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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5일차 - Palo Alto

2022.07.16.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프런트 데스크에 짐을 맡기고, Mason St.에 있는 Hertz로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나 혼자 다녀와도 되지만, 혹시 모를 고급영어 돌발사태를 대비하려면 지영이가 필요하여 결국 온 가족이 우버를 타고 함께 갔다. 가족여행은 뭉쳐 다녀야지. 샌프란시스코의 롤러코스터 같은 Up and Down 언덕길들을 감상하며 가다가 갑자기 며칠 전 멧돼지에 물렸을 때처럼 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텔에 맡겨 놓은 짐 속에 국제면허증을 놓고 온 것이다. 내가 그렇지 뭐. 그나마 도착하기 전에 떠오른 게 어디야, 아직 총명하네. 예쁜 언덕 집들을 한 번 더 감상했다. 저런 급경사 언덕에 집을 지으면 1층이 어딜까. 건물 왼쪽은 2층 집인데 오른쪽은 3층 집이라니. 쩜오층 정도로 치자. 지아는 분명 집 바닥에서 미끄럼 타는 상상을 하고 있겠지.


Hertz에 들어가니 옆 카운터의 중국계 손님이 전화로 바로 앞에 앉아있는 직원 뒷담화를 쏼라쏼라 한참을 떠들었다. 이 손님이 돌아가고 나니, 그 직원은 중국말을 할 줄 아는 분이었다. 어이없어했다. 대놓고 앞담화를 들었으니. 우리도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불어를 쓰는 사람들이 ‘저 가족은 왜 마스크를 전부 쓰고 있지? 이해가 안 간다’며 이야기한 것을 지영이가 들었다. 지들이 뭔데. 우리는 아직 실내에서 마스크 쓰는 민족이란 말이다. 게다가 우리 넷 다 입술에 보톡스 맞고 온 거면 어쩌려고. 이 세상엔 문신한 사람도 있고, 코 뚫은 사람도 있고, 마스크 쓴 사람도 있는 거지. 그 순간 기분이 나쁘다기 보단, 불어인데 그걸 알아들은 지영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환율과 물가에 발맞춰 렌트비도 폭등하는 바람에 어떤 차를 예약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으면서도 장거리 운전에 따른 승차감도 포기할 수 없어서, 장고를 거듭하다 가장 저렴한 급인 쉐보레 임팔라로 예약을 했다. 항상 그랬지만, 딱 예약한 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린 렌터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앞에 진상 고객과 씨름한 후,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매너 좋은 코리안 두 명이 서 있으니 기분이 좋았나 보다. 본인이 더 좋은 차를 한 번 찾아본다고 하더니, "Here you go~"하며 키를 건네는 표정에 이미 'You are welcome'이 묻어 있었다. 오, 감사합니다. 우린 카드키를 누르며 어떤 차에서 삑삑 소리가 날까 복권을 긁는 기분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침내 삑삑! 저 멀리서 우리 차가 자태를 드러냈고, 흰색 인피니티 세단이었다. 내심 그 옆에 있던 아우디 SUV를 기대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도 고맙지.


다시 호텔로 돌아와 맡겨 놓은 짐을 찾았다. 캐리어 3개가 트렁크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고 작은 거 하나는 뒷자리 밑에 눕혀서 넣고, 이불을 깔아서 지아 침대로 만들어줬다. 자, 이제 우리 떠납니다. 샌프란시스코 즐거웠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이름부터 힙한 팔로알토! 실리콘밸리 감성을 느껴 봐야지. 공복의 꼬르륵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우리 집 세 여인은 배가 고프면 날카로워진다. 그래, 우선 배부터 채우자.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아이들이 좋아할 메뉴로 찾다가, 팔로알토 지역의 Tofu House 소공동 순두부집을 골랐다. 메뉴판이 정겨웠다. 순두부, LA갈비, 고등어를 시켰더니 한식에 진심인 아이들이 오랜만에 밥그릇까지 먹을 태세다. 순두부집에서 팁까지 20만 원 가까이 나온 것이 어이없었지만, 우리 집 세 여인이 좋아하면 됐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목적지, 스탠퍼드 대학으로 향했다. 블루보틀 팔로알토점에 가서 샘 알트만이나 저커버그나 시간 되는 애들 모아서 티타임은 못 가질지언정, 스탠퍼드 대학은 가볼 수 있잖아. 모든 부모들이 꿈꾸는 장면이겠지, 우리 아이들이 "와, 나중에 나 여기 다시 올래" 다짐을 하고 돌아가서, 갑자기 폭풍 학업에 정진한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릴 꿈도 꿔보고. 말리지 마소, 꿈이라도 한 번 꿔보자. 멧돼지한테도 물리는데.


스탠퍼드 대학의 규모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만큼 넓었다. 분필로 바닥에 학교 테두리 좀 그러 줬으면. 너무 넓어 오히려 감흥이 떨어졌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아까 거기 같고. 학교의 절반은 기숙사로 보였다. 재들도 95년의 나처럼 학점 커트라인 못 넘기면 쫓겨나나.


우린 visitor’s center로 가서 차를 세우고, 후배 흥동이에게 연락했다. 스탠퍼드 기계공학과에서 석박사를 끝내고, 포닥 과정을 밟고 있는 복싱 동아리 후배였다. 스탠퍼드의 마동석으로 불릴 것 같은 듬직한 동생이었다. 흥동이가 Tresidder로 오라고 해서, 그게 어딘지 지도를 켜고 동서남북을 헤매고 있었는데, 교수로 보이는 신사 한 분이 어딜 찾냐며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와 도와주셨다. 역시 매너가 사람을 만드네. Tresidder는 현재 위치에서 걸어갈 거리가 아니라고 하셔서, 설명해 주시는 곳으로 다시 차를 타고 옮겼다.


‘Tresidder Memorial Union’은 학생회관 같은 곳이었다. 흥동이를 만나서 스탠퍼드에서의 지난 7년에 대해서 들었다. 우리가 기숙사 쫓겨나면서 팽팽 놀던 학부 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 내가 형이지만 말 높이고 싶었다. 선물로 복싱 글러브 키링과 달고나 한 봉지를 줬다. 지영이가 타지에서 후배를 만나는데 너무 성의가 없는 선물이 아니냐 했지만, 그 키링 2020년 Tokyo 올림픽 참가한 복싱 선수로부터 받아 내 사무실 책상에 걸어 놓고 있던 애장품이었다. 나에겐 나이키 100만 원 선물 쿠폰보다 더 사랑이 담겨 있는 선물인데, 그걸 몰라주네. 역시 흥동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달고나 지금 먹어도 됩니까”하고 그 자리에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선물 준 사람을 아주 흡족하게 만들어주는 리액션이었다. 7년 동안 차 없이 학교에서만 지냈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 4일 동안도 차가 없어 불편했는데,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7년 간 차 없이 학교-도서관-기숙사만 옮겨 다녔다니, 이 정도 돼야 스탠퍼드 박사가 되는구나. 멋진 후배, 좋은 학교로 교수 임용되길.


학교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모자와 수첩을 사는 것으로 팔로알토와 스탠퍼드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목적지는 San Jose의 Gilroy Premium Outlet. 10년 전에도 지영이와 둘이 들렀던 곳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애들 최애 브랜드인 Gap으로 향했다. 30%, 50%, 70% 세일 품목들이 즐비했다. 마음에 드는 여름옷 여러 벌을 샀는데, 10만 원이 넘지 않았다. 이 맛에 아웃렛 가는 거지. 나도 최애 브랜드 프로스펙스 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사고 싶지만, 매장이 없구나. 이런 브랜드도 소싱 못하다니, 이름에서 Premium 떼야겠다.


비싼 뚝배기 한 사발씩 했으니 이제 몇 끼는 저렴하게 때워야지. 호텔로 가는 길에 H마트에 가서 불닭볶음면, 진라면, 오이, 과일, 김치볶음밥을 샀다. 가격도 저렴했다. 이 정도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충분하다.


오늘의 숙소는 Wingate by Wyndham San Jose였다. 내일 오전에 Monterey로 가야 하는데, Monterey 토요일 밤 숙박료는 너무 비쌌다. 그래서 40분 거리지만 합리적인 가격인 이곳으로 예약했다. 세탁기가 없는 곳에서 오다 보니 빨랫감이 한 더미였다. 오늘 빨래를 못하면 내일까지 6일 연속 같은 옷을 입게 생겼다. 다행히 이 호텔에는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뽀송뽀송한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자. 지영이가 잠시 프런트 데스크로 갔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방금 체크인하던 한국 가족도 빨래를 잔뜩 짊어지고 있더라고. 우리가 먼저 찜 해야 한다고.


후다닥 빨랫감 1톤을 매고 세탁실로 갔는데, 25센트 동전을 8개 넣어야 했다. 세제도 동전을 넣고 사야 했다. 다시 태어나는데 그 정도는 써야지. 그런데, 세제 기계가 우리 동전을 몇 개 먹어버렸다. 미친. 동전 딱 맞춰 가지고 있는데, 이제 수량이 부족했다. 프런트 직원을 불렀더니, 로비에 동전 남은 것도 없고, 고장 난 기계 수리할 사람도 퇴근했다고 한다. 어쩌라고. 결국 세탁은 오늘도 실패. 런드리고 또 부르고 싶네.


갈증이 나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물이 없다. 내가 맥주 찾는 것도 아니고 물인데, 계속 야박하네. 프런트 데스크에 가니 물이 공짜도 아니었다. 이제 기대도 안 한다. 물 2개가 4불이라 5불을 냈더니 1불짜리 거스름돈이 없었다. 직원도 이쯤 되면 부끄러운지, 그냥 물 두 개 공짜로 가져가란다. 그래, 이걸로 퉁치자. 근처 세이프웨이 가서 뭘 좀 사 올까 했는데, 이미 9시가 넘어 영업 종료였다. 여기 사람들은 밤에 간식거리 안 사나.


샤워를 하고, 지우가 머리를 제대로 안 말리자, 지영이가 제대로 안 말리면, 아빠 냄새가 난다고 한마디 했다. 그 말을 들은 지우는 대박 화를 냈다. 나중에 지영이가 사과까지 했다. 어, 잠깐. Hold on, hold on. 이거 내가 삐질 일 아닌가? 아빠 냄새란 은유적 표현이 그토록 빡칠 일인가? 나 샤워하고 몸뚱아리에 세타필 로션 바르고, 외출할 때 존바바토스 향수 칙칙칙 뿌리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지우는 화가 안 풀려 삐진 채로 잠이 들었고, Seriously 그럴 일인가? San Francisco, Palo Alto, Stanford, Gilroy를 거쳐 San Jose까지의 동선 긴 하루도 저문다. 내일의 Monterey를 기대하며.



To infinity and beyond!


Palo Alto 소공동 순두부


Stanford에선 건질 사진이 없네


아직은 Gap이 hermes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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