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무딘 날들
퇴사를 하고 언 2개월 이제 3개월차에 접어 들고 있다. 불안한 마음도 초조한 마음도 있지만 이리 평온한 날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며 내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생겼다. 날카롭고 고집불통에 일 하나에 일희일비 하던 나는 이제 깨끗히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끔 동네 맛집을 돌아다니며 아지트로 정해놓고는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걷기도 한다.
전에는 술을 먹으면 그렇게 속이 쓰리고 우울감에 연신 술만 들이켰지만 이젠 웃고 떠들며 내 시간을 음미한다. 헛된 시간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시간 어느 한곳 정붙일 곳 없었던 나의 일생중에 어쩌면 나에게 정을 붙이고 있는 중인 듯 하다.
나는 점점 무뎌지는 중이다. 누구보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던 내가, 이제 타인을 넘어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무엇도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골칫덩이들이 사라지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중이다.
요즘 SNS를 본다면 사업에 성공한 얘기, 실패에 벗어나 다시 일어선 얘기, 몇개월만에 대기업에 취업하고, 주식으로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한 얘기 등 성공 사례들로 가득하다. 나는 SNS를 즐겨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거나 그들을 보며 내 지난 날들을 아쉬워 한다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그 많지 않은 천금같은 기회를 붙잡아 성공을 했고 그 스토리엔 내가 전혀 없다.
타인에 대입하는 순간 불행만이 찾아올 뿐 그 사람들을 존중은 해도 존경하고 따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목표에 대해 고민하고 나아가고 멈춰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우리는 현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고 내게 호의를 베풀고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쓰는 마음만으로도 대인에 대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자기 연민에 빠져 남을 할퀴어내고 자신의 불행을 세상 가장 큰 불행이라 인정하며 스스로 위로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운좋게가 아닌 항상 본인에겐 운 나쁘게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타인들의 노력은 그저 운이 좋았다는 식의 존중 따위는 없는 생각 말이다.
우리에게 타인이 들이대는 잣대가 많다. 성별, 지역, 학벌, 종교 등 상대방이 내게 어울리지 않을 수많은 이유를 들이밀고 내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나은 인생을 산다는 이유로 하대할 이유와 상대를 만들어 본인을 돋보이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나는 내가 잘 먹었으면 좋겠고 내가 잘 잤으면 좋겠고 조금 더 건강해지면 좋겠고 나를 생각해주는 타인들의 행복이 많았으면 좋겠다. 마음 아픈일이 적었으면 좋겠고, 그 쓰린 밤이 짧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너는 그리고 나는 조금 쓸모없어도 좋겠다. 그 쓸모없는 나날들이 모여 우리가 가끔 웃기라도 한다면 내 인생에 이 나날들이 그리워 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