신과 인간이 붕어빵이라면, 대체 어떻게 구분을 할 것인가? 그런 이유로 오직 신만이 정면을 바라보게 그렸다. 맞다. 중세이래 모든 초상화 속 인간은 옆이나 비스듬히 3/4 측면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정면을 보는 건 오직 신만의 포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에게 도전한 자존심 만렙의 화가가 나타난다. 그는 B컷이 아닌, 스스로 A컷이 되려 한 화가다.
'감히, 정면을 바라보다니!'
'예수야 뭐야? 이 사람 정신 나간 거 아냐?'
사람들은 놀라움에 까무러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림인 탓이다. 자애롭고 그윽한 눈빛, 록스타 같은 긴 헤어스타일,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수염, 담비옷과 뭔가 거룩해 보이는 손가락의 모양새까지. 이건, 누가 봐도 예수가 아닌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는 자기애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로는 드물게 나이별로 자신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렇다. 셀카왕이다. 창에 찔린 예수처럼 옆구리의 상처를 가리키는 자화상까지 그린다. 제정신이 아니다. 이 정도면 심각한 망상병이다. 뿐만 아니다. 이탈리아 화가처럼 대접받지 못하자, '내가 다 빈치보다 뭐가 못나서?' 라며 독일 화가 최초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어찌 됐을까? 돌아온 후 거짓말처럼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렇다. 될놈될, '넌 is 뭔들'이다.
<28세 자화상>은 이런 화가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화가는 생각했다. '내 맘대로 세상을 보면 왜 안되는데?' '인간이 신을 닮았다면 인간 역시 A컷이 아닐까?' 그렇다. 이 그림은 인간을 신처럼 묘사한 최초로 초상화다. 여기에 뒤러는 예수가 십자가를 남겼듯 그림 왼쪽에 AD라는 모노그램을 남긴다. 화가가 남긴 최초의 사인인 셈이다. 이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오른쪽엔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가 불멸의 색채로 28세의 나를 그리다.'라는 정신 나간 문구까지 써넣었다.
뒤러는 <28세 자화상>을 그린 후 더 이상 유화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왜일까? 유화는 돈벌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맞다. 당시 일반 대중에게 값비싼 유화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잔머리를 굴렸다. 어찌했을까? 자신의 그림을 수백, 수천 장씩 판화로 찍어 대량으로 값싸게 팔았다. 게다가 '종말론', '악마'같은 자극적인 소재였으니, 그림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렇다. 때부자가 됐다. 이후 그는 뉘른베르크의 시의원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뒤러는 그의 자화상처럼 자본주의의 신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뒤러 is 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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