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완결, 에필로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2020년 7월 23일, 25살에 썼던 첫 번째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이런 말투로 글을 올리는 건 프롤로그 이후로 꼬박 1년 만이라 기분이 이상하네요. 사실 거창하게 새로 한 번 써보려고 원래 에필로그였던 원고를 29화로 밀어내기까지 했는데요. 워낙 덩치도, 포부도 거창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럴 그릇까지는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다 가끔 스스로가 거창해 보이는 날이 오면 후다닥 써버리고 우쭐대려고 했지만, 결국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날에 에필로그를 써봅니다.
여행기를 처음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한참 성장호르몬 나온다고 12시 전에는 자야 한다는 잔소리를 들어야 할 그때, 저는 삼촌이 준 건전지 MP3로 엄마 몰래 심야라디오를 듣곤 했거든요. 소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100원의 정보이용료’가 청구된다던 문자도 몇 번 보냈었고, 매크로 답장이 오면 그게 또 그렇게 좋다고 보관함에 넣어두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행작가 분의 남미 여행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남미라서 그랬던 걸까요? 사회 시간에 ‘대척점이 남미 어디에 있다’ 정도로만 들어봤었거든요. 지구를 뚫고 들어가서 햇빛을 다시 봐야 할 정도로 멀다는 표현이 아직도 의심스러울 정도이니, 그땐 오죽했을까요. 아직까지 코너명과 요일까지 기억날 정도로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평생 나랑은 관련 없을 거라며 덮어둔 세상이 제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볼리비아의 황금사원과 소금사막, 아르헨티나의 빙하와 페루 마추픽추의 라마와 브라질 아마존의 피라냐... 도 멋있었지만, 사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건 작가님이었습니다. 책까지 시리즈로 사서 몇 번씩 읽어 놓곤 기억에 남는 게 작가님이라니. 당시의 저는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글이 있기 전에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분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교과서에서 작가 분들의 출신지 정도는 들은 것도 같았지만, 사람을 배우는 것과 알아가는 건 분명 다른 느낌이니까요.
그래서 훗날 글을 쓰게 된다면, 그리고 여행기라면 더더욱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솔직하게 드러내리라 다짐했습니다. 심지어 ‘기왕이면 안 멋진 글’이 되길 바랐습니다. 사실 저는 걱정도 많고 뒤끝도 엄청나거든요. 그러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게 미덕이라고 배워왔다지만, 제가 쓴 글에서만큼은 옹졸하고, 찌질한 나를 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프롤로그를 쓰며 ‘10점만큼의 찌질함이 여행을 통해 8점 정도로 줄었다’는 결론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막상 마무리하려니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 참 잘 안 바뀌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저일 뿐인걸요. 그런데 이렇게 마무리해 버리면 저도 너무 허무할 같아서, ‘나름 괜찮았던’이라는 부제를 달아봤습니다. 달고 보니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름은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은 꽤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요즘처럼 ‘평범함’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시기엔 더더욱 부러운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런 텁텁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
이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있다면 인사할까 말까, 고맙다고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하지 못했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나름 노력해서 다가갔었지만, 그래도 부족했거나 아쉬웠던 순간들이 떠오를 땐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게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야 할 이유이자, 러시아를 더 알아가야 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엔 처음이었으니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죠?
제 인생의 첫 여행기를 조심스레 마무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3박 34일, 11개의 도시, 10,000Km 가까이를 이동하며 손에 쥔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권만 9장. 8개의 강과 바이칼 호수까지! 숫자만 늘어놓으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세상에 이런 쫄보가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다녔던 한 달! 결국 소매치기 한 번 안 당하고 안전하게 돌아왔으며, 여행기도 끝끝내 마무리해 냈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분 한 분께서 해주셨던 말씀 모두 잊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9월 13일, 29살에 다시 써 보는 두 번째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또 제가 인사드립니다. 이제는 '안녕하세요!'보다는 '안녕하십니까'라거나, '안녕하신지요'를 더 많이 쓰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느낌표를 붙여 인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고작 몇 년 사이지만 저도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 번째 에필로그입니다. 사실 이쯤 되니 너무 구구절절 우려먹은 것 같아서 혼자서는 꽤나 찔려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20살에 갖게 된 고민을, 21~22살에 여행으로 풀어내서, 23살에 다녀와서는, 24~25살에 여행기로 옮기고, 28~29살엔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다니. 저의 20대를 함께 한 이 글을 20대가 아닌 나이를 앞두고서야 끝끝내 놓아주는 기분입니다.
에필로그의 재미는 역시 근황이겠죠? 자퇴라는 거창한 단어를 남발했던 휴학치고는 얌전히 복학했습니다. 오히려 휴학 한 번 없이 한 달의 어학연수, 한 학기의 교환학생까지 다녀왔으니 나름대로 반전이라면 반전이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많은 문과 학생들이 고민하는- 복수전공을 택하지는 않았던 탓에, -역시나 많은 문과 학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학사 하나만 딱 가진 채로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다행히 부전공이었던 컨벤션·국제회의 분야로 진로 경험을 쌓았던 덕에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제는 본전공인 러시아와 큰 인연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입사 3개월 만에 한-러 양국 간 외교행사*를 담당하게 되었으니 사람 일이 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식당에서 러시아어를 쓰는 종업원을 뵈었으니, 이따금씩 잊고 있었던 세계를 떠올릴 순간이 찾아오긴 한다고 생각으로 살아가는 게 솔직하다면 솔직한 근황인 것 같습니다.
* 지금도 유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실무에서 러시아어를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유일할 것 같은 일을 능력은 없지만 치기 어린 열정은 있던 시기에 맡을 수 있었다는 점에 아직도 감사합니다.
<내 인생을 바꾼 여행>, <여행기 하나로 달라진 나>를 멋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되지 못했습니다. 한 달의 여행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이자 비약이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한결같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긴 여행기를 연재해 봤어도 '땡길 때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여전해서 적당한 날씨와 장소를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몇 날을 허비하는 습관은 아직도 버리지 못했고, 어엿한 4년 차 직장인이 된 지금도 업무 속도는 나름 빨라진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는 매일 같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을 다녀오던 휴학생 시절도, 여행기를 쓰던 학생 때도, 직장인이 된 지금도 얼레벌레 느슨한 듯 치열하게 나름의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인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꺼내어 보며, 타협과 안정의 모호한 경계를 걸어 보는 서른 즈음입니다.
잠이 유독 오지 않는 새벽엔 덜컹거리는 횡단열차를 떠올리곤 합니다. 어디로 가는 지도 잘 모르겠고, 잘 가고 있는지는 더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몇 시간을 이어지는 푸른 평원과 하늘, 그 풍경을 더 선명하게 하던 햇살이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 여행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런 시절이 나의 젊은 날에 있었다는 든든함에 어깨 한 번은 펴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으스댈 만큼 굉장하진 않더라도, 고개 한 번 들고, 어깨 한 번 펼 수 있는 작고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한 삶이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빠른 종식을 기원하며, 양국의 모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모두의 소중한 삶과 기억이 다치지 않고 소중히 간직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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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박 34일,
11개의 도시와 바이칼호수까지!
10,000Km를 넘게 달렸던
2018년 스물셋 여름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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