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해서 오늘 달리기는 쉽니다.

생리, 월경, 달거리

by 윤보영

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곤욕이다. 전 날 잠자리에 늦게 들었던가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고. 아니면 자기 전에 먹은 멜라토닌 때문인가. 멜라토닌 먹고 일고여덟 시간 안 자면 피곤하다고 했는데, 몇 시간을 잤던가 계산해 보다가 더 적게 잔 날에도 이만큼은 피곤하지 않았었기에 셈을 그만둔다. 집이었으면 당장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을 텐데, 사무실이니 피곤함을 떨쳐내기 위해 갖은 수를 써 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떠 보기도 하고, 낮 12시 이후에는 잠자는데 방해된다고 안 마시는 커피도 괜히 한 잔 더 마셔 보다가도 안 돼서 창문을 활짝 열어 찬 바람을 쐬어 본다. 그래도 안 된다. 지금이 오전 11시이니 조금만 더 버티다가 이따 1시 즈음에 밖에 나가서 햇볕도 쬐고 눈도 좀 붙여야겠다.


회사에서 주 2회 사무실 출근을 주 3회로 늘리고, 자율 출퇴근도 되도록이면 9시 시작해서 6시에 가는 스케줄로 해서 회사 사람들하고 더 많이 대화하고 가라고 지시가 내려온 지라 30분 정도만 보내려던 점심시간을 일부러 1시간 꽉 채운다. 출근 전에 집에서 사과 하나, 삶은 계란 하나 먹고 사무실에서 브런치 시켜준 거 조금 먹어서 배는 안 고프고 아이패드나 봐 볼까 하고 무역 센터, 더 오큘러스 안에 위치한 애플 매장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이것저것 재고 따져야 하는데 이마저도 머리 쓰기가 싫은지 스펙을 읽고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서. 오큘러스는 꼭 거대한 공룡 몸통뼈 같은데 그 뼈 마디마디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등을 대고 내 두 다리를 쭉 뻗으면 딱 안성맞춤인 사이즈. 따뜻한 햇볕 아래 눈을 좀 붙여 본다.


책상으로 돌아가기 전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생리가 시작된 걸 발견하였다. 모든 퍼즐이 비로소 맞춰진다. 목에서부터 어깨, 등까지 요 며칠 새 뻐근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돼 한밤 중에 깨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잠에 들어서야 했어서 어디가 아픈가 했던 것까지. 평소와 달랐던 몸의 반응들이 모두 이해가 간다. 참, 이상하지. 매달 돌아오는 현상인데,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는 나도 모르는 내 일. 대충 어림 잡아서 이 즈음에 일어나겠거니 하면서도 스트레스니, 체중 변화 등으로 인해 가끔은 건너뛰기도 하고, 한 달 내내 하혈을 하는 등 해서 종 잡을 수 없다 하면서도 내 몸에 대해서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이기도 한 생리.


누구는 생리 때문에 호르몬 이상 등으로 인해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사직서를 냈다든지, 필요하지도 않고 값도 안 나가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훔친다든지 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다양한 변화를 겪기는 한다. 감정적으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생리 전, 생리할 때, 생리 후 다 겪으니 따지고 보면 1년 365일 정상적인 날이 없다. 그래서 생리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도 옹색하고, 그냥 이게 나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 탓을 한다. 바로 전 날, 하는 날, 그리고 그 다음날 이 3일 정도. 몸이 퉁퉁 붓고, 진통제를 먹고,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그저 무사히 이 하루가 또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3일.


화요일, 트랙 트레이닝을 이렇게, 그래서 건너뛴다. 출근 가방에 운동복이며 러닝화까지 가져왔지만 집으로 가서 쉬기로 나 자신과 타협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많이 느려도, 그래도 가서 트레이닝을 한다 vs 이렇게 한 번씩은 쉬어가도 된다. 매번 후자가 이기는 하나마나한 타협. 참 신기한 게 생리 이 맘 때쯤에는 몸이 느려진다.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마냥 평소에 꾸준히 달렸든 한창 쉬다가 달렸든, 몸무게가 늘어났든지에 상관없이 늘 느려진다.


어렸을 때 수영을 할 때는 몇 년간 꾸준히 하던 걸 생리를 시작하면서 겪는 신체 변화 등에 의해 그만뒀고, 요가를 할 때는 거꾸로 서기 등은 하지 말라는 제재를 받았고, 근력 운동을 할 때는 뼈가 물러져 있는 상태니 무게를 욕심내서 치지 말라는 이야기 등 생리는 내 몸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일반인인 나도 이렇게 생리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데 운동선수들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거는 내 정신력의 문제인 건지, 그녀들은 생리 때에도 아무 제한 없이 원래 계획했던 트레이닝을 무사히 마치는지 등 궁금한 게 아주 많다. 누구는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해변가로 휴가를 떠나든가 할 때를 대비해 피임약을 먹어 생리를 조절한다던데. 그러면 그로 인한 부작용은 또 고스란히 2배로 미루어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폐경기 때까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리는 더군다나 남한테 이야기하는 것도 부끄럽다는 인식 때문에 더 돌보는 게 어렵다.


나 아파요, 생리해서 그래요,라고 구태여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다 보니 제대로 된 생리통 약, 피임약, 하다못해 생리대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안 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생리는 여성의 생활과 뗄레야 뗄 수가 없는데 이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는 알음알음 개인이 알아서 찾고 배워야 한다는 게 아쉽다.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생리, 이 단어만으로도 벌써 대화가 불편해진다. 그래서 더 일부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목요일 트레이닝 때는, 지난주 목요일에 처음 만났던 이가 화요일 트레이닝에 갔느냐는 물음에 생리해서 안 갔다고, 혹시 개인적인 질문일 수 있는데, 너는 생리할 때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금요일 PT 때는 선생님이 한 주 운동 어땠냐고 물어보아 생리 첫날은 건너뛰고 목요일 달리기 트레이닝은 나가긴 했지만 생리 때에는 늘 몸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참고로 PT는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1회권을 끊어 놓았던 걸 사용, 계속해 볼까 하다가 비용이 부담되어서 이어 가지는 않기로 했다.) 모두 여자들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둘 다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Lydia Ko praised for normalising periods in sport after revealing back treatment was because she was menstruating. https://twitter.com/LPGA/status/1521163606204764160?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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