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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Jun 29. 2022

서른둘.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에 한 끗.

예전엔 그리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비 오는 날을 즐기는 법을 많이 깨우친 것 같다. 우리 생각보다 비 내리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 자주 찾아오지 않는 손님은 때때로 색다른 추억을 선물해준다는 것 그리 생각하며 비 오는 날이 특별하다. 흐린 날 보다 비가 한번 왕창 쏟아지는 날씨가 더 좋았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빗소리에 괜히 노래를 틀고 흥얼거리며 기분을 날씨와 맞춰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빗소리를 더하니 특별한 날이 되었다.


눅눅한 날씨, 마르지 않는 빨래, 어둑한 하늘까지 사실 좋은 점보다 좋지 않은 점이 더 많다지만, 결국 나는 또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날에 하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다. 요새는 장마철이라 집에서 외주 작업을 할 때면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괜스레 텅 빈 집안이 새로움으로 가득 차고 또 다른 분위기를 내며 평소 즐기지 못했던 센티함을 마음껏 즐긴다. 비 오는 날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워놓고 비가 내릴 때까지 이 기분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비가 오면 떠오르던 에피소드가 있다. 예전 비가 오던 날 우산이 없던 그 사람과 함께 버스정류장까지 우산을 쓰고 간 적이 있다. 혼자 쓰기도 조그마한 편의점 우산이었지만 조금 더 가까이서 걸을 수 있었다. 어깨가 젖을 정도가 아니라 내 한쪽 팔이 전부 젖을 만큼 가까이 붙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색함을 풀어내려 내리는 비를 욕하기도 하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공감하고 웃고 떠들며 걸어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내 젖은 한쪽 팔을 보고는 걱정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비가 많이 오긴 오나보다'하며 털털하게 웃어댔다.


그런 감정이 떠오른다. 풋풋하고 코끝에 스친 비 냄새에 가득 담긴 그날 생각에 또다시 그런 마음을 품고 누군가와 몽실몽실 떠오르는 내 마음을 빗속에 숨기고는 털털하게 웃어대고 싶다. 그래도 비가 오는 날마다 그런 감정을 잊지 않고 비가 와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좋은 마음만 남겨두고 싶다. 짜증 나고 습하고 괜스레 좋던 기분도 나빠질 그런 기분 나쁜 날씨가 아니라, 앞으로 언제까지 오고 언제 그칠지 모르는 불안감에 기대감이 섞인 그런 기분으로 평소에도 살아내고 싶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하루를 잘 마무리하며 산다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출근을 안 해서, 야외활동을 안 해서 그저 집에서 한가로이 일을 하며 생활해서 그런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이 감정도 다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를 추억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오늘을 즐기고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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