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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7일차 - Camel by the sea

2022.07.18.


시작부터 괜찮은 하루였다. Colton Inn은 생각보다 잠자리가 아늑했고, 네 가족 모두 늦지 않게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나갔다. 중학교 때 'Inn 여인숙, 여관'이라고 외웠던 탓에, 이 숙소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았나, 이 정도면 음식도 훌륭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픈 호텔보다 나았다. 구석진 동네의 Inn이라고 절대 옆 방에 안톤쉬거 포함한 살인자들이 머물고 있는 건 아니구나. 여기선 음식 남은 것들은 접시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한 방에 버린다. 왜 음쓰, 일쓰, 분리수거를 하지 않을까. 편하긴 한데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내가 왜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건지. 


오늘은 1번 국도를 타고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LA에 도착하기 전, 중간지점 정도인 Paso Robles란 도시에서 이틀을 묶을 예정이다. 본격적인 드라이브에 앞서, Monterey 바로 옆에 있는 Camel by the sea라는 도시에 들렀다. 원래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는데, 적당한 숙소를 고르지 못해서 잠시 들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Camel by the sea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정말 분위기 있는 도시였다. 한 때 많이 마셨던 camel road라는 와인을 생산하는 그 camel이면서, 예술가들의 도시답게 클린트 이스트우드 형님이 예전에 시장도 하셨단다. 동네 곳곳이 갤러리와 선물가게, 카페들이었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여행의 여유를 만끽하기 최적의 도시였다. 뷰 맛집들이 즐비해 계속 셔터를 눌러 댔다. 제2의 가로수길, 이태원, 성수동을 만들고 싶은 공무원, 구의원분들, 이곳으로 단체 견학 한 번 와 보시길.


선물가게에 들어가서 옷 한 벌 사고 싶었는데, 이 동네의 아름다움을 만족스럽게 담고 있는 디자인이 없었다. 노트북에 붙일 스티커라도 살까 했는데, 이미 정 중간에 Sausalito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역시 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결국 하나도 사지 못했다. 


Galerie Rue Toulouse란 갤러리에 들어가서 그림을 감상했다. 우리가 동양인 부호들로 보였는지, 사장님이 작품 설명을 아주 친절하게 해 주셨다. 한 작품을 가리키며 2천만 원이란 가격까지 이야기했는데 지영이가 움찔하지 않자, 더 열과 성을 다해서 설명해 주셨다. 갤러리의 조명이 어두운데 야외에서 보면 느낌이 다를 거라고, 그 큰 그림에 떼서 길거리로 가지고 나가서, See? See? 하며 보여주셨다. 한국까지 안전한 프레임에 넣고 보험까지 들어서, 배송까지 완벽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이며. 2천만 원에 사서 거실에 10년 걸어 놓은 후 3천만 원에 팔고 싶었지만, 그 돈으로 여기 여행 왔습니다. 


몇몇 가게들을 더 들러 구경을 했지만,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지우 지아 참새들의 짹짹거림을 이길 순 없지. 마지막으로 Forever Carmel이란 곳에 들러 액세서리 몇 개를 사며 쇼핑과 산책을 마무리했다. 다음에 캘리포니아에 오게 되면 여기서 꼭 몇 밤 자리라 다짐을 하며, 예술가들의 도시 Camel by the sea와 작별을 고했다. 


이제 본격적인 드라이브. 캘리포니아 1번 국도, 유명세만큼 확실히 뷰가 환상적이었다. 난 꼬불꼬불 길을 운전하느라 주변을 충분히 즐기진 못했고, 애들은 애당초 창밖을 보며 감탄하는 스타일들이 아니라, 지영이만 풍경들을 만끽했다. 초반에 lookout 표지만 보이면 내려서 사진 찍어 댔는데, 아이들은 다 비슷해 보이는 풍경인데 자꾸 차를 세우니 싫어했다. Hurricane point of view를 마지막으로 이제 안 멈추겠단 약속을 하고 Paso Robless까지 쭈욱 달렸다. 낭만을 모르는 녀석들.


운전으로도 빡센 이 길을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오르는 젊은이들도 종종 보였다. 허벅지 터질라. 캠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도, 텐트 치고 맥심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풍경들이 이어졌다. 캠핑 의자에 앉아 바다 바람을 맞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누워 있는 상상을 하면, 꼭 뱀이 나오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역시 난 차가운 도시 남자.


점심시간이다. 1번 국도 위에 검색에 뜨는 맛집이 몇 개 없는데, 그중 Nepenthe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진입하니 주차장부터 차가 가득이었다. 다른 식당을 찾기도 힘들어 여긴 무조건 웨이팅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시간을 기다릴 줄은 몰랐다. 그나마 워낙 풍경이 예뻐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어대느라 지겹지는 않았다.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는데 또 한 시간이 걸렸지만, 용서해 주자. 


샐러드, 코울슬로, 샌드위치 등으로 배불리 먹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곳부터 Paso Robles까지는 마우이의 Road to Hana를 연상시킬 만큼 굽이굽이 빡센 코스였다. 아이들은 멀미를 호소했고,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 바라보며 졸음과 멀미와 싸우며 운전했다. 그래도 Whale Watching보단 낫잖아.


목적지를 20분 남겨뒀을 때 운전자를 바꿨다. 지영이도 이 차 한 번 몰아봐야지. 남은 길이 차도 없고 쉬운 구간이라 연습엔 제격이었다. Paso Robles는 나파밸리, 소노마와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 3 대장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가지런한 포도밭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감상을 하며 가다 보니 이틀 묶을 springhill suites by marriott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의 호텔들 중엔 가장 깔끔한 곳이었다. 냉장고, 물, 세탁기, 수영장이 모두 갖춰져 있는 호텔이라니, 그것 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인솔 하에 수영장으로 뛰어갔고, 나는 4시간 운전하느라 수고했다며 자유시간을 부여받아 MLB 홈런더비를 생중계로 감상했다. 살아있는 전설 푸홀스 옹이 마지막 홈런더비에 나섰다. 큰 형님의 마지막을 모든 동생들이 응원해 준다. 노교수의 정년 퇴임식을 보는 듯했다. 그런 푸홀스 옹이 나보다 3살 어린 건 안 비밀.


저녁은 어제 한인마트에서 사 온 컵라면과 죽으로 때웠다. 여행 와서 1일 1라면 중인 아이들, 그래도 표정들이 행복하다. 모레 또 LA까지 남은 4시간을 운전해야 하니, 내일은 Paso Robles에서 와이너리도 가고 쉬엄쉬엄 보내는 일정이다. 


여행 일주일이 흘렀다. 4분의 1 잘 왔네. 남은 3주, 꿈과 모험과 환상의 세상들이 놓여 있길.



아늑했던 Colton Inn


키트, 시동 걸어줘.


Camel by the sea 갤러리


동양인 부호에게 열심히 설명 중인 사장님


Camel by the sea 산책


Camel by the sea 쇼핑


아빠 빼고 잘 다님


1번 국도


우리 집 서열 1번


Nepenthe 웨이팅 중


주문하고 또 웨이팅


springhill suites by marriott


나보다 3살 어린 푸홀스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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