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미소, 소녀 같은 얼굴,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괸 매혹적인 자세의 여인은 아름답지만 어딘지 좀 서늘하다. 맞다. 차도녀다. 그녀의 피부는 얼음 같고, 드레스와 배경은 푸른빛이 감돈다. 거울에 비친 뒷모습 역시 어쩐지 겨울왕국 같다. 그렇다. 그녀는 얼음공주가 틀림없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차가운 미인으로 만든 걸까?
그림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 Ingres가 그린 <오송빌 백작 부인의 초상>이다. 모델인 루이즈 드 브로이는 아름답고 지적인 프랑스의 문학가였다. 하지만 부인과 화가는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다. 처음부터 부인은 화가가 맘에 들지 않았고, 화가는 더 이상 초상화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폼나는 역사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어쩌겠나? 역사화는 돈 안 되는 배고픈 일이었다. 그러니까 예술이고 뭐고 이 그림은 순전히 돈 때문에 그려졌다는 거다. 맞다. 밥벌이 프로젝트였다.
앵그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폭풍 유행한 신고전주의의 대표작가다.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고전적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식, 시각예술, 문학, 연극, 음악, 건축에 이른 미술 사조다. 한마디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따라쟁이란 거다. '음, 뭔가 엄숙하고 오래된 연극 같은걸!' 느꼈다면 그게 바로 신고전주의다. 어려울 것 없다. 앵그르의 미학적 신념은 오직 선 線을 강조해 이상적인 고전미를 되살리는 거였다. 쉽게 말해, '라인만 이쁘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맘대로 모델의 모습을 떼었다 붙였다, 늘렸다 줄였다 하며 포샵하듯 그림을 그렸다. 턱을 깎고 콧대를 높였다. 원래 그녀의 붉은 낯빛은 석고상처럼 투명해졌고 오른팔은 비현실적으로 길어졌다. 그렇다.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거다. 선線형미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림은 차갑지만 아름답다. 이게 다 선을 강조한 앵그르의 천재성 탓이다. "이건 내 얼굴이 아니야!" 실제로 부인은 성형된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마 화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맞아요, 그건 부인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만든 당신이지요!"
거울 속에 비친 모습 또한 실재와 다르다. 그녀는 불가능한 각도로 왜곡되어 있다. 왜일까? 오직 이쁘게 포장하고 싶었던 화가의 욕망 탓이다. 그녀는 결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없다. 그녀의 뒷모습은 오직 관람객에게만 허락된다. 그렇다. 거울은 현실을 비춘 듯 보이지만, 사실은 화가의 욕망을 비추는 또 하나의 세계다. 거울 속 투영된 미술의 또 다른 뒷모습, 이게 바로 B급 시선이다. 어쨌든, 차도녀 선형미인은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이런 망할, 돼먹지도 않은 이 그림은 대체 뭔가? ', '누구야? 원근법도 모르는 막장 화가라니!'
1882년 파리 살롱전, 그림을 본 비평가들은 침을 튀기며 욕을 퍼부었다. 제대로 완성도 되지 않은 거친 붓질, 거울에 비친 엉성한 구도, 뒤엉킨 듯 대충 그려진 배경, 무엇보다도 그들을 화나게 만든 건 가슴에 꽃을 꽂은 바텐더 때문이었다. 왜일까? 무엇이 이들을 화나게 한 걸까?
19세기 파리, 폴리 베르제르 바는 서커스와 발레 공연이 열리던 사교 클럽이었다. 그렇다. 지금의 헌팅포차다. 드가의 <발레 수업>처럼, 이곳 역시 공공연히 성매매가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바텐더 뒤로 거울에 비친 사람들은, 흔들흔들, 부어라 마셔라! 밤문화에 빠져있다. 맞다. 예나 지금이나 노는 게 제일 좋다.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는 근대 회화의 문을 연 화가다. 비너스의 자리에 매춘부를 그려 넣었고, 근엄한 척, 위선으로 가득한 부르주아 상류층의 민낯을 홀딱 벗긴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내놓을 때마다, 평론가들의 욕과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찬사를 늘 동시에 받아왔던 그다. 이 그림은 그런 마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림 중앙, 가슴에 꽃을 꽂은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실제 폴리 베르제르 바의 바텐더였던 쉬종 Suzon이다. 한데, 볼 빨간 그녀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 어쩐지 멍한 표정이다. 테이블에는 샴페인과 술병들이 가득하다. 이제 곧 술 주문이 밀려들 모양이다. 사실, 이 그림은 썩 정교해 보이지 않는다. 화가의 병세 탓일까? 대충 그려진 듯하다. 게다가, 거울에 비친 뒷모습은 정면과 구도가 전혀 맞지 않는다. 거울 속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왜일까? 화가의 재능이 말라버린 걸까? 대체 거울은 왜 이러는 걸까? 그림 속 여인은 정면을 바라보지만, 거울 속 그녀는 실크햇을 쓴 남자와 무언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무슨 이유일까? 당시 카페의 종업원은 단지 술만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남자 역시 술만 주문한 것이 아니다. 은근슬쩍 무언가를 제안하고 있다. 어쩐지 얼굴이 느끼하더라니.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틀림없다. 생활 때문인지, 별수 없는 쉬종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할 뿐이다. 그렇다. 말 못 할 비밀을, 거울은 당시 파리의 어두운 면을 B급 시선으로 슬쩍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녀의 눈은 외롭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아니라 고독한 예술가로의 마지막 시선이었을지 모른다. 이 그림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완성됐다. 화가는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한 예술혼이다. 그런데 마네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말기 매독이다. 뭐, 다른 사람 욕할 일 아니다. 그도 어지간이 놀고 또 논 모양이다. 이게 바로 거울치료였을까?
TIP. 거울 속 B급 시선이 남긴 유산들
이탈리아 화가 파르미자니노는 20살에 그린 거울 속 자화상 하나로 인생 초대박을 쳤다.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눈에 띄어 단숨에 교황의 궁정화가를 꿰찬거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연금술에 빠져 그리라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금세 페인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자화상이 어째 신비한 연금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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