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가 있다. 보아하니 이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어째 수상하다. 창백한 얼굴, 게슴츠레 갈 곳 없는 눈동자의 신랑과 볼록한 배 위에 손을 얹은 신부. 이들 발치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게다가 그림 중앙의 볼록 거울이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잡아챈다. 이 섬세하고 기이한 그림은 대체 뭘까?
그림을 보다 보면 한 번쯤 플랑드르 회화 Flemish painting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뭐 별거 없다.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언저리에서 번성한 그림들이란 뜻이다. 이곳은 한때 북유럽 르네상스의 본거지였다. 지금의 K 콘텐츠처럼, 그 시절엔 플랑드르 콘텐츠가 제법 유행했다. 이유가 뭘까? 이 지역에서 유화 oil painting가 처음 나온 탓이다. 유화는 마르는 시간이 더뎌 덧칠이 가능했다. 그 덕에 색은 깊어지고, 표현은 더 정교해졌다. 그렇다. '음! 꽤나 촘촘하고 세밀한 그림이군' 느꼈다면 플랑드르 회화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유화를 발명했을까? 빙고!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수수께끼다. 그림 속 이들은 패션피플이다. 옷차림으로 보아 제법 잘 사는 부부다. 한데, 신랑은 눈곱만큼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혼전 임신인가? 신부는 임신했는지, 화려한 의상 때문인지 배가 볼록하다. 신부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거 결혼식이 정말 맞아? 그런 까닭에 일부 학자는 결혼식이 아닌, 추모의 그림이라 말한다. 천장에 매달린 초들 중 오직 신랑의 머리 위에 촛불만 켜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인은 출산 중 죽었고, 그 뒤로 그림이 그려졌다는 주장이다. 맞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닌 영혼결혼식 그림이라는 거다.
사실 그림의 씬스틸러는 따로 있다. 뭘까? 바로 그림 중앙의 볼록 거울이다. 어쩌면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이 되시겠다. 가까이 보자. 거울 속에는 신랑, 신부 이외에 두 사람이 더 있다. 그중 붉은 옷의 한 사람이 바로 화가인 얀 반 에이크다. 이제 B급 시선으로 그림을 보자. 거울 속에는 화가가 서 있다. 화가는 그림 속에서 부부와 우리를 보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림 밖의 우리는 그림을 보고, 그림 속 화가는 다시 우리를 보고 있는 거다. 어떤가? 그게 바로, 이 그림이 가진 반전의 매력이다. 결국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보는 이와 보이는 이의 끝없는 밀당이 그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가는 거울 위에 '1434년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라는 서명을 남겼다. 아마도 부부의 결혼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맞다. 이 그림은 결혼 보증서인 셈이다.
거울 속의 남자, 화려한 모피옷을 입은 부부, 섬세하고 정교한 붓질, 이 그림은 언뜻 얀 반 에이크의 그림과 붕어빵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이 다를까? 이 부부는 사뭇 진지하다. 테이블 앞의 남편은 저울로 금화의 무게를 재는 중이다. 성경책을 펼쳐든 아내는 사실 교리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녀의 눈은 뚫어져라 금화에 꽂혀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고대대금업자 커플이다. 테이블 위엔 볼록 거울이 놓여있다. 거울에 비친, 붉은 터번을 쓴 남자는 낯빛이 우울하다. 다크서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마도 사채를 심하게 당겨 쓴 모양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쿠엔틴 마세이스 Quentin Metsys가 그린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라는 작품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신 앞에서 서약을 한 부부라면, 이 그림은 돈 앞에서 거래를 맺는 부부다. 맞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의 B급 버전인 셈이다. 두 그림은 모두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하나는 믿음을, 다른 하나는 탐욕을 비춘다.
고리대금업자의 아내는 구원을 바라듯 성경책을 들춘다. 그러나 제 아무리 기도를 한다고 한들, 중세 교회의 교리에서는 금융업자는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이었다. 그렇다. 애초에 천국엔 못 갈 팔자다. 가만있어 보자, 그래서 지금도 금융업 종사자들의 연봉이 그리 높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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