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미술의 B급 시선_1.

by BOX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장엄한 자연을, 화려한 도시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본다. 마음만 먹으면 못 볼 게 없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그게 뭘까? 맞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제 아무리 시력이 좋다 한들, 거울이 없다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습인지 인간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태고 때부터 인간은 거울을 귀히 여겼다. 당연하다. 자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세상에 거울뿐이었으니까. 영험하고 소중한 보물이 되어 애지중지 다뤄졌다. 하여, 제사장이나 왕 같은 귀한 사람들만의 특급 아이템이었다. 최초의 거울은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다가 청동, 유리로 차츰 발전했다. 어쨌든, 거울은 자신의 눈이 아닌, 자연과 인간을 담을 수 있는 아주 신.박.한 도구였다.


미술사에서도 거울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거울은 자아의 탄생을 알린 장치였다. 화가들은 그 속에 신을 비추고, 욕망을 비추고, 때론 자기 자신을 비추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거울 속에는 언제나 진실이 약간 삐뚤게 들어 있었다. 무슨 말일까? 거울은 좌우가 바뀌어 있다. 그렇다. 속아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거울 속 나의 모습은 어쩌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거울은 언제나 B급의 시선이다. 눈앞의 현실을 비추지만, 그 안에는 늘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셀카에 빠진 남자, 나르시스


여기, 자신에게 흠뻑 빠진 청년이 있다. 어떤가? 표정을 보아하니, 제정신이 아니다. 거울처럼 비친 물속 자신의 모습에 넋이 나간듯하다. 그는 누굴까? 맞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르시스다. 물속 자신의 모습에 빠져 죽은 그 유명한 나르시시즘의 원조맛집 되시겠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이렇게 말하다. 나르시스는 자기밖에 몰랐다. 주변 사람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게 다 잘생긴 외모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샘물을 마시려던 중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딱 반해 버린다. '세상에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니!' 자신이 보는 존재에게 미친 듯 빠진 거다. 그러나 물속의 남자는 말이 없다. 좋아요 하트를 날리고, 사랑을 고백해도 무응답이다. 결국, 나르시스는 사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da Caravaggio는 미술사 최고의 문제적 화가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였지만, 기이하고 난폭한 성격으로 15번의 폭력 전과, 폭행, 상해, 명예훼손, 주취폭력, 기물손괴, 불법무기소기, 탈옥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른 사형수였다. 결국 도망자로 살다 38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마디로, 망나니 화가다. 한데, 그의 그림들은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했다. 극적 연출과 조명, 빛과 어둠의 극단적 연극성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그만의 놀라운 방식이었다. 얼마나 대단했던지, 모두가 그를 흉내 냈다. 그렇다. 모두가 카라바조 따라쟁이가 된 거다. <나르시스>는 이런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이다. 화가는 막 자신의 모습에 빠져버린 나르시스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은 어쩐지 좀 에로틱하다. 그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물끄러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곧 닥칠 그의 운명도 모른 채.


거울은 최초의 셀카다. 거울은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빠진 셈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셀카에 빠지진 말자! 어쩌면 셀카 속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1784px-Narcissus-Caravaggio_(1594-96)_edited.jpg <나르시스>, 카라바조, 1597년–1599년, 하루 온종일 셀카만 찍다 보면 나르시스의 운명이 된다



함부로 거울을 본 죄


'이건 텍사스전기톱 살인사건인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그림을 눈앞에서 본 탓이다. 한 여인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희번덕 눈을 부릅뜨고 있다. 찡그린 양미간과 벌려진 입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게다가 이건 뭔가? 머리카락은 온통 흉측한 뱀들이다. 무엇보다 잘려나간 목에서는 시뻘건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관람객을 놀래킨 이 여인은 누굴까?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메두사는 자신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아테나 여신의 저주를 받는다. 뱀의 머리카락, 멧돼지 엄니, 뱀의 혀를 가진 괴물이 된 거다. 게다가 메두사의 눈을 보는 자는 모두 돌로 변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한데, 영웅 페르세우스는 달랐다. 신화에 따르면 꼼수 하나를 쓴다. 어떻게 했을까? 방패를 거울삼아, 메두사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목을 벤 것이다.


카라바조는 목이 잘려나가는 바로 그 찰나의 <메두사>를 절묘하게 그렸다. 그렇다. 그림은 거울 방패에 비친 메두사 얼굴이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어째 으스스하다. 맞다. 소름이다. 어떤가? 카라바조가 제 아무리 망나니라 해도 화가의 연출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메두사의 얼굴은 카라바조의 실재 얼굴이다.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며 희번덕한 눈과 공포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렇다. 화가 자신이 괴물이 되어 거울을 보았던 셈이다. 이제 동그란 방패 그림을 보고 있으면, 메두사는 이렇게 말을 건넬 것만 같다. '함부로 거울보지 마라, 내 꼴 난다.'


Caravaggio_-_Medusa_-_Google_Art_Project (1).jpg <메두사>, 카라바조, 1597, 우피치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게 다 함부로 거울을 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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