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네오는 왜 조제를 떠났을까. 그는 스스로가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건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영화는 그가 결심을 내린 시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바로 고향집 방문을 취소하기 위해 동생에게 전화 걸었을 때다. 츠네오는 이번 여행에서 조제를 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얘기할 작정이었다. 어째서 마음이 변한걸까. 결정에 앞서 츠네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던 적이 두 번 있었다. 첫번째는 조제가 가고 싶었던 수족관이 휴관이란 걸 알고 그에게 짜증을 냈을 때다. 분명 그의 잘못도 아니지만, 조제는 그녀를 업고있는 그의 머리를 때린다. 이후 츠네오는 차 안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조제에게 운전 중이라고 톡 쏘아붙인다. 두번째는 휴게소에서 조제를 화장실로 업고 데려가는 도중에 그가 휠체어를 언급했을 때다. 조제는 그런 것 따위는 필요없다고 일축한다. 그러자 츠네오는 자기 입장도 좀 봐달라며 볼멘 소리를 한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이 세 장면의 연속에는 어떠한 착오도 없다. 이들은 명백한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애란 늘 사소한 것에서 틀어진다. 그러나 그건 빙산의 일각처럼 더 거대한 존재론적인 문제를 암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인들은 모두 그 점을 은연 중에 알고 있으며 그 예감을 담보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시점은 두 사람에게 각자 다른 보폭으로 찾아온다.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더 빠르게 이별을 다짐한다고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어쩌면 모든 연인들이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바로 그 시차에 대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츠네오와 조제가 일반적인 커플과는 거리가 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고, 아마도 그로 인해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츠네오가 조제에게 호감을 느낀건 그저 그녀가 맛있는 계란말이를 만들 줄 알고, 대학생인 자신보다도 아는게 많은데다, 슬쩍 내비치는 웃음이 귀엽기 때문이다. 그는 크게 어렵지도 않은 제스처로 조제에게 다가서고, 그녀도 그런 츠네오에게 마음을 연다. 영화는 같이 요리를 하며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이 둘의 모습을 뒤에서 담담하게 보여준다. 츠네오는 같은 눈높이로 조제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 그 순간 그에게는 이 사실만이 중요했을 것이므로, 조제가 장애로 인해 사다리를 타고 있는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제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이를 잊을만 하면 그녀의 유사 가족들인 할머니와 고아원 친구가 상기시켜준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츠네오에게도 스스로의 문제를 토로한 적이 많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산책은 반드시 가야한다는 것이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이웃 변태에게 가슴을 만지게 허락했다는 것은 모두 그녀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츠네오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웃어넘긴다. 때문에 두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 - 즉 조제의 장애와 그에 대한 서로의 상반된 인식 차이 - 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 자명했다. 조제는 이를 아마도 처음부터 알았을테지만, 츠네오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 순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에 두 사람의 여행은 동상이몽이었다. 츠네오는 장애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선언할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그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앞에 두고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으로 길을 나섰다. 반대로 조제에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목적은 츠네오와 달리, 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수족관에 가서 물고기들을 보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단 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려보면, 조제에게는 물고기들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일종의 확인사살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러나 휴관 안내판을 접했을 때 그녀는 이를 운명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크게 속상해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녀는 츠네오의 감정도 건드리게 되고 위에 서술한 연쇄작용을 낳게 된다.
연인의 문제는 수만가지가 될 수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조제의 장애가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아마 츠네오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는 헤어짐의 원인을 장애로 콕 집어 말하기를 망설일 것이다. 그 대신 그가 지적할 수 있는 건, 예컨대 휠체어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차이다. 영화는 조제를 선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녀가 가진 독특한 퍼스널리티는 일정 부분 그녀의 장애로부터 온다. 현실 앞에서 그녀는 여러 좌절을 겪었을 것이고 그 이력이 그녀의 인격을 형성했을 것이다. 츠네오의 착각과는 달리, 조제는 그보다 낮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상처에 대한 방어 기제도 더 강하다. 그가 조제에 대해 실망한 부분이 있다면, 전자가 아닌 후자다. 조제를 업은 츠네오는 시종일관 웃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분명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조제는 이를 무시하고 휠체어는 필요없다고 쉽게 말한다. 휠체어를 타지 않겠다는 그녀의 고집은 얄팍한 자존심일 수도 있고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일 수도 있으며, 그도 아니면 그저 츠네오에게 의지하고자 싶은 솔직한 심정 표현일 수도 있다. 아예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일지도 모른다. 조제라는 한 개인이 살아온 인생의 총체를 우리는 알 수 없으므로, 이 발언의 의미도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녀의 견해를 듣고 난 바로 다음 장면에서 츠네오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상 결혼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츠네오는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에 능하다. 일례로 그가 조제의 할머니에게 복지 혜택을 신청하라고 설득하는 장면을 들어보자. 이상하게도 그는 할머니보다도 걸음 보폭이 늦어 계속 프레임 밖으로 밀려 나간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스쿠터를 탄 상태로 어기적 어기적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굳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할머니의 눈높이에 맞춰 스스로를 낮춘다. 즉, 츠네오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몸에 밴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쉽게 범하게 되는 연민의 오류라던가, 도덕적 위선 같은 함정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완성형에 가까운 그의 인격보다는 이미 세상을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제의 인격에서 잘못을 찾는 것이 쉽다. 그렇다면 조제는 그에게서 무엇을 원했을까. 그녀가 원한건 모순이다. 츠네오가 그녀를 같은 눈높이로 바라봐주기를 바랬으며, 동시에 그녀의 문제도 내심 끌어안아주기를 바랬다. 그러니 하나만 성립하는 상황은 그녀에게 만족스럽지 않아 짜증을 내는 것이다. 조제는 다리만 불편할 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 욕심도 많다. 할머니의 말마따나, 그녀는 자기 주제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걸 가지고 그녀를 비난한다면 이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할 진데, 평생을 본인의 불완전함과 싸워왔던 조제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우리는 은연 중에 그녀의 신체적 결함을 인격적 성숙으로 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남들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사는 그녀가 츠네오에 준하는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을 해야하는데, 이를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게 사람들의 기본 태도다. 그건 츠네오도 마찬가지이며, 본인의 기준에 조제가 통과하지 못하자 가차없이 마음을 접는다. 그것이 그가 조제와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인 셈이다. 그는 그녀에게 핸디캡을 주지 않는다. 이건 사랑에 빠질 때도, 이를 단념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건 조제가 바라던 바다. 만약 츠네오가 이 부분에 있어서 타협을 했다면, 그래서 눈높이를 스스로보다 낮췄다면, 그녀의 자존심은 타격받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관계가 가진 문제들을 어떻게든 수용하기로 해도, 그건 또 다른 문제들을 양산할 뿐이다.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그것에서 벗어나 바다로 방향을 튼다. 여기서도 두 인물들은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야 하고, 모래사장 위의 조개도 마음껏 집어올리지 못한다. 반대로 츠네오는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위태로워 보이며, 걸음은 무겁다. 그렇지만 이들의 표정은 여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밝다. 조제와 츠네오는 소위 정상적인 커플들처럼 마음껏 이 바닷가를 두 다리로 뛰어놀며 물장구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부족함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 순간 이들은 서로를 만난 후 처음으로 같은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조제가 츠네오의 결혼 상대가 될 일은 없으며, 언젠가 이 둘은 헤어져서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결론에 먼저 도착한 조제는 지금껏 외로웠지만, 이제는 두 사람 모두 함께다. 그렇게 둘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은 한없이 애처롭고 사랑스럽다.
둘은 담백하게 헤어진다. 후반부 명장면으로 꼽히는 츠네오의 오열은 그의 역할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가 강하게 어필하여 간신히 들어간 애드리브다. 즉 실제 대본에는 츠네오가 조제의 집을 나서는 것이 끝이었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역으로 감독 이누도 잇신이 추구한 본래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미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었던 것이다. 서로 원망할 것도 없으며, 혹시라도 서운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바로 용서 가능하다. 이들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은 상태로 사랑했으므로, 각자 상처줄 일도 최소화한다. 그리고 나선 현실을 바라본다. 그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응시다. 그 점에서 조제와 츠네오는 눈높이가 일치하므로, 그들은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이 둘의 사랑은 특수하지 않고 지극히 일반적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들의 한없이 쿨한 연애를 통해 보편적인 존엄을 찾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