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6일차 - Monterey

2022.07.17.


늦게 일어났다. 새삼스럽진 않다. 11시엔 나가야 하는데 눈을 뜨니 10시 반이다. 지영이가 내려가 잠꾸러기들이 먹을 조식을 방으로 가지고 왔다. 오, 맛있는데? 내려가서 정식으로 먹을 걸. 잘하는 것도 있는 호텔이었네. 빨래를 싸들고 왔던 한인 가족은 지영이의 예상대로 텍사스에 사는 주재원 가족이었다. 그 가족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우리와 정 반대의 코스로 여행 중이라고. 우린 이제 시작인데, 그 가족은 거의 마무리 단계네. 안타까워서 어째요. 텍사스 가면 올리버쌤한테 안부 전해줘요.


오늘의 메인 일정은 Monterey에서의 Whale Watching이다. 술고래들은 많이 봤지만, 진짜 고래는 처음인가. 분명 내비게이션 상 40~50분 거리였는데, 출발할 때 찍어보니 1시간 반 예상이었다. 어라, 일요일 오전에 이러기냐. 도로 위에 거북이 떼라도 나타났나. 오후 1시 30분 배 출발시간 맞추려면 엄청 빠듯하잖아. 시간 못 맞추면 나가린데.


원래 여유 있게 도착해서 점심 먹고, 오바이트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산책하며 소화 다 시키고, 쾌조의 컨디션으로 배를 타려고 했는데, 도착하니 1시 10분이었다. 주차장에 대충 주차를 해놓고 좌로 우로 길을 헤매다가 아슬아슬하게 Discovery Whale Whatching을 찾았다. 이미 가이드 설명이 시작된 후였다. 결국 우린 점심도 못 먹고 배에 탑승했다. 우리 가족 배 고프면 날카로워지는데, 난관이 예상된다. 


배가 생각보다 작았고, 오늘따라 파도들이 엄청 화가 나 있었다. 3시간 반을 이렇게 다닌다고? 살짝 무섭기 시작했다. 아쉬운 대로 가방 속의 초코바랑 스낵으로 긴급하게 아이들 꼬르륵 소리 정도만 잠재웠다. 가이드 청년이 지영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한국말로 인사말을 어떻게 하냐 묻더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따위를 수첩에 적어 놓는다. 다음 한국 사람에게 드립 치려고 공부하나 보다. 노력하는 청년들일세.


육지가 안 보일 무렵부터 파도는 더 거세게 치기 시작했고 배는 오뚝이처럼 좌우로 미친 듯이 기우뚱대며 자빠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Monterey의 Whale Watching 프로그램들 중 가장 저렴한 코스로 골랐더니, 배는 2차 세계대전 때 타던 것처럼 조그맣고 낡았고, 인어공주 아빠 트리톤 왕이 노했는지 점점 더 강한 파도들이 몰려왔다. 내가 고래라도 이런 날씨엔 수면으로 안 나오겠다.


10분 전 상황들이 그나마 더 좋았다고 느껴지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지아는 엎드려 현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지영이와 지우도 순서대로 뻗어버렸다. 샌프란시스코부터 6일째 입고 있는 겉옷들도 이 강풍엔 속수무책,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3시간 반짜리 고문을 돈 내고 받는 기분, 그냥 곤장 10대 맞고 마는 게 낫지, 이건 너무 힘들다. 고래가 나오건 대왕 문어가 나오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고래는 중간중간 실루엣 정도만 등장했지만,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다. 고래가 빼꼼 나오면 무조건 배를 멈추고 20~30분을 휘청휘청 거리며 서 있기의 반복이었다. 나중엔 고래 나왔다고 할 때, 팁 100불 주고 제발 그냥 돌아가자고 하고 싶었다. 결국 3시간 반 만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항구로 돌아왔고, 우린 아무 말 없이 그저 ‘절레절레’할 뿐이었다. 28일 중 오늘이 단연 최악의 하루로 기억되겠지. 오늘 이하가 나오면 큰일 나. 다시는 고래밥도 먹지 않겠다. 우영우 씨, 아무리 고래를 좋아해도 파도가 세찬 날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진 마세요.


아침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두어 시간 엎드려만 있던 아이들이 그래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이 밝아졌다. 땅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토록 좋을 일이구나. 이번 일정을 어레인지 한 책임자로서, 난 그제야 긴장이 풀려 온몸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뒷 타임 사람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승선을 앞두고 있는 것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상상하 건 그 이상일 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식당부터 찾았다. 검색할 시간도 없다. 스케줄 죄인으로서 어디든 빨리 들어가 세 여인 입에 뭐든 한 숟갈 넣어줘야 했다. 말의 시야각으로 주위를 재빠르게 스캔했다. Fisherman’s Cotto란 레스토랑이 보였다. 마침 웨이팅도 없었다. 웨이팅이 있을 리가, 지금 오후 4시 반인데.


식당 입장 후에야 검색해 본 Cotto는 이 지역 대표적인 맛집 해산물 레스토랑이었다. 이틀 전에 간 Fog Harbor Fish House의 상위 버전이었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에 오션뷰, 뽀도독 소리가 나는 가죽 소파가 태평양에서 싸대기 맞고 온 우리의 비루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줬다. 아이들도 가죽 소파 너무 편하다고 들썩거렸다. 이 소파 마석 가구단지에서 사셨나. 이 정도 퀄리티의 식당이면 내 옷에 뜨거운 커피를 엎질러도 팁 20% 드려야지.


최악의 하루를 보상받기라도 할 것처럼, 우린 가격을 보지 않고 메뉴 설명만 보고 음식을 시켰다. 크램차우더 수프, 랍스터를 곁들인 스테이크와 포테이토 요리, 완자를 품고 있는 크림소스 스파게티, 셰프가 개인기 잔뜩 부려 놓은 디저트와 tea까지, 제대로 풀코스를 즐겼다. 정신 건강을 위해 빌지를 보지 않았다. 계산하고 나올 때 아이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주셨다. 팁 2% 더 드릴 걸 그랬나. 고래로 다친 마음, 장미로 풀고 가겠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왔더니, 48불짜리 벌금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이런, 고래 비린내 같은! 4시간 전 시간에 쫓겨 주차만 하고 뛰었는데, 이곳은 사전에 주차비를 정산해야 하는 곳이었다. 고래고뤠, 이 정도는 붙어줘야 최악의 하루로 쐐기를 박지. 


Monterey의 숙소, Colton Inn으로 갔다. 정말 영화에 나오는 Inn의 모습이었다. 직원 한 명이 사무실에 앉아 있고, 모든 것은 셀프였다. 세탁기가 있을 리가 없지. 당장 내일 입을 속옷도 없는 상태라, 근처 빨래방을 검색했다. 다행히 25센트 동전 교환 자판기도 있었다. 


난 1.5톤으로 불어난 세탁물들을 들고 미션을 해결하러 나섰다. 동네 으슥한 곳에 위치한 세탁소였다. 첫 기계에 동전 배 터지게 넣었는데, 꿀꺽했다. 또 이런다. 고장 난 기계였다. Out of order, Not working 이런 거 좀 붙여 놓으면 안 되냐. 그래도 기계 꽝꽝 치면서 난동을 피울 분위기는 아니었다. 차에 총 두 세 자루는 가지고 있을 법한 인상의 사람들이 각자의 포즈로 멍 때리고 있었다. 동네 커뮤니티에서 한 밤에 laundry는 무섭다는 댓글을 보기도 했고. 


긴장을 풀지 않고 나 건드리지 말란 영역표시 차원에서 모자를 벗고 떡진 머리로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아뿔싸, 입고 있는 옷 등에 귀여운 폰트로 ‘HAWAII’라고 똻. 누가 봐도 난 관광객이었다.  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며느리 뒷걸음치듯 세탁소에서 총총 나와서 차에서 기다렸다. 애들이 먹나 남긴 하리보만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그래도 6일 만에 세탁과 건조까지 끝내니 속이 후련했다. 여행 새로 시작하는 기분.


최악의 하루였지만, 나름 뽀송뽀송한 마무리였네. 내일부터 상쾌하게 다니자.



Whale Watching 오리엔테이션 중 도착


먹을 것 찾아 가방 뒤지기
Soldier Down


그나마 가장 가까이서 찍은 샷.


Monterey 거리


Fisherman’s Cotto


너무 힘줬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안톤쉬거가 나올 것 같은 세탁소


안톤쉬거가 장기투숙 중일 것 같은 Colton Inn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여행 5일차 - Palo Alt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