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내게 해 주는 다정한 말
일요일 오후, 달리기 동호회에서 이끄는 근력 운동을 하고 나와 무얼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다 이야기 해 주겠다는 자세로 쉬지 않고 말을 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오늘 재밌었어?"
"네가 행복해 해서 나도 행복해."
가끔 익숙해져서 고마운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내 남편의 섬세한 다정함, 그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행복한 감정은 몇 배가 되었다.
내가 최근에 가입한 클럽은 브룩클린 트랙 클럽(Brooklyn Track Club - BKTC)으로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랑 그린포인트 중간에 위치한 맥카렌 공원(McCarren Park)에서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 이렇게 세 번 달리기 트레이닝과 일요일에는 근력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친구 몇 명이서 시작했다는 이 모임은 이제 약 900명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동호회로 발전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 이메일로 그 주에 무슨 트레이닝을 할 지 계획을 보내주는데, 보통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총 4마일 정도 되는 거리를 1000m 혹은 1마일로 나눠 뛰는 스피드 트레이닝을 하고, 토요일에는 8마일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를 한다. 주중 트레이닝은 오전 7시와 오후 7시로 두 번 나뉘어서 진행되는데 매 트레이닝 때마다 코치들이 나와서 간단하게 어떤 운동을 하는지, 왜 하는지 등 이메일로도 보내준 내용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고 각 페이스마다 그룹을 나눠 각 그룹을 이끌어 주는 등 굉장히 잘 운영되는 클럽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했으면 편안한 속도로 뛰는데 만족했을 것을, 잘 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하는 마음을 먹기도 하고, 같이 뛰는 그룹에서 혼자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오늘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싶다는 마음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달리기가 혼자 하는 운동인데, 또 같이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마라톤 같이 호흡이 긴 운동 트레이닝 방법 중에 대화가 가능한 속도로의 달리기가 있다. Zone 2 달리기라고 해서 본인 최고 심작박동수의 6~70%인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걸 말한다. 보통 최고 심장박동수는 "220 - 본인 나이"로 계산할 수 있다. 이때는 보통 나랑 비슷한 속도로 뛸 수 있거나 맞춰줄 수 있는 사람과 정말로 달리면서 대화를 한다. 혼자 뛰면 목표로 한 거리를 언제뛰나 계속 체크하느라 더 힘든데, 누구랑 같이 뛰면 운동이라기보다는 그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어 덜 힘들다. 운동도 하고, 소셜도 한달까.
예전에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오전 5시에 집 근처 공원에 나간 적이 있다. 센트럴 파크의 86가와 96가 사이에 위치한 Reservoir의 한 바퀴는 1.58마일 (2.54키로)이다. 지금은 가볍게 뛸 수 있는 거리이지만, 그때는 한 바퀴도 다 못 뛰고 돌아왔었다. 그때 보면 그 시간에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다들 일 시작 전에 친구, 가족들과의 시간을 달리기를 하면서 보내는 거 같았다. 얼마나 건강한가.
한때 인생이 너무 막막해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몰랐을 때가 있다. 뭔가 하나를 목표를 잡았으면 당연히 다른 것들은 다 희생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었다. 미국에 혼자 와서는 영어도 한 마디 못 하고, 일은 전공과는 상관없이 마트 캐셔부터 시작해서는 3년을 넘는 시간을 휴가 한 번 없이 주6일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그때 내 제일 목표는 영어를 못 하면 계속 이 상태로 살게될텐데, 그건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 어서 영어를 배우자. 근데 ESL 말고, 학교를 다니자. 그래서 일을 마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근처 4년제 대학교로 가서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에 한 과목씩. 한국에서 수포자였던 내가 수학 과목을 들었다. 그거는 그나마 영어가 적게 쓰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그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게, 지문을 이해 못하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때는 그래서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문제를 풀 때 제공되는 동영상 설명을 영어로 일단 다 받아 적고, 단어 뜻을 하나씩 찾아가며 공부를 했더랬다. 휴가도 없고, 병가도 없는데 일 하고 공부하려니 독립기념일 같은 경우에 다들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데 나는 홀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그럴때면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늘 나가자고 했었다. 번번이 거절을 하다 어느 날 어디선가 이 문구를 읽고는 내가 지금 잘못 살고 있나 돌아본 적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찰나와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또 엄청 길다. 앞만 보고 달릴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인생 전체도 누군가와 대화가 가능한 속도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