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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글

혀에 닿은 맛은 달고 짭조름했다.

by 김보영

키가 껑충한 남자 둘이 와서 송이의 목줄을 풀었다. 그동안 막둥이가 채운 목줄 가운데 가장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이번에는 송이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낯선 사람들 손에 풀려난 셈이다. 송이는 버티지 않았다. 남자들 발목을 물어뜯지 않고 짖지도 않았다. 매끈한 다리로 그들보다 앞서서 걸었다. 그들이 열어준 문 안으로, 은색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막둥이는 내 눈으로 자동차가 다리를 건널 때까지 지켜봤다. 찰칵하고 송이를 담은 사진이 뱃속에 담길 때마다 따끔거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막둥이가 나타났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코코가 사납게 짖어댔다.


“코코, 괜찮아. 나야 나.”


막둥이가 달려가 얼굴을 비췄다. 코코는 막둥이가 목줄을 풀어줘도 가만히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걱정 마. 코코는 어디 안 보내.”


막둥이는 먼저 비닐하우스 밖으로 뚜벅뚜벅 나왔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코코도 밖으로 나와 굴러다니는 낙엽을 봤다. 물기가 날아가다 못해 돌돌 말린 낙엽이었다. 그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닳고 익숙한 것들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 때문에 어제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이 앞을 보느라 며칠 전에 봤던 걸 꺼내 보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눈에 파묻혀도, 땅에 묻어도 다 지나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남긴 장면들은 언제나 깨끗하고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믿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엊그제 새벽에 내가 처음 눈을 뜬 날을 잊어버렸다. 그 뒤에는 엄마 아빠가 의자에 앉아 숨터를 바라보던 장면을 잊어버렸다. 하루에 하나씩 장면이 사라진다. 나는 그저 그 뒤에 담은 장면과 글로 지워진 날들을 가늠하고, 때때로 내가 가졌던 물음과 답을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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