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ha Hawaii - #7

2016.02.03 수요일, 여행 7일 차

by 손창우


두 번째 숙소로 이사하는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부지런한 와이프가 이미 짐을 싸고 있다. 지금 짐을 싸면 잠시 후 호텔에 가서 다시 짐을 풀어야 하고, 며칠 후 한국 돌아가기 위해 다시 짐을 싸야 하고, 최종적으로 집에서 다시 짐을 풀어야 하는 연속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고도의 일관성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일은 한 명의 프로젝트 리더가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 한 명의 리더는 와이프가 맞다. 내가 귀챦아서가 아니라 와이프가 나보다 워낙 뛰어날 뿐이다. 그렇다고 난 베짱이처럼 소파에 늘어져 일하는 모습만 구경하지는 않는다. 나의 손길이 필요한 다른 사이드 업무들을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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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직전의 어수선한 거실]



우선 쓰레기들을 버렸는데 여기는 분리수거를 빡세게 안 해서 너무 편하다. 나름 분리수거 습관과 지구를 구하고자 하는 메칸더 V 정신이 남아 있어 나라도 최대한 세분화하여 분리수거를 하고 싶은데, 이미 Trashcan에 쓰레기들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려져 있다. 공동책임은 무책임, 나도 그냥 대세에 따라서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자, 이제 세차 좀 하자.


차 안이 모래사장을 넘어 사막이다. 그것도 쓰레기와 음식찌꺼기들로 오염된 사막. 일단 자동세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주유소를 찾아 나섰다. 집 앞 76 주유소는 너무 열악하여, 주유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만한 곳이다.


바로 옆에 허름한 이발소도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기서 머리 깎고 나면 머리 감겨줄까? 머리 감은 후에는 서울말로 “손님, 어디 더 헹구고 싶으신데 없어요?, 부산말로 “아재, 어디 찝찝한데 없어예?”하고 질문을 할까? 웬만하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저기서 이발을 하면 귀까지 잘라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Pass.


76 주유소에서 일하는 분에게 자동 세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물어봤더니, 본인도 잘 모르겠지만 Kailua 쪽으로 가면 주유소가 많으니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10분 거리지만 거기까지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지금 돌아가도 내가 큰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확신과 마지막으로 Kailua 마을을 한 번 더 구경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Kaliua로 향했다.


Kailua는 하와이의 대표적인 부촌이고 좋은 집들은 언덕 위에 많이 있다고 하여, 윗마을로 올라가 봤더니,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 같은 집들의 연속이다. 그나마 내가 명품도시 남양주 시민이라 그리 꿀리진 않았지만,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 그림 같은 배경으로 나이키와 아디다스로 무장한 채 닥터드레 헤드폰을 끼고 조깅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문의 1패, 인정한다.


부자라서 자기 관리를 할 여유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저렇게 자기 관리를 잘해서 부자가 되었는지, 정확한 인과관계는 파악하기 어렵겠지만, 부자 동네에는 확실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동네에는 Chevron, Shell, Mobil 등 큰 주유소들이 제법 보였다. 두 군데를 들렀는데 자동 세차하는 곳은 없었다. 여긴 집에서 각자 세차를 하나? 이쯤 되면 대안을 생각해야 했고, 순간 소싯적 손가이버 때 많이 사용했던 뇌 부위에 스파크가 튀면서, 내부 세차 솔루션으로 스카치테이프가 떠올랐다.


어차피 지아 카시트를 박스 포장해서 수화물로 실어 보내려면 스카치테이프가 필요했는데, 스카치테이프로 차량 구석구석의 모래를 다 찍어내면 되겠구나. 요즘은 이 정도의 아이디어만 나와도, 내 창의적인 사고 리스트의 최상위권에 오르게 된다. 혼자 ‘손가이버 살아있네~’를 외치며 차를 돌린다.


스카치테이프를 사기 위해 집 근처 SHIMA’S Supermarket에 들렀다. 왠지 하와이에만 있는 로컬 슈퍼마켓으로 보여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입구에 한 여자의 얼굴 사진이 알로하~하며 웃는 표정으로 걸려 있어서, 난 SHIMA’s의 창업주 정도 되나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달의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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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Shima's Supermarket]


그러고 보니, 나도 2001년 미국에 잠시 와서 어학연수 겸 인턴으로 San Diego Marriott Hotel의 front desk에서 일할 때, 12월 이달의 사원에 뽑힌 적이 있었다. 손님들이나 다른 직원들이 고마운 일이 있을 때 ‘Thank you letter’를 써서 호텔 구석구석에 비치된 박스에 넣었는데, 한 달 동안 ‘thank you letter’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이달의 사원에 뽑히는 방식이었다.


난 짧은 영어를 단기간 세탁할 목적으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가 내가 일하는 시간이었지만, 다른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거나 지각을 할 때 기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커버해줬다.


그중 에디 머피를 닮았던 Concierge의 근태가 가장 불량했는데 - 이 친구는 실제로 단역 오디션을 보러 다녔었다 - 난 이 친구의 백업하는 것을 가장 즐겼다. Concierge는 주로 손님들의 짐을 방까지 올려주거나 가지고 내려오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Tip을 1~2불씩 받는 것이 쏠쏠했다.


한 번은 지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샌더스를 닮은 할아버지 방에 짐을 가지러 갔는데, 인자한 얼굴로 “How are you?” 하시길래 “Much better since I sawyou, Sir”이라고 발랄하게 대답했더니, 활짝 웃으면서 Tip을 10달러를 주셨다. 난 너무 기쁜 나머지 “Thanks a million”이라 대답했었다. 내가 Thanks 뒤에 a million을 붙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근태가 좋지 않았던 Front desk와 Concierge 파트 직원들의 시간을 커버해주다 보니 'Thank you letter'가 하나씩 쌓여갔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12월에 이달에 사원에 뽑혔다. 당시엔 이달의 사원에 뽑힌 직원들의 사진을 직원 복도에 쭈욱 걸어놨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사진은 없겠지만 어디엔가 기록은 남아 있겠지? 그때 부상으로 받았던 Tiffany & Co 순은 키홀더는 지금도 색은 많이 바랬지만 우리 차 키를 매달고 다닌다.


Shima's Supermarket 이달의 사원 덕분에 그때 일을 잠시 추억해보며 매장 구석구석을 구경했는데, 그다지 특별하진 않았고,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알파문고를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난 3M 스카치테이프 하나만 사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난 누런 스카치테이프 반 통을 다 써가며 차 구석구석 모래들을 찍어내며 버렸다. 대략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나름 도저히 스카치테이프가 침투하기 힘든 사각지대, 구석 틈을 제외하고는 모래 대부분을 정리했다.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깨끗한 차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까지 날아와서 모래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카시트를 위해서, 하와이의 강한 자외선과 뜨거운 햇살에 일광욕도 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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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욕 중인 팔자 좋은 카시트]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여기가 뭐라고, 겨우 7일을 함께한 집인데 아쉬워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댄다. 바퀴벌레만 나오지 않았다면 완벽했었을 집. 그래도 바퀴벌레가 집 안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저렴한 렌트비와 첫날 노래 부르던 베짱이들을 제외하면 존재감 제로의 옆 집 사람들, 그리고 친절했던 house keeper까지 고려해보면 ‘투 떰즈 업!’ 양손의 엄지손가락들을 살포시 치켜들어주고 싶다.


자, 이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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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든 짐이 화물칸 속으로]



아,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시동을 켜놓은 상태에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꼭꼭 숨어있던 이들을 어렵게 찾아서, 덕선이 옆으로 준열이를 옮겨줬다. 배고픈 사람들도 많으니 이제 비 온다고 사람들 눈에 띄게 산책 다니지 말고, 무뚝뚝하게 맘 속으로만 혼자 생각하지 말고, 좋은 거 표현하면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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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덕선이와 준열이]



그렇게 7일 전처럼 짐을 가득 싣고 Waimanalo를 출발하여, 서쪽 Ko Olina Beach로 향했다. 내륙을 가로지르는 최단 소요 루트가 있었지만, 동부 해안도로를 타고 남쪽을 경유하는 길을 택했다. 영어 발음 좋은 내비게이션의 안내 여성분도 계속 유턴하라고 쪼아대더니, 이내 나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재검색 후 아름다운 해안길을 안내해준다.


사실 지난번 Jellyfish 때문에 못 가본 Hanauma Bay가 계속 아쉬웠다. 어차피 짐은 다 있으니 여차하면 Hanauma Bay바닷속에 뛰어들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 또다시 “WarningBeach Closed. Due To : Jellyfish”.


나랑 지금 장난하냐. 해파리는 천적도 별로 없다는데, 이쯤 되면 내가 해파리의 천적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의 막강 부산 사하구청 하천관리 공익근무요원 10명만 투입해도 몇 시간이면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는 구청에서 일 안 하나.


우린 다시 직진하여 와이키키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곳이 애매해 RoyalHawaiian Center라는 곳으로 갔다. 첫 와이키키 시내 나들이에 앞서 일단 점심부터 해결하기 위해, Food Court에서 Panda Express 중국 음식과 Pho 음식을 시켰는데 그 맛이 오 마이 갓, 역대급 쉣!이다.


이 음식들은 옆에서 ‘어이! 음식 좀 던져봐’하는 표정으로 기웃거리고 있는 비둘기들에게 던져줘도 무시 당하리라. 한 끼 식사가 아까운 판에 이런 음식을 뱃속에 넣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꾸역꾸역 넣었지만, 음식의 절반은 쓰레기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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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쇼핑 거리. 무지개가 보인다]



그리고 시작된 약간의 쇼핑. 와이프와 나는 2개 조로 움직였고, 구매 결정 장애인 나는 어차피 사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아이쇼핑 눈은 높아 명품 매장으로 향했다.


최상급 명품 브랜드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인지를 못했을 테고, 난 Ferragamo, Armani, Hugo Boss, Polo 매장을 차례로 들렀다. Polo는 더 이상 명품 카테고리로 넣을 급은 아닌 듯 하지만, 워낙 어릴 때 부잣집 애들의 상징이었던 ‘말 그림 옷에 리복 농구화’ 조합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지금도 Polo를 입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너 좀 살구나’하며 박수를 치곤 한다.


그나마 이 매장들 중 'Upto 60% Sale' 하는 Armani 매장의 옷 몇 개가 눈에 들어와서, 나중에 와이프를 데리고 다시 매장을 방문했으나, 역시 옷 취향이 전혀 다르다. 와이프 검수 과정에서 가볍게 탈락.


결국 우리의 와이키키 중심가 쇼핑은 ABC 매장에서 지인들 선물 몇 개 사는 걸로 끝이 났고, 요즘 “나 이거 살래!” 병에 걸린 지우 지아도 각각 하와이풍 원피스 하나씩 사주고 마무리했다.


중간에 잠시 들린 SEPORA에서 며칠 전 가방 분실로 잃어버린 와이프 화장품들을 몇 개 다시 샀는데, 그곳에서 지우가 화장을 한 남자를 처음 봤다. 짙은 화장을 한 남자를 매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나에게 무언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아이 눈높이로 균형 잡힌 설명을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일단 Pass, 애써 눈빛을 외면했다.


자, 충분히 시간을 때웠고, 이제 출발하면 Check-in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겠다. 다시 차를 타고 애들에게는 낮잠 한 숨씩 자라고 해두고, 난 내비게이션에 “MarriottHotel in Ko Olina” 대신 다른 주소를 하나 찍었다. 사실 하와이 오면 개인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제법 우회하더라도 한 번 가 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우리가 목적지까지 최단 루트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 다가갈수록 나의 피가 끓어오른다. 대충 근처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와이프가 창 밖을 보다가 한 마디, “오빠, 저기 UFC 체육관 있어.”


헉, 난 수업시간에 과자를 몰래 꺼내 먹다가 들킨 사람처럼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알아. 저기 들릴 거야.” 내비게이션은 “BJ Penn UFC Gym”행 좌회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격투기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와이 출신 BJ Penn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나 같은 격덕후들에게 BJ Penn UFC Gym은, 마치 그 식당을 가기 위해 그 도시로 여행을 하게 된다는 미슐렝 3 Star레스토랑과 같은 성지이다. 와이프가 “BJ Penn이 유명한 사람이야?” 묻는다. 흠, 이 격투기 전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UFC 두 체급 챔피언? 입문 4년 만에 주짓수 블랙벨트를 딴 격투기 천재? 뭐라고 설명하건 감이 없을 것이다. 그냥 한국인 4세 격투가 정도로 설명해줬다.


나에게 BJ Penn은 타이슨, 효도르 급의 큰 형님이고 – 물론 효도르는 나랑 동갑, BJ Penn은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격투기 레전드들은 무조건 나에겐 형님들이시다 – 예전에 하와이 출신 BJ Penn이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훈련하는 영상을 본 이후로, 하와이를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구글 검색창에 입력한 것이 ‘BJ Penn Gym address, Hawaii’였다. 그 체육관 앞에 마침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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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Penn 체육관]



LaniakeaBeach에서 거북이도 못 보는데, BJ Penn Gym에 간다고 BJ Penn을 볼 수 있으리라고 순진하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역시 없었다. 셀카를 크게 즐기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선글라스를 썼다 벗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앞으로 썼다 뒤로 썼다, 표정도 웃었다 인상 썼다, 얼굴만 찍었다가 몸까지 다 찍었다, 차렷 자세로 찍었다 복싱포즈를 취했다, 엄청나게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BJ Penn 형님을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격덕후가 너무 긴장했는지 죄다 이도 저도 아닌 사진들 뿐이다.


체육관 안으로도 들어가 봤다. 입구에서부터 UFC 글러브, 도복, 운동복, 붕대, 가방, 기타 장비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고 부피를 크게 차지하는 것들이라 살 생각은 없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테고리에서도 구매 결정장애가 온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린 짐도 많고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으니… 너무 구차한가?


체육관 안은 생각보다 복싱, 레슬링, 주짓수 등을 수련하기 위한 매트와 샌드백 공간보다는 러닝머신, 사이클, 벤치프레스 등 헬스기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쪽에 UFC 옥타곤 링이 보이긴 했지만, 이 곳은 일반인들을 위한 FitnessCenter고 선수부들이 훈련하기에는 적합한 곳은 아니라, 다소 김이 새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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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Penn 체육관 내부]



체육관을 나와서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뿔싸 여긴 Waikele Premium Outlet 내의 한 공간이었다. 야심 찬 나의 UFC 체육관 방문은 5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저 앞에 와이프의 두 시간짜리 놀이터가 있는 것이었다.


사실 우린 하와이 와서 ROSS에서 떨이상품 거저 줍다시피 몇 개 산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쇼핑을 한 적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일단 쇼핑의 명분도 아주 훌륭했다. 며칠 전 명품 선글라스가 들어 있는 가방을 잃어버렸고, 여기는 선글라스가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다.


깊은 잠에 빠진 지우는 차에 놔두고, 와이프가 지아만 데리고 선글라스를 사러 Waikele Outlet 개미지옥 속으로 들어갔고, 거의 한 시간 후 800불짜리 명품 선글라스를 이것저것 할인받아서 100달러 정도에 샀다고 만족하면서 나온다. 우리 두 번째 숙소에서 이 곳은 10분 거리, 남은 4일 동안 이 개미지옥에 오다가다 몇 번은 더 들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예정에 없던 BJ Penn UFC Gym과 Waikele의 방문으로 5시에 Marriott’s Ko Olina Beach Club에 도착하였다. 가장 Entry급 방으로 예약을 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니 방이 너무 작았다. 수영장 따린 집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이 단칸방에서 4박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바닥의 카펫도 꿉꿉하다. 나 나름 MarriottHotel 이달의 사원 출신인데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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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기 전 방, 사진에 나온 공간이 전부다]



애들은 그래도 호텔이 좋다고 침대에서 방방 뛰고 난리 났지만, 와이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서로 눈빛 몇 번 교환 후 전화기를 들었다. 방을 Upgrade 해서 옮길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하루 80달러 추가 요금만 내면 더 큰 Villa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머릿속에 80 곱하기 4와 같은 산수는 더 이상 없었다. 여행지에서 80 곱하기 4는 제로지 뭐. 여기까지 여행 왔는데, 고시원 같은 방에서 4박은 아니지 않은가. 그 villa에 대한 추가 문의 없이 우리의 대답은 “Yes, please.”


서둘러 애들이 침대 위에서 방방 뛰고 놀았던 방을 아무도 들어온 적 없었던 방처럼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front desk에 가서 다시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Upgrade 된 villa방 문을 여는 순간, wow! 이전 방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집기들과 인테리어가 훨씬 깔끔했고, 꿉꿉했었던 카펫도 여긴 뽀송뽀송하다. 크기는 족히 2.5배는 되었고, 아일랜드 식탁이 딸린 주방, 그리고 방에 비치되어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는 눈높이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렇게 우린 신나게 한 시간 동안 짐을 풀고, IT기기들 와이파이를 다 잡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밤에 나가서 주변 산책을 했다. 수영장과 바닷가가 연결되어 있어서 애들 데리고 놀기는 딱 좋을 듯했다. 오히려 하와이까지 와서 렌트한 차를 주차장에 썩혀놓고 애들이 호텔 내에서만 하루 종일 논다고 할까 봐 신경이 쓰일 정도로 리조트는 훌륭하였다.


다시 돌아와서 호텔방에서 놀기 시작하는데, 거실의 소파를 침대로 변신시킬 때가 클라이맥스였다. 터닝 메카드 변신 로봇만 봐도 환장할 나이의 아이들인데, 소파가 침대로 변신한다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4인 가족 모두 생각보다 빡셌던 변신 과정에 참여하였고, 애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버린 데이빗 카퍼필드 형님의 마술을 보는 듯 무지하게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잠들기 10분 전, 애들과의 놀이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지우가 지아 뺨을 때린 일이 기억난다. 물론 장난치면서 살짝 때린 것이었고 그래서 지아도 울지는 않았지만, 지아가 언니의 짜증을 돋우던 과정부터 봐왔기에 뺨의 세기 여부와 상관없이 분명히 화가 나서 순간 그분을 못 이기고 동생 얼굴에 손을 댄 것이어서, 나에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난 이런 순간 어떻게 훈육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남자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알겠는데, 여자 아이들은 어느 강도로 혼을 내야 하는 건지, 이 과정에서 엄마와 아빠의 롤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 건지 등등 어렵다. 다만, 이 시기를 지나면 언제 또 저렇게 어린애처럼 Hyper 상태로 기분 좋게 정신줄 놓고 뛰어다니다가, 또 순식간에 화를 못 이겨 폭발하다가, 하면서 놀겠는가.


요즘은 오히려 너무 금방 어른스러워지지는 않을까 아쉽기도 하여, 난 대부분 짧게 한 마디하고 그대로 놔둔다. 그래도 지금까지 두 딸이 엄마 아빠의 기대보다 훨씬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방식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거나 혹은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가르침이 아주 훌륭했거나 인데, 후자 쪽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여기까지. 이제 Full Day로 3일 남았다. 후. 이제 자는 시간마저 아깝지만 그래도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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