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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Apr 07. 2023

대왕벌레가 꿈에 나타나는 이유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처음 왔을 때가 기억난다. 

맑은 공기,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이방인의 언어, 한국보다 청명하지만 서늘한 계절 등,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고 새로운 환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특히나 내가 거주하던 곳은 어느 하나도 같지 않은 눈동자 색과 피부색을 지닌 자들의 집합소였다. 다양한 배경을 뒤로하고 각자의 꿈을 좇아 오늘을 사는 자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내 사고방식과 행동 그리고 혀 끝에서 한국은 빠르게 잊혔고, 나는 그 생활을 꽤 만족스러워했다. 


운동이 권장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 있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여리여리한 몸에 대한 선호가 많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지만, 내가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고 하면 '꽤 부지런한 사람' 정도로 인식되던 것이 한국의 분위기였다. 운동을 '필수'가 아닌, '시간낭비' 혹은 '시간이 남아 돌아서하는 여가' 정도로 여기는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 (내가 속한 집단이 유난히 더 그랬던 것 같다)를 꽤 싫어했지만, 나라고 큰 집단을 거스를 만큼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그 분위기에 그냥 묻어가며 잘 지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적당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삶의 중요한 부분을 빼먹은 사람 (그렇지만 그 또한 개개인의 선택이니 굳이 말을 보태지는 않는다) 사람 취급을 받는 듯했다. 그것까지 마음에 들었다. 


식사 또한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주어진 식단대로 정해진 시간에 나오니, 나는 몸만 끌고 가서 잘 먹으면 될 일이었다. 혼자 지낼 때에는 끼니마다 스스로를 위해 차려먹는 것이 고역이었고, 식사 시간도 아깝다고 여기는 이상한 마음가짐과 죄책감 때문에 매우 불규칙적인 식습관을 가졌었는데, 더 이상 그 부분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적응 잘하고, 운동 잘하고, 밥 잘 먹고, 친구 잘 사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딱 하나 내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수면이었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하룻밤에도 5-6번은 선잠에서 깨길 반복했다. 침대에 누웠지만 정말 잠에 들기까지는 최소 1시간 혹은 2-3시간도 너끈히 걸렸다. 처음 몇 주는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가 하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몇 주가 석 달이 되었을 때는 운동을 덜 해서 그런가 싶어 운동량을 늘려봤다. 몸은 녹초가 되어 매우 피곤한데, 밤에 선잠을 자는 나날이 6개월 넘게 지속되었다. 평소라면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겠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활 전반이 나아졌고, 수업은 버겁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고 믿었다). 딱히 절체절명의 고민을 안고 살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보다는 잘 자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수면의 질은 더 형편없어졌다. 왜?


어느 날, 푸념 어린 내 말을 듣던 친구가 가볍게 말했다. 

"You are stressed out by not being stressful enough"


아. 그렇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온 마음으로 동의가 되었다.

물론 전문가의 진단이 아니니 맞다 아니다 할 문제도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내 퍼즐을 설명하기엔 이것보다 더 핵심을 찌르는 문구가 없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예전보다는 조금 편안한 이 상태에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형국이라니.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 허탈하게 웃겼다.


 


Paula를 처음 만났을 때도 여전히 수면 문제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새벽에도 자다 깨기 일쑤였고, 늘 피곤했으며, 그러다 보니 아침에는 머리가 멍하여 카페인만 시시각각 때려 넣는 상황이었다 (야행성 인간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악몽도 적잖이 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악몽의 패턴은 꽤나 단순했다. 등장인물은 주로 벌레나 귀신, 교수님들, 그리고 부모님으로 압축된다. 내용도 흔하디 흔한 추격전, 벌레소탕전, 살인극 따위였다. 현실세계가 90% 이상 똑같이 되풀이되는 꿈을 꿀 때도 많아서, 깨고 나면 내가 지금 잠을 잔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데드라인이 코 앞에 다가오면 이런 증상들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 낮밤이 바뀌거나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곤 하였다. 밤이 되면 그렇게 잠을 자고 싶지가 않았다. 버티고 버티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아차 하는 마음으로 침대로 기어갔다. 

이 모든 증상의 원인은 뻔했다. 상시적인, 그렇지만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더 심해지는 스트레스.   


내 말을 찬찬히 듣던 Paula는 수면 다이어리를 적어볼 것을 권유하였다. 특히 악몽을 꾸는 날이면 기억이 휘발하기 전 최대한 상세히 적어오라고 했다. 




예전 우리 가족이 살던 집 같기도 하고, 어릴 적에 드나들던 외갓집 같기도 했다. 

여하간 꿈속에서는 부모님 집으로 인식된 장소의 발코니였다. 


사마귀 같이 생긴 벌레 하나가 훌쩍 뛰어 들어왔다. 꿈이었지만 소름 끼치는 느낌이 싫어서 엄마에게 알렸다.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을 때 잡아 죽이자고. 그렇지만 내 '제안'은 무위로 돌아갔다. 


삽시간에 사마귀 정도밖에 되지 않던 벌레가 성인 남성의 하반신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복부에서는 맹독이 뿜어져 나왔다. 놀랄 겨를도 없이 대왕 벌레는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크기가 작을 때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후회는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것. 벌레는 점점 커지고 맹독은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제3의 인물이 나타났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신뢰감이 생겼다. 이 제3의 인물은 선뜻 자신이 대왕 벌레를 잡아보겠노라고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발 자국 떼지 못 한채, 대왕 벌레의 습격을 받은 것은 그 자였다. 맹독이 누군가의 몸을 점령하는 동안, 어디선가 내 남동생도 나타났다. 입으로 독을 빨아내어 낯선 이를 살려보려 애썼지만 남동생이 서툴렀던 탓인지 독을 입으로 삼키고 말았고, 제3의 인물과 내 남동생은 모두 중태에 빠졌다.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잠시 머물고 있던 집으로 보였다. 상당히 오래된 가구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외갓집이거나 그와 비슷한 연식의 집인 것 같다.


현관문이 비스듬히 열린 채, 바깥에서는 외삼촌과 외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 방 안을 둘러보다가, 장롱 위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포착했다. 

마찬가지로 벌레를 죽이려고 살충제를 찾았다. 다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혹은 몇몇이 나를 도와주려고 나섰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까스로 시끄러운 바깥 분위기를 진정시켜 벌레의 존재를 알렸고, 살충제를 구했다.

그런데 살충제가 아니라 벌레를 살리는 약이었던지, 분사하면 할수록 바퀴벌레의 덩치가 커졌다. 

처음에는 실제 바퀴벌레 정도밖에 되지 않던 것이 어른 손바닥만큼 커졌다가 금세 중형견 크기만큼 부풀어 올랐다. 이제는 벌레의 등껍질과 더듬이가 더 이상 밟아 죽일 수 있는 수준의 가냘픈 것이 아니었다. 등껍질이 이등분으로 나뉘어 날개처럼 보였는데 상당히 두껍고 반들반들하여 한쪽이 일반 주방도마 크기만 했다. 


벌레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등껍질 사이에서 뭔가가 나오는 것 같았다. 액체인지 새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피하고 싶었다.


같은 바닥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 침대 위로 얼른 뛰어 올라갔다. 한동안 벌레가 보이지 않아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벌레가 침대 밑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육중한 등껍질로 침대 전체를 엎어버리려는 듯하였다. 침대가 약하게 흔들리다가, 벌레가 점점 더 커지면서 땅을 박차고 위로 날아오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진짜 잠자고 있던 침대가 내려앉는 것 같은 근육의 경련을 겪고 놀라서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한국의 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가 꿈을 해석하는 접근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꿈은 그 사람의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적 갈등이 표출되는 하나의 통로하고 한다. 이러한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가 3가지가 있는데, 

1/ 정신 분석을 받으면서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불만을 알게 될 때, 

2/ 실언을 하면서 나도 모르던 내 속마음이 툭 튀어나올 때, 

3/ 꿈을 통해서, 

라고 한다. 


또한 꿈을 분석할 때에는, 

1/ 무엇을 상징하는지, 

2/ 함축된 의미는 무엇인지, 

3/ 어떤 대상이 치환된 것인지 를 집중적으로 본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벌레는 그렇게 해석이 어려운 대상이 아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거나 중요한 날이 다가올 때, 종종 덩치가 크고 퇴치하기 어려운 벌레가 꿈에 나타났다. 내가 퇴치에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이러한 벌레들은 내 걱정과 불안이 구체화된 대상일 것이다. 그 대상은 어려운 사람 (교수님이나 부모님)으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귀신이나 강도에게 쫓기기도 한다. 양태는 다르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같다. 모두 내 불안이 치환된 것이다. 


문제는 내가 잠을 자는 것을 최대한 거부할 때까지 거부해 보다가 동이 트고 나서야 비로소 침대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데드라인이 다가오거나 다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면의 질이 저하되는 것, 악몽을 꾸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잠을 거부할까? 질문의 종착지는 나였겠지만 Paula는 마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서 나에게 동이 틀 때 잠들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단어를 찬찬히 골랐다. 머리에서 생각하는 바가 입에서 자동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잠을 잘 만큼 해 놓은 게 없어서 선뜻 침대에 들어가 지는 못 하는데, 또 상식적으로 이게 몸에 좋을 리는 없어서 마음이 불편해"


"잠을 잘 만큼 해 놓은 게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냥... 목표로 한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는 뜻이야."


"근데 왜 안 자?"


"자면 안 될 것 같아... 밤을 새우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음... 아마 다 못할 거야. 양이 많으니까... 다만,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해."


"왜?"


"낮밤이 바뀌어서 지내는 게 건강엔 안 좋을 테니까?"


몇 번의 핑퐁 대화가 끝나고 Paula는 나름의 분석을 마친 듯 보였다.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마다 벌레나 귀신이 나타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너는 거의 매일 그런 꿈을 꿔야 할 거야. 하지만, 특별히 끔찍한 벌레가 나오거나 귀신에게 쫓기면서 잠에서 깰 때의 심리상태가 궁금해. 내 생각에는, 단순히 데드라인이나 불안이 구체화된 것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구나. 서로 충돌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해. 데드라인이 몰려오니까 너 자신을 더 몰아쳐야 한다는 목소리와, 너의 건강을 위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다른 목소리가 네 안에서 충돌하는 것처럼 보여. 그 충돌이 거셀수록 더 크고 무찌르기 어려운 벌레나 귀신이 나타나는 것 같단다."


"게다가 벌레를 미리 죽이자는 너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꿈속의 상황도 흥미롭네. 그런 류의 좌절이나 답답함을 많이 겪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거야." 




그날의 대화는 몇 가지 다른 분석을 거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벌레, 귀신, 그리고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을 종종 꾼다. 다행히 이 당시의 빈도만큼은 아니었고, 잠에서 깨는 일도 꽤 줄어들었다. 아마도 몇 가지 요인이 있을 텐데, 첫 번째는 주야장천 달고 다니던 커피를 끊었다는 점, 두 번째는 건강에 대해 각성을 하는 계기가 있어 더 이상 수면을 희생시키지 말자는 다짐을 한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일환으로 절대 밤을 새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아주 불가피하게 밤을 새워야 한다면 꼭 부족한 수면을 즉시 보충해 준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수면 패턴을 돌리기 위해 애쓴다. 체질적으로 야행성이기에 (라쿤인가...?) 여전히 이른 아침은 부담스럽지만, 오늘의 잠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으니 최대한 희생시키지 말자는 각오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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