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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an 28. 2024

한문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선다는 건

교정교열가는 무엇을 고칠까?

초등학교 겨울방학에 오빠를 따라 한문교실에 다녔다. 책상도 없는 뜨거운 온돌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똑같은 한자를 계속 쓰고 말하려니 세상이 다 미웠다. 슬쩍 옆을 보면 오빠는 아예 볼을 바닥에 대고 잤다. 며칠 되지도 않아 우리는 어머니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방학 내내 늦잠을 잤다.


오빠가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내가 컸을 때는 어머니께서 소개한 삼촌을 따라 먼 이웃마을까지 갔다. 알고 봤더니 그 삼촌은 꽤 유명한 훈장이었다. 어머니를 똘똘한 여동생처럼 아낀 분이라, 그 딸은 더 잘났겠거니 대놓고 말하는 분이었다. 그 해 겨울방학에는 눈도 많이 내렸는데, 그 삼촌 차는 고장도 안 나고 아침마다 집 앞으로 왔다. 어찌나 울고 싶던지.  


한문공부는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시골학교라서 그랬을까? 선생님은 국어 수업을 하다가도 서랍에서 단소를 꺼내 불게 했다. 난데없이 한문 시험을 볼 때도 많았다. 어찌나 달달달 외우고 썼던지 중학교에 올라가서 배우는 한자는 다 알았다.


집에 돌아오면 우편함에 모임을 알리는 글이나 이런저런 관공서에서 보낸 안내문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문서가 많았다. 부모님은 기다렸다는 듯 나한테 읽어보라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인지 설명을 하면, 둘은 무더운 날 맥주 한잔 틀이켠 표정을 지었다.


중학생일 때는 문학 선생님이 ‘모르는 단어장’을 만들게 했다. 그게 버릇이 되어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빈자리에 한글과 한문으로 적고 뜻을 찾아 써놓게 됐다. 그러지 않으면 영 찜찜했다. 누가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할까 봐 맘 편치 않던 나는 다 커서도 그런 불안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3년 전쯤,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전 5권)를 읽고 마음가짐을 바꿨다. 예전에는 내가 쓰고 외우는 것들을 남의 나라 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문을 많이 알아야 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배웠을 뿐이다. 우리말도 아닌 걸 알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았다. 모르면 어른들을 실망시킬까 봐.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지금도 책의 빈자리에는 모르는 낱말들을 써놓는다. 그러나 이제는 이 낱말이 중국글자인지 한글인지 알기 위해 쓰는 것이다. 한자도 같이 써두긴 하지만 너무 복잡하면 점 하나 찍고 만다. 우리말 하나 더 알기도 아까운 시간이니 말이다.


낱말은 홀로 서도 그 뜻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글자말은 낱말 앞뒤 글을 헤아려 봐도 그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타계’는 ‘다른 세상’, ‘돌아가심’이라 하면 그만 아닌가?‘ ‘무고’, ‘문중’, ‘가호’, ‘천공’ 은 또 어떻고. 소리 내기는 같아도 뜻이 여러 개다. ‘의의’, ‘후회’, ‘간의’, ‘이견’, ‘희한’처럼 입으로 말했을 때 알아듣기 힘든 말도 많다. 권위를 세우거나 유식함을 뽐내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중국글자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몇 해 전을 돌아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말을 다시 익히면서 교정교열 일을 더 잘할게 됐다. 글을 맡기고 영 맘을 놓지 못하던 분들이 이제는 나만 믿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 까닭은 글자들이 바뀌었어도 오히려 자기가 나타내고자 한 뜻이 잘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헤아릴 필요가 없으니 술술 읽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붙잡아두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옮겨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제대로 마친 글은 얼마나 될까? 쓰다 보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까무룩 할 때도 많을 테다. 다시 좋은 생각은 한쪽에 쌓이고 쌓여 무덤을 이루겠지. 이렇게 때마다 글쓰기를 그만둔 까닭은, 그럴싸하게 쓰는 버릇이 든 탓이다. 그동안 우리가 읽었던 글들이 다 그 모양이니 말이다.  


얼마 전 “요즘 애들 어휘력이 바닥이야.” 하는 소리에 기분이 언짢았다. 무엇보다 영어 교육이 제일 중요한 이 나라와 사회도 문제겠지만, 유식한 말이며 글에 길들여진 어른들도 문제가 아닐까? 그런 어른들 치고 말 잘하는 사람도 못 봤는데 말이다.


돌아보면 내가 한 말과 글은 나의 얼과 넋이기도 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과 글로 나타내느냐에 따라 나도 못나거나 나은 사람이 되었다. 언제나 사람들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내가 진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러다 “한문에 기대지 않고 우리말을 쓸 거야.” 하고 마음먹으니까 편해졌다. 한문을 잘 아는 똑똑한 딸도 아니고, 어려운 글도 잘 읽고 유식한 소리나 하는 어른도 아닌 그냥 나로서 일어선 기분이었다. 홀로 서도 그 뜻을 알 수 있는 깨끗한 우리말처럼.


산다는 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시간이지 않을까. 지금은 누구나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또 그렇게 글을 고쳐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 길에서 나는 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까. 두려움보다는 창으로 비쳐든 햇살처럼 넉넉하다.     





덧붙이는 글

이오덕 선생님은 ‘한자’를 ‘중국글자’라고 썼습니다. ‘한 자, 두 자’ 할 때와 구별이 안 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한문글자’라고 쓰다가 아주 ‘중국글자’라 하는 것이 더 바른말이 되겠다 싶어 이렇게 바꿨죠. 그래서 ‘한문’은 ‘중국글’이 되고, ‘한자말’은 ‘중국글자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예를 들어 '한문교실'을 '중국글 교실'이라 쓰면 읽는 분들이 더 헷갈려할 것 같아 '한자', '한문', '한자말'을 그대로 살려 썼습니다.


한자(중국글자)

한문(중국글)

한자말(중국글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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