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8 목요일, 여행 1일 차
2016.01.28.04:10 pm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강변북로에서 와이프의 마지막 숙제를 챙긴다. 아이들 반창고, 하와이에 이미 가 있는 와이프 친구 설영이가 사 오라는 떡볶이 2개, 차에서 칭얼거릴 애들을 5분 정도 진정시켜 줄 마이쭈, 그리고 물티슈를 사 오란다. 와이프가 짐을 다 꾸리고 있고, 난 ‘여권 챙겼어? 면도기 챙겼어?’ 등등의 사족 질문은 일절 하지 않을 만큼 와이프가 일하는 것을 절대 신뢰한다.
이번 여행 패키징은 사상 초유 12일이란 긴 여행 기간, 계절 바뀜이 기다리는 여행지, 삼시 세끼 애들 먹일 식량, 여행지에서의 Action plan 등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고난도의 패키징이 예상되지만, 난 그냥 나머지 99%를 와이프에게 모두 맡기고 문자로 보내온 마지막 숙제 - 반창고, 떡볶이, 마이쭈, 물티슈, 이 4개만 제대로 챙기자는 마음으로 집 앞 마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떡볶이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와이프가 사 오라고 사진까지 보내준 종류는 없었고, 비슷한 류의 떡볶이만 진열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에 있어서 결단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라, 떡볶이를 한 종류씩 비교해보다가, 포장을 보고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그냥 아무거나 두 개 샀다. 위험 분산차원에서 서로 다른 브랜드로 하나씩. 그리고 비닐봉지 안 체크 - 하나, 둘, 셋, 넷, 4가지 다 샀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갔더니 와이프의 첫 번째 질문, “물티슈 사 왔지?” 헉. 물티슈는 빠뜨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난 item보다 외우기 쉽게 숫자 네 개만 기억하고 있었고, 떡볶이 서로 다른 두 개를 사면서 일이 꼬였다. 반창고, 마이쮸, 떡볶이 1, 떡볶이 2 – 이렇게 4개로 카운팅을 한 것이다. 요령으로 일할 때 요 따위 기본적인 실수가 나온다. 그래서 사람은 머리를 믿지 말고 적어야 해. 물티슈를 빠뜨리고 안 사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와이프는 마치 빠뜨릴걸 알았다는 듯이 집에 있는 물티슈를 챙겨 넣는다. 이건 뭐지?
2016.01.28.05:30 pm
진짜 출발할 시간.
이번 여행을 화려하게 시작시켜 줄 공항 픽업 리무진 서비스. 와이프가 VISA 뭐 시기 뭐 시기 카드를 신청했는데, 그 서비스 중 하나가 고급 세단이 나와서 출도착 시 집과 인천공항을 왕복해준다. VISA 뭐 시기 뭐 시기로 표현한 것처럼 난 이런 부분에 무지하다. 할인쿠폰이나 부가서비스도 잘 활용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도 아닌 놈이, 그냥 귀차니즘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와이프도 이런 분야에 썩 발달한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나아서, 이런 뭐 시기 뭐 시기 서비스들을 가끔 실생활로 연결시킨다. 그중 이번 공항 픽업 리무진 서비스가 가장 마음에 든다.
역시 프리미엄 서비스. 정확하게 5시 30분에 에쿠스가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와있다. 트렁크 사이즈 상중하 3개를 꽉 채웠으나, 차 트렁크에 여유 있게 들어간다. 써 놓고 보니 트렁크, 트렁크 같은 단어구나. 이럴 때 쓰라고 우린 유사어를 배웠다. 전자는 캐리어, 후자는 화물칸으로 바꿔본다.
[4인 가족의 11박 12일 하와이 출발 전]
공항에 6시 30분쯤 도착하면 9시 30분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여유 있게 남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가벼운 아이쇼핑을 하고, 마티니 라운지에서 우아하게 식사하고 깔끔하게 샤워한 후 게이트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한 시간 내로 탑승수속을 끝내는 것.
하와이는 역시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여행지라 그런지, 혹은 우리가 가장 혼잡할 시간에 가서 그런지, 수속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서둘러 마티니 라운지까지 뛰어갔으나 이미 저녁 시간이 마감되었고, 옆의 허브 라운지까지 다시 뛰어가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의 계절 이동을 위해 옷을 가볍게 갈아 입고 탑승 완료. ‘비행기를 타고 영화 한 편 감상하고기 내식을 먹고 눈을 잠시 붙였다가 깨어보니,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라고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탑승 전의 혼란스러움은 탑승 후의 아비규환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밤 10시에 이륙하여 8시간 비행이니, 애들 재우고 나면 여유로운 비행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지아가 거의 밤을 꼴딱 새우며 징징댔고, 그로 인해 나머지 3인 역시 초췌한 몰골로 이어지는 비행이 되었다. 그나마 손주 좀 키워보셨을 것 같은 할머니 네 분께서 우리 앞 좌석에 앉으셔서 지아의 징징거림을 견뎌주셔서 다행이었다.
어떤 여행 블로그에서도 Red-eye flight에서 애들이 잠을 못 자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10명 중 9명이 잘 잤다고 해도, 당신의 자녀가 그 1명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래도 지우가 생각보다 의젓하게 비행에 임해줬다.
앞 좌석 할머니들이 내리면서, 징징대던 지아 말고 애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보고 놀라셨을 만큼, 지우는 존재감 없이 조용히 비행에 임해줬다. 이제 지우 데리고는 별나라도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마우면서도, 언제 이렇게 컸는지 짠한 생각도 들었다.
한 때는 기내식이 로망이었다.
여행이건 출장이건 국제선에서만 제공하는 기내식을 자주 먹으며 살고 싶었다. 분명 이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땐 "Abroad"가 핵심이었으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기억하는 것처럼, 점차"기내식" 먹는 것 자체가 너무 그리워서 자취할 때 편의점에서 기내식을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기내식을 그리워하던 그 시절, 친구 놈들과 우리끼리 처음 해외여행을 가면서,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스튜어디스에게 기내식 하나만 더 달라고 하자는 내기를 했었다. 20대 땐 요따위 내기를 참 많이 했다. 내기해서 진 사람이 양치하고 헹군 물 그대로 마시기, 스키부츠를 신은 채 에스컬레이터 역주행하며 올라가기, 한 겨울 얼굴에 물을 뿌린 채 영하의 날씨에 얼굴만 창문 밖으로 3분 동안 내놓기 등등, 내기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주로 하던 내기 난이도로 봤을 때, 기내식 "Eat One, Beg One More" 이벤트는 분명 훨씬 빡세고 오글거리는 멘트도 함께 건네야 했던 걸로 기억나고, 어렴풋하게 내가 걸려서 벌칙을 수행했는데, 남은 기내식이 없다고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기내식을 언젠가부터 남기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난 이번 비행에서 전혀 졸리지도 않고, 영화도 안 보고 있었고, 지우 지아가 본격적으로 떼를 쓰기 전 평화로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내식을 그냥 Pass 했다.
그 순간, 키가 한 뼘이나 부쩍 자란 기분이었다. 예전에 비싼 뷔페에서 두 접시만 먹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게 난 어른이 되어버렸고, 특히 기내식 따위는 쿨하게 Pass 할 수 있는 글로벌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도착 이후 며칠간 시차 적응 못하며 밤잠 설치고 늦잠 잔 걸 생각하면,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에만 진입해도, 눌린 헤어스타일 다시 고쳐 잡고, 혀 안쪽으로 부산 사투리 고이 접어 삼켜버리고, 63 빌딩을 보며 수도 서울에 왔으니 정신 ‘똑띠’ 차리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는, 이 육신의 촌스러움은 숨길 수가 없구나.
지아가 비행기에서 잠깐잠깐 진정될 때마다 틈틈이 본 영화 ‘세시봉’. 조금 수명이 오래된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감미로운 음악 감상이 핵심인 ‘세시봉’을 시청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음질 및 헤드폰 상태였지만, 비행기에선 ‘돈 주고 극장 가서 볼 것 같지는 않지만 한 번은 보고 싶은 영화’를 몰아서 보기 딱 좋은데, ‘세시봉’이 딱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영화였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고, ‘바람’ 때부터 정우의 팬이었기에 그의 메소드 연기는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효주라는 배우가 생각보다 예쁘고 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한효주의 후속작인 ‘뷰티 인사이드’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시간의 영화와 6시간의 지아의 징징거림 속에서 하와이 공항에 도착하였고, 예전에 세부인지 푸켓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착륙하며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여행 온 사람들이 다 같이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나는데, 하와이로의 착륙은 사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하와이 공항은 인천공항과는 당연히 비할 바가 못되고, 조금 큰 김포공항 느낌이었다. 공항에서의 풍경 또한 특별한 것이 없어서, 적어도 공항에서의 View 만큼은 제주도한테 확실히 졌다.
첫 번째 미션으로 Hertz에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 길은 아주 쉬웠다. 그냥 와이프만 따라가면 된다. 난 어떤 차를 렌트했는지도 모른 체 왔고, Hertz 담당자가 하루에 25불만 추가하면 Audi SUV로 업그레이드해주겠다고 날 꼬드겼는데, Yes or No 경계선상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눈치챘는지, 와이프가 와서 ‘No, thank you’ 한 마디로 상황을 깔끔하게 종료시켰다.
일단 Audi SUV보다는 낮은 그레이드의 차란 것만 확인하고, 오늘 출고 예정인 렌터카들이 모여 있는 주차구역에 도착한 다음, 포커 판에서 마지막 카드를 정성스레 쪼아 보는 기분으로 자동 키를 누르며 차를 찾았는데, 저 멀리서 ‘삐빅!’ 소리가 난다.
그곳엔 멋진 흰색 세단이 반갑다고 깜빡이를 깜빡거리고 있었다. 내심 아반떼 급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제법 큰 Dodge Charger가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Charger 양 옆으로 소형차들이 놓여 있어서 적당한 착시효과로 Charger가 더 거대하게 보였다.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첫 운전이다. 저레벨이 나올 거면, 피아트의 ALFA ROMEO가 나왔으면 더 흥분되었겠지만, 12일 동안 나의 애마로 기대 이상의 차에 만족했다.
[Dodge Charger, 첫 만남]
3개의 트렁크(동의어로 캐리어)는 Charger의 큰 트렁크(동의어로 화물칸)에 넉넉하게 들어갔고,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미국 내비게이션을 장착하였는데, 화면도 너무 작고 안내양의 영어 발음도 이상하고 뭔가 전반적으로 불친절하다.
그래서 애플 기본 지도 앱을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애플이다. 한국에서는 김기사 앱만 사용하여 애플 지도 앱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미국 지형에 더 강한지, 엄청난 디테일과 정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준비해 간 미국 내비게이션은 차 수납장 안에 처박혔고, 12일 동안 밖을 구경하지 못하였다.
Dodge Charger도 그렇고, 애플 지도 앱도 그렇고, 역시 열위한 비교대상의 존재로 인하여 만족도가 더 커진 케이스다. 이 순간, 나의 평범한 외모를 이 정도는 훈남이라고 스스로 자신하게 만들어주는 몇몇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 고마운 못생긴 친구들.
첫 번째 목적지는 Costco. 공항과 가깝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공간이라 Target, Walmart 등을 제치고 첫 번째 목적지로 선정되었다. 역시 Costco는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하다. 그냥 코스트코 상봉점에 온 기분.
기본적인 식량 구입, 핫도그로 끼니 해결, 아이들 수영장비 구입의 목적도 있었지만, 카시트 구입이 시급하였다. 지아 카시트는 한국에서 가져갔는데 지우도 카시트에 태우고 다녀야 한다고 해서 가장 저렴한 모델로 하나 사려고 했으나, Costco에는 유아용만 있을 뿐, 9살 아이에 맞는 카시트는 팔지 않았다. 그래서 과연 9살 아이도 법적으로 카시트에 태우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정보였는지 급 궁금해지긴 했으나, 뭐 법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태워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으로 진위여부를 따로 검색을 해보진 않았다.
일단 Costco에서는 카시트 미션을 실패했고, 근처의 Walmart나 Target에 가볼까 하다가, 우선 숙소가 궁금해졌다.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이 차가 피곤하지 내가 피곤할 일은 아니었지만, 화물칸에 짐들이 가득 실려있다는 정신적인 무게감은 대단했다. 그래서 Waimanalo Beach 근처의 숙소부터 들러서 짐을 풀어놓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집 근처 Kailua 지역 Target으로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번 우리의 여행지인 오하우 섬의 지도는 여행 오기 전 워낙 많이 봐서 동서남북이 머릿속에 숙지되어 있다. 내륙을 가로지르는 종단 횡단 Highway와 몇몇 주요 도로들만 익숙해지면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큰 불편함이 없을 듯했다.
와이키키에서 출발하여 H1 Highway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61번 Pali Highway를 타고 동쪽으로 20분 정도만 가면, 눈앞에 오바마 대통령도 사랑한다는 Kailua와 Lanikai Beach가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을 잠시 감사하다가 Kalanianaole Highway에서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내려오다가 Waimanalo Beach에 거의 도착할 때쯤, 우리의 집이 있는 Ehukai Street가 나온다.
근데 여기는 참 길 이름을 어렵게 짓는다. Kalanianalole는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 발음하는지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고, Kamehameha highway는 워낙 맘에 드는 드라이브 길이라 수십 번의 반복 학습 끝에 입에 착 달라붙게 되었다. 카메하메하 하이웨이. 와이프는 카메하메하까지는 어렵사리 따라 했지만, 뒤에 하이웨이를 붙이면 또 헷갈려한다. 간장공장 공장장 수준이다.
[첫 번째 집이 있던 Ehukai Street]
난 호기심이 많은 편은 아니나, Kalaniana’ole처럼 괴상한 이름은 과연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나름 고등학교 때 영어 Vocabulary 22000을 외웠던 사람으로서 산마루로, 옹달샘로와 같이 예쁜 단어와 결합된 도로명이 아닌 것은 알겠고, 그렇다면 왠지 사람 이름일 듯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 그러했다. Jonah Kuhio Kalaniana’ole라는 이름의 1900년대 초반 하와이 왕자가 있었다.
내친김에 Kamehameha도 찾아보니, 그 역시 왕족이었다. Wikipedia에 Kamehameha가 Kalaniana’ole보다 훨씬 많은 설명이 담겨 있고, 좀 더 긴 도로를 배정받은 걸로 봐서, Kamehameha가 하와이에서 조금 더 의미가 큰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 긴 설명 중 ‘Kamehameha has many wives’라는 문장에 눈에 쏙 들어왔다. Kalaniana’ole도 가족관계를 찾아봤는데, wife 단수형이다. 역시 Kamehameha가 훨씬 훌륭한 사람이었나 보다.
하와이 길 이름 중 가장 마음에 든 것은 Likelike Highway였다.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인가. ‘좋아 좋아 길’이라니. 그런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이 이름마저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Wikipedia에 ‘Miriam KapiliKehauluohi Likelike was a Princess of the Kingdom of Hawaii’로 나와있다. 이 대목에서는 조금 서운함을 느꼈다. 그냥 ‘좋아 좋아 길’이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름이 복잡하면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이번 여행에는 4권의 책을 가지고 갔다. 하와이 여행 가이드 책 ‘Enjoy Hawaii’까지 합치면 5권이구나. 무라카미 하루끼의 ‘시드니’, 리오북스의 ‘철학 읽는 밤’, 넥슨의 21년 역사가 담긴 ‘플레이’, 그리고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이 중 가장 부담 없는 단편 소설인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러시아 책이라 그런지 극 중 주인공들의 이름이 ‘이반 드미뜨리치 체르뱌꼬프, 예브스뜨라따 스삐리도니치, 일리야 세르게이치 뻬쁠로프, 끌레오빠뜨라 뻬뜨로브나, 올가 이바노브나 이르니나’ 이런 식이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 이름들이다. 유정이와 홍설이가 연이대학교에서 벌이는 사랑이야기는 감정 이입하며 작품을 따라가기 얼마나 쉬운가. 니꼴라이 일리치 벨랴예프와 올가 이바노브나 이르니나 여사가 뻬째르부르그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는 이름만 따라가다가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과연 이 러시아 작품이 제대로 번역된 것인지부터 의심이 들면서 전혀 감흥이 오질 않는다.
그렇게 이름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한 명의 wife밖에 없었던 왕 이름을 딴 도로 Kalaniana’ole Highway를 거쳐 앞으로 7박을 보낼 Ehukai 길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첫 번째 숙소 풍경]
집의 첫인상은 애매했다. 난 우리가 독채를 쓰는 줄 알았으나, 우린 2층 집을 4 등분했을 때, 1층의 뒷부분을 할당을 받은 것이었고, 이미 수영장을 점령하고 있던 20대 중후반의 젊은 미국 친구들이 한 여름의 베짱이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연주와 노래 실력이 훌륭하지 못하여 휴가지에서의 여유와 낭만이라기보다는 이건 분명 소음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소음을 뚫고 조금은 열악한 셔터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훌륭했다. 4인 가족에 딱 맞는 크기와 아늑함이다. 오히려 독채로 너무 큰 공간을 사용하면 여행지에서의 단란함이 사라졌을 듯하다.
난 짐을 옮기느라 계속 들락거렸고, 수영장의 베짱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한다. 인사성은 참 밝은 아이들인데, 노래는 정말 못하는구나. 비록 Costco에서 피자와 핫도그를 먹긴 하였으나, 하와이에서 공식적인 첫 식사가 준비된다.
대망의 첫 식사는 한국에서 가지고 간 포장 미역국, 김, 장조림 캔과 햇반. 애들은 김, 엄마는 미역국, 아빠는 장조림 캔 위주로 먹었다. 단출하지만 한 끼 후다닥 때우기엔 나쁘지 않은 구색의 식사를 끝내고, 우린 Target으로 장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지우의 카시트부터 빵, 햄, 쨈, 버터, 맥주, 주스, 과일, 스타벅스 커피, 간식거리, 애들 물놀이 도구 등등 한 카트 잔뜩 장을 봤고, 눈짐작으로 300 달러쯤 나올 줄 알았는데, 199달러가 찍혔다. 역시 미국은 소비의 천국이구나. 저 많은 음식들 중 내가 카트에 슬며시 넣은 것은 딱 하나, 크램차우더 수프 캔. 내일 아침 난 저 수프를 주식으로 삼으리라.
[Target에서의 첫 번째 장보기]
첫 번째 날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은 현지시각 새벽 2시.
하와이가 한국보다 19시간 늦으니, 43시간짜리 하루가 끝났는데 어이없게 아직 컨디션이 쌩쌩하다. 한국시간도, 하와이 시간도, 두 시간대의 중간도 아닌, 굳이 따지만 두 지역 시간의 반대쪽 중간쯤 시간대로 어설프게 시차 적응을 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알코올 성분이 없는 A&W Root Beer를 한 병 마시니, 그제야 눈이 스르르 감긴다.
Good night, Hawa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