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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숙사에서 알게 된 콜롬비아 출신 친구네 부부는 지금 내가 사는 기숙사의 1층에 살고 있다.
다들 그랬듯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 삶의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고, 그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왔다고 들었다. 새끼 때 사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난번 식사 초대에서 실물을 영접한 이 고양이님은 어느새 훌쩍 커서 성묘가 되어 있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힘들어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에는 반려동물만큼 탁월한 게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기숙사에서 보기 힘들던 댕댕이 엄마아빠와 냥집사들이 우후죽순 늘었다. 사실, 학교 내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애완동물 금지라 (예외 조항은 있지만, 이 예외를 적용받으려면 꽤 지난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내가 볼 수 있었던 사람 이외의 생물체는 야밤에 쓰레기통 뒤지는 라쿤과 자기 몸 만한 피자 조각을 물고 뛰어가는 청설모 그리고 아침마다 징그럽게 싸워대던 까마귀와 갈매기가 전부였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다들 집에서 남편과 아내 혹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미칠 것 같았는지 슬그머니 강아지 짖는 소리, 고양이 애옹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든에서도, 그 앞 잔디 밭에서도, 산책에 열중인 이웃들과 그들의 강아지들. 가끔 보이는 산책냥이들 (처음 봤을 땐 진짜 문화충격이었다. 고양이가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하다니!!!). 그들을 마주치면 귀여워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잠시, 나는 '나만 고양이 없다'라고 푸념하기 일쑤였다.
한 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못했지만 고양이의 통통한 뒤통수와 앞발에 반한 나는 항상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내 몸을 건사하기도 바쁜데 다른 생명체를 책임진다는 생각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최소한 졸업이라도 하고 직장인이 되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고려할 때 분명 몇 차례의 대이동이 불가피할 텐데,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잦은 이사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것이 뻔했다. 그야말로 내가 물리적, 재정적으로 지금보다 안정되었을 때 집사 행렬에 동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알고 싶었다. 내가 괭이를 기를 수 있는 사람인지.
주변 집사들의 말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 본 바를 종합하면, 고양이를 키울 때 예상되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그 중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3가지 있었다. 집이 더러워진다는 것, 가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 장기 여행이 어렵다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노홍철이나 서장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나름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었는데, 괭이가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고 했다. 게다가 아끼는 가구, 장식품이라도 있다면 그건 이미 괭이의 발톱과 이빨에 조용히 납품해야 할 테니 애초에 희망을 버리는 게 좋다고 한다. 나는 너구리(...) 장식품과 인형을 모으고 있는데, 일부는 소재가 정말 설탕유리처럼 얇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은 너구리들도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라쿤'이지만 그냥 너구리로 부르기로 한다... 이쪽이 훨 더 귀여우니까ㅎㅎ). 게다가 짝꿍과 나는 야외 활동을 좋아해서 비루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싹싹 긁어보아 꾸준히 여행을 다니는 편인데, 괭이가 없다면 훌쩍 떠날 여행도 괭이가 있으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마련일 것이다.
이 넓디넓은 기숙사에는 여행에 관한 한 나와 같은 고민을 공유한 사람이 많았는지, 꾸준히 캣시터를 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2년 전 여름 처음으로 캣시팅을 해준 이웃은 우리와 같은 층 반대편 복도에 사는 집사였다. Matcha와 Chai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생김새에 충실히 입각하여 '고등어'와 '쥐냥이'라고 불렀다. 고등어는 암컷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따뜻한 개냥이었고 (암컷이 수컷보다 쬐금 더 예민하다고 들었다), 조금은 수줍음을 타던 쥐냥이는 우리의 일주일 남짓한 캣시팅 기간이 끝나갈 때 즈음 배를 뒤집어 보여주는 은혜로움을 선사했다. 동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내가 행여라도 이 아이들을 너무 세게 쥘까 봐 한 번 편하게 안아보지도 못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등어는 내 허벅지를 밟아주는 깜찍한 애교를 부렸고, 아무리 배를 만져도 하악질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괭이였다. 물론, 괭이가 두 마리나 있으니 집이 깔끔하게 유지될 순 없었고 집안에는 괭이 화장실 냄새와 사료 냄새가 깊숙이 배어 있었다.
나는 착실하게 하루 3번 혹은 그 이상 그 집으로 출퇴근을 하여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웠으며 열심히 낚싯대에 걸린 인형 쥐를 흔들었다. 어느 날은 연구실에서 일하다 말고 괭이들이 보고 싶다며 뛰쳐 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예상치 못한 일정 변경으로 3-4일 당겨서 돌아왔기에 나의 첫 캣시팅은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났는데, 정말로 서운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주인은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지만, 다들 재택근무를 하는 시기에 +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괭이 보겠다고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썩 부담일 것 같아 한 번도 사적으로 연락해보진 않았다. 다만, 밖에서 보면 그 집 패티오가 잘 보이는 위치가 있는데 혹시 괭이들이 창가에 서 있진 않은지 확인하려고 종종 올려다보긴 했다.
나의 두 번째 캣시팅 경험은 올해 봄이었다.
또 다시 같은 층에 사는, 그렇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위치한 이 집도 두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는 다묘 집사들의 보금자리였다. Ottie와 Maya라는 각자의 이름이 있지만, 나는 이번에도 깡그리 무시하고 생김새에 매우 충실한 '흰냥이'와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고구마는 정말 수줍음을 많이 타고 경계심이 엄청났는데, 암컷이라 그런지 (수컷인) 내 짝꿍이 놀아줄 때에만 겨우 관심을 보였다. 일주일 가량되는 캣시팅 기간 동안 고구마가 장난감에 반응하는 건 고작 3-4번이었는데 죄다 내 짝꿍이 손목이 부서져라 낚싯대를 흔들어댄 결과였다. 그에 반해 흰냥이는 개냥이의 정석이었다. 밥을 주러 들어가면 왔냐고 반겨주고, 주방에 서 있으면 어서 밥을 달라고 이마를 내 다리에 비볐다. 고양이 종류 중에 너무 순해서 '냥멘'을 외치게 만드는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렉돌이라고 들었다. 처음 봤을 때 생김새 때문에 흰냥이와 고구마가 렉돌인 줄 알았는데, 발리니즈 (Balinese)라는 종이었다. 괭이 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렉돌도 이러려나, 싶을 정도로 흰냥이와 고구마는 정말로 순했다. 한 번도 하악질을 하지 않았고 냥펀치는 이 아이들의 사전에 없는 것 같았다. 나랑 많이 친했던 흰냥이는 식탐이 어마어마했고, 영수증이나 종이 혹은 휴지를 정말 좋아하는 고양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둔 티슈를 뜯어먹기도 하고, 화장실 휴지를 다 풀어놓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별로 높지 않은 소파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는데, 행여나 다리를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늘 그렇게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내가 '고양이인데 소파에서 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 ㅎㅎ'라고 했더니, 주인은 '걔는 자존감이 높아서 그렇게 떨어져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멋진 답변을 들려주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캣시팅은 내 번아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주와 겹쳤다. 바닥으로 꺼질 것만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나만 기다리고 있을 생명체를 생각하며 밥을 주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나는 흰냥이와 고구마에게 밥을 주고 고구마가 밥을 편하게 먹도록 흰냥이를 유인한 후 (고구마는 흰냥이가 근처에 있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약간은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도 보였는데, 놀랍게도 흰냥이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흰냥이의 오묘하고도 청아한 푸른색 눈을 보고 있자니, 그리고 그 솜털같이 부드러운 털을 만지고 있자니, '흰냥이 카운슬링' 세션에 참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100% 내 작위적인 해석이겠지만, 나는 그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흰냥이가 나를 위로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파에서 떨어져도 자존감에 타격을 받지 않는 고양이.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고양이.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아는 고양이. 흰냥이는 좋은 카운슬러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흰냥이와 고구마는 나에게 '고양이를 키운다고 해서 그렇게 집이 망가지진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처음 훈련만 잘 시키면, 굳이 멀쩡히 있는 가구를 긁거나 식물을 뜯어먹거나 선반 위의 화병을 밀어 버리거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고양이 개개묘의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길고양이가 드문 이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고양이를 구조/임보 센터에서 입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고양이 사회화를 빡세게 가르쳐서 입양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엄청난 지랄냥(...)은 없을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
세 번째 캣시팅 경험은 이제 내 집에서 해 보기로 했다.
내 콜롬비안 친구네 부부 중 남편이 졸업을 했기에 곧 기숙사에게 나가야 한다. 여기저기서 들은 바에 따르면 이사는 고양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고 했다. 짐을 싸면서 짧게는 1주 길면 그 이상, 집은 뒤집어져 있고, 자기 캣타워나 화장실은 이리저리 이동을 당하고, 이삿날 각종 소음과 낯선 사람들 등등은 얌전한 고양이도 날뛰게 만들 소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 내 바로 옆집도 이삿날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집 고양이가 침실 구석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있던 탓에 케이지에 넣을 때까지 애를 먹었다 (나만 고양이 없어 ㅠㅠ).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서 내 콜롬비안 친구는 우리 집에 10일 정도 고양이를 맡길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필요한 고양이 물품/음식/보험 등등을 모두 제공한다며.
횡재였다.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고양이를 집에서 키워보겠는가. 진짜 집사가 되기 전 나를 테스트해 보기에 지금처럼 완벽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냉큼 yes를 외쳤고, 그렇게 괭이 Caleta는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생후 1년 반 정도 되었기에 아직은 자기가 '아기'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애옹애옹과 갸르릉을 꽤 많이 하는 귀여운 고양이었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 본격적으로 우리 집에 데려오기 전 2차례에 걸쳐 탐방을 시켰다. 화장실에서 혼자 1시간, 그리고 다른 날 30분가량 우리 집 거실을 탐방할 수 있게 두었는데, 생각보다 꽤 편안해 보인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콜롬비안 집사를 두었으니 영어도 한국말도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해서, 기억 한편에서 희미해져 가는 스페인어를 소환하여 대화를 시도했다. 앞의 두 차례 캣시팅 경험과 달리, 자기 이름에 꽤 잘 반응하는 편이어서 Caleta로 계속 부르고 있다 (생김새를 보면 딱 너구리라서 너구리로 몇 번 불러봤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단묘종이다 보니 생각만큼 털이 빠지지도 않고 (흰냥이는 흰색 장묘종이었는데 진심 거짓말 안 하고 한 번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갈매기 털 같은 흰 털이 사방 날아다녔다), 털 색깔이 짙은 편이라 우리 집 카펫 위에서는 티도 나지 않았다. 침실을 늘 닫아두라는 친구네 조언에 따라 거실에서만 키우고 있는데 그 덕분에 침구나 옷에 털이 거의 묻지 않는다. 괭이 응가 냄새는 늘 그렇듯이 독하지만, 사람이 쓰는 화장실에 괭이 화장실을 두니 그나마 환기가 잘 되어 집 전체에 냄새가 배진 않았다.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앞선 캣시팅 경험을 하면서 나에게 제일 힘들었던 점이 냄새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괭이가 2마리라 더 그랬겠지만, Wood pellet을 매일 갈아주거나 화장실 바닥을 매일 닦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냄새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Caleta는 아침 6시 정도면 침실 문 밖에서 애옹애옹 운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캣시팅을 할 때만큼은 일찍 일어나서 괭이 밥을 준다. 내가 침실 문을 열고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다리에 이마를 부딪히고, 주방으로 먼저 들어가서 눈으로 나를 부른다. 사료 그릇을 들고 나오는 나를 보면 정말 기쁘다는 듯이, 애옹애옹, 냐옹냐옹, 냥냥, 갸르릉을 돌아가며 들려준다. 첫날은 아직 낯선지 물도 잘 안 먹고 화장실도 잘 안 가길래 걱정을 했는데, 삼일째 되는 날 쾌변을 보고 기분이 좋은지 아침부터 우다다를 시전 했다. 장난감에 반응을 안 하길래 활동성이 높지 않은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손으로 쓰다듬어주면 가끔 발톱을 세우거나 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correction spray를 뿌리면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눈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자칫하면 팔뚝에 자해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에 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Correction spray를 몇 번 반복했더니 쬐끔 알아 들은 것 같긴 하다. 이 집에서 물기는 안 된다는 걸. 주방에서 스토브 근처로 올라가길래 혹시 통할까 싶어 스페인어로 '주방에 올라가지 마'를 시도해 보았다. 한국말로 할 때보다는 나은 듯 보였다. 아무래도 집사들의 언어가 더 익숙하겠지. 그래도 correction spray가 제일 확실했다. 아직도 침실에 들어갈 때면 자기도 데려가라고 애옹애옹 우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라면서 들어간다. 내가 이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들은 말이었다. 뭐, 꼭 사람에게만 쓰라는 법은 없으니까... 한편, Correction spray의 효과를 전해 들은 내 친구는 사람 아기에도 쓸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끼는 피아노를 긁을까 봐 박스로 주변을 둘러놓고 담요를 덮어놔서 집이 조금 어수선해 보이기는 한다. 고양이 용품이 들어오니 너저분한 것도 사실인데,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쁘진 않았다. 우리의 Caletita(Caleta의 애칭)는 나에게 괭이와의 삶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듯, 꽤 협조적이다. 물론 발톱을 깎이거나 목욕을 시켜야 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냄새와 집 정리 측면에서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이 괭이와 함께하는 생활이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내 삶에 Caletita가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될 즈음이면 이 아이는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상상하면 벌써 조금 서운하지만, 이렇게 '묘연'이 닿은 것에 감사한다. Caletita의 발짓, 고갯짓, 애옹이 한 번에 좀 더 많이 웃게 되었다. 진짜 집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빨리 졸업해서 직장 잡아야지. 나도 고양이 키우고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