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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y 20. 2016

10년 전 유럽 여행 - #바티칸

예전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요? 그랬더니 경주, 설악산, 제주도가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로 가셨단다. 서울 어디에 갔었냐고 물으니, 남산타워도 올라가고, 명동에서 칼국수도 드셨다고 하셨다. 남산 밑 어느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판을 벌였다는 기억도 떠올리셨다.


지우 지아도 나중에 아빠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이 궁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애들이 태어나기 전, 지영이와 단둘이 갔었던 2007년 8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여행, 비록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과 끄적거린 흔적들을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사진들의 디테일을 끄집어내다 보면,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들이 살아나길 희망하며...   






7일 차이자 유럽에서의 FullDay 마지막 날.


길거리 가게에서 브런치로 파니니와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시킬 때 주저하다가 지영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 사실 커피 종류 모른다고. 난 카푸치노랑 카페라떼의 차이를 몰랐다. 커피는 그냥 설탕의 양으로 구분해왔었다.  설탕 한 스푼 커피, 설탕 두 스푼 커피, 설탕 세 스푼 커피.


지영이는 문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떻게 커피를 모를 수 있냐며. '그래, 너 커피 종류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온 거다. 속여서 미안하다.' 그때부터 지영이의 커피 강의를 시작되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등.


아, 커피를 그렇게 구분하는구나. 생각보다 쉬웠다. 별거 아니었구먼. 그래서 난 앞으로 어떤 커피를 마시면 좋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답은 ‘카푸치노’. 그 이후로 난 몸은 바닐라 라떼를 갈구하지만 참으면서 카푸치노를 즐겨 마시는 남자가 되었다.


파니니. 내 스타일의 음식은 아니다.


커피 강의 후 마시는 카푸치노 한 잔.



브런치를 먹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 광장에 서 있으면 난간 위에 세워져 있는 140명의 성인상들이 둘러쌓고 있어서 괜히 나쁜 짓을 하기가 힘들 듯한데, 그래도 부지런히 새치기를 하는 소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곡성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들.


140명의 성인상들
비둘기 빵 뜯어주는건 좋은데 넘 큰 덩어리를 던진다. 목 막혀 죽을라.



바티칸 대성당의 내부. 수세기 동안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의 손을 거쳤지만 난 미켈란젤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건축가들에게는 미안하다. 그래도 대성당 앞에 위치한 성 베드로 광장에는 기억하는 이름이 몇 개 있다. 광장을 설계했다는 건축가 베르니니, 그리고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 베르니니는 잊을만하면 Bernini 스파클링 와인이 기억을 되살려주고, 오벨리스크는 예전에 마포 오벨리스크 아파트에서 2년을 살았었다. 거기서 교촌치킨 참 많이 시켜먹었었는데, 오벨리스크 탑을 보니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 생각났다.


이딸리아 여행책을 들고 걷는 누가봐도 여행객


마포 도화동 오벨리스크 아파트 주민이 오벨리스크 앞에서


바티칸 대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미켈란젤로의 비탄(피에타)을 볼 수 있다. 24살때 우린 다들 군에서 제대하고 세상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예비역 복학생 신분이 되어 피씨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을 때였고, 그나마 깨시민이었던 난 그런 친구들을 한심해하며 당구장에서 자장면 시켜먹던 시절이었는데, 마켈란젤로는 그 나이에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조각했다. 그리스도의 섬세한 근육, 성모 마리아의 비탄에 잠겨 있는 표정, 옷의 구김까지 보면 볼수록 빠져 들다가, 성모 마리아의 옷 위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보고 피씩, 웃음이 나왔다. 역시 젊었구나. 나도 젊을 땐 와이셔츠 소매에 이름 새기고 다녔다.


마켈란젤로의 피에타


첫 작품 피에타에 너무 많은 힘을 뺐나, 그 뒤로는 집중력이 떨어져 사람들 흘러가는 대로 따라다녔던 것 같다. 사진만 부지런히 찍었구나.


천장 작품들이 예술이다


천장 작품들이 진짜 예술인가?


오른쪽 어깨 카메라, 왼쪽 어깨 프라다, 이번 여행 구입품들. 양쪽 어깨 가격은 비슷.


큰 카메라 사기 전까지 우리집 주력 카메라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입구에서 관련 책을 만 원 주고 샀는데, 들어오니 핸드폰처럼 생긴 기계를 통해서 각 작품마다 부여된 번호를 누르면 작품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다만, 조각상들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머리도 하나같이 다 완전 곱슬이고, 팔도 한쪽씩 없다 보니, 누가 누군지 헷갈렸다.


작품 설명 듣는 중 - 언어는 English 선택


작품 설명 듣는 중 - 언어는 Korean 선택


최후의 심판, 라파엘의 방, 프레스코화 등 내가 어설프게 감상평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만한 유명 작품들을 볼 땐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카메라를 잠시 꺼두었다.


나가는 길


나가는 길 - 이 사진 찍으려고 열라 뛰어 내려갔다.


바티칸 대성당과 박물관은 나름 체력을 많이 요하는 코스라, 나오자마자 허기부터 채워줘야 했다. 박물관 바로 앞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두 접시를 주문했고 10분 만에 새우 껍질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먹고 나서 소나기가 내렸는데, 오늘이 우리의 유럽 여행 마지막 날이고 콜로세움을 아직 못 갔다는 것을 알았는지, 곧 그쳐주었다.


바티칸 박물관 앞 레스토랑


10분 후


가자, 콜로세움으로.


콜로세움에 도착하면 정말 별 것 없을까 봐, 그리고 콜로세움을 보고 나면 정말 여행이 끝나버릴까 봐,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고 가는 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다.


저 멀리 콜로세움. 비가 또 올 것 같은 날씨
가까워오는 콜로세움


거의 다 왔다, 콜로세움


난 세계사 과목에서 “수우미양가” 중“수”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부서진 건물들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난 역시 스위스의 전원마을이나 호숫가가 더 좋다. 그래도 콜로세움은 사진의 배경으로는 멋있었다.


그래, 콜로세움


4명의 보초병


어릴 때 레고로 성을 자주 만들곤 했는데, 나도 항상 성문 위쪽에 저렇게 보초병을 세워두곤 했었다. 그러다가 성 밖만 쳐다보는 그들이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성 안으로 이동시켜서 고개도 돌려주고 발도 움직여주고 C자로 생긴 손도 위아래로 자주 흔들어주곤 했었는데, 저 사람들도 이동시켜주고 싶었다.


포로로마노.


태풍이나 지진이 오면 남아 있는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다음에는 로마인 이야기 책이라도 읽어보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부서진 건물들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내가 꼽은 지영이 유럽여행 베스트샷(1)


깃 세우고 MP3 듣기 - 중랑구에서 먹어주던 스타일


내가 꼽은 지영이 유럽 여행 베스트샷(2)


여기 들어가보니 전생에 이 동네에서 살았던 것 같았다.


호텔 돌아와서 공항 출발하기 전 마지막 사진


이렇게 우리의 짧고도 길었던 2007년 여름 유럽 여행이 끝이 났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땐, 방학 끝나기 이틀 전부터 일기를 몰아 써도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뇌의 뉴런들이 많이 손상된 마흔이 되어서 10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2007년 유럽에서의 우리를 다시 만나면서, 조금은 더 젊어진 듯하다.


훗날 지우와 지아에게 좋은 선물이 되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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