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대만의 겨울은 서울이나 밴쿠버, 그리고 토론토의 그것에 비해 '따뜻한' 것이 사실이니까.
그냥 나의 기대가 과도하게 높았을 뿐...
어쩌다가 3개월 정도 타이베이에서 체류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어쩌다 타이베이'를 찍고 있는 것과 다름없지만, 이제 밴쿠버에서 산 세월도 좀 되었고 다른 곳이 궁금하던 차에 적절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외관상 내가 밴쿠버 너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서울 너굴이 혹은 도쿄 너굴이 정도로 생각하지만, 약 3개월 동안은 타이베이 너굴이로 살아볼까 한다. 오늘은 그 간 소소하게 겪었던 문화차이에 대해 한 소절 남겨봐야지.
1/ 친절한 사람들, 그렇지만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그대들의 방식
대만에 들어오는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지원을 받는 대가로(돈 주는 쪽이 갑이니까) 내가 서류를 준비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문서화된 지시사항 외의 질문들이 마구 생겼다. 그때마다 담당자들을 거쳐야 했는데, 은근히 그들의 방식은 꽤 전통적(?)이었고 나름 체계가 있다가 없다가 하는 듯했다. 내가 주로 만나야 했던 사람들은 주밴쿠버 대만 대표부의 직원들과 (note: 대만과 캐나다는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사관'의 업무를 대표부에서 맡아서 한다), 대만 본토의 외교부 직원이었다. 내가 그들을 통해야 할 사안은 비자, 장학금, 체류 기간, 등등 여러 가지 항목이 있었는데 어느 한 곳에서 일괄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표부와 외교부가 서로서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서로 동의(...)를 해주는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듯했다. 예를 들어, 나의 대만 체류 기간은 본토의 외교부 직원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었고, 그에 대해 확인을 거친 후 외교부 직원이 yes를 하면, 이를 내가 밴쿠버 대표부 직원에게 알려서, 밴쿠버 대표부 직원이 컨펌을 하고, 이를 다시 외교부 직원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다. 읽으면서 이게 말이야 방구야 하시겠지만, 진짜로 일을 이렇게 처리하고 있었으니, 그 사이에 끼인 나는 속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밴쿠버 대만 대표부 직원 S 씨는 매우 친절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어, 비자 문제로 몇 가지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면, 다음날 오전, 오후, 저녁 9시 할 것 없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족족 전화를 한다. MZ 세대까지 갈 것도 없이 나는 전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느닷없이 이제 막 알게 된 대만 사람이 전화부터 들이대니 당황스러웠다 (참고로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따위의 깜빡이는 없다). 매우 급한 일인가 싶어 처음 몇 번은 전화를 받았는데, 아주 친절하지만 성조가 듬뿍 들어간 영어로 급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S 씨의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내가 다 걱정될 정도였다.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로서는, 성조영어, 인도영어, 불어영어 등등이 여전히 어렵다. 대부분 결론은 별 것 없었기에, 나는 서서히 S 씨의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S 씨가 친절히 문자로 모든 일을 다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편이 훨씬 더 간단명료한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대만 외교부와 정부의 목적은 명확했다. 쉽지 않은 국제 정세에서 믿을 건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는지, 우군 만들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이 일개 나 같은 너굴이에게도 분명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한국에서 나랏돈을 받을 때처럼 쩨쩨하다 못해 "드럽고 치사해서 내 돈 쓴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지는 않았고, 꽤 통 크게 지원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은 아직도 상당히 아날로그 식이라 밴쿠버에서 나름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로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밴쿠버 정도면 최첨단이었다).
장학금은 한 달에 한 번 지급되지만, 대만 현지 은행을 통해서 지급이 된단다. 현지 은행 계좌 개설은 일종의 외국인 등록번호 같은 것을 받아야 할 수 있단다.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들리지만, 매달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외교부 산하 공관으로 와서 직접 사인(...)을 해야만 돈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사인을 해야 하는 날짜도 정해져 있다. 대만 도착 첫날에 일종의 '등록'을 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고 차로 30분이 걸리는 곳을 방문하고, 이민국 같은 곳에 가서 '등록 번호'를 받고, 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 다시 공관으로 가서 월 생활비를 받기 위해 사인을 하는데 (이런 행정처리가 며칠에 걸쳐 이뤄졌다), 무슨 도루마무 마방진에 빠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친절하기는 무진장 친절하다. 공관 직원들은 영어를 잘 하지만, 이민국이나 은행 직원들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고 오히려 내 서툰 중국어에 핀잔을 줘도 할 말이 없는데 끝까지 인내심 있게 도와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약간의 주먹구구식 행정처리의 예고편을 정부 공관에서 봤다면, 그보다 더한 것은 학교에 있었다.
나는 현지 대학 중 한 곳에 적을 두고 있고, 그곳의 교원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처음 대만 땅에 발을 들이게 되어 있던 날이 2월 7일이었다는 점. 대만은 중국처럼 설 명절을 뻑적지근하게 쇠다 보니, 2/8일부터 2/14일까지 온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소리를, 밴쿠버 대만 대표부 직원 S 씨, 본토 외교부 직원 M 씨, 그리고 내가 속한 대학 프로그램의 학장 등등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게다가 학교는 하루 당겨 2/7일부터 문을 닫을 거란다. 내가 대만에 도착해도 내 숙소에 발 들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우여곡절 끝에 학장의 지도학생 도움을 받아 도착한 날 방 키를 받았지만, housing contract, security deposit 등등, 기본적으로 몸을 누이는 공간과 그 공간에 대한 비용 지불에 대한 언급이 일언반구 없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내가 이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지낸 지 2주가 넘었는데 아무도 나한테 월세 내라는 소리를 안 한다. 학장을 만나고 학교 직원을 만날 때마다 무슨 엉덩이에 가시 박힌 토끼처럼 몸을 들썩들썩 하면서 "저기, 나 월세는 안 내니?"를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1/ 모월 모시에 내라, 2/ 얼마를 내라, 3/ 무엇 무엇이 포함되어 있고, 4/ 계약서는 언제 쓰자,라는 등의 말을 해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어제(!) 학과 직원을 붙잡고 집요하게 물어본 결과, 1/대만을 떠나기 전에 한꺼번에 내면 되고, 2/다른 거 신경 쓸 거 없고, 3/예전에 어떤 방문 학자는 방세 안 내고 갔는데 학교에서 2달 동안 모르다가 나중에 연락 왔다,라는 이야기를 호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내가 사는 곳 한 달 방세가 얼만지 몰라서 housing staff에게 다시 전화를 걸더라... 밴쿠버에서 campus housing protocol에 찌들어 매번 이사 다닐 때마다 꼬박꼬박 계약서 쓰고, 디파짓 내고, 청소 미친 듯이 하던 기억에만 몰두한 내 모습이 허탈하게 다가왔다. 착한 대만 사람들... 역시 기후가 따뜻해서 다들 관대한 건가...
그렇지만 첫날 수영장 등록할 때의 아날로그식 행정처리는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나는 방문학자니까 교원으로 처리되어 수영장 한 달 등록비가 학생 요금에 비해 비쌌다. 그래봐야 대만달러로 1600불(CAD 70) 정도였는데, 수영장에 땀을 삐질흘리며 갔더니 금액이 커서 수영장에서 계산을 할 수 없단다. 순간 나는 한 달 수영장 등록비가 NTD 1600불이 아니라 NTD 16000불(CAD 700)이라는 줄 알고 "수영이 이 나라에서 상류층만 즐기는 스포츠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행히 수영은 서민 운동이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대만달러로 1000불이 넘는 금액은 금액이 커서 (대체 어디가 큰데!!) 현장 결제가 안된다나... 그래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행정관으로 가서 현금으로 돈을 내고 영수증을 다시 가져오란다. 2월이었지만 한낮 기온 26-27도를 자랑하는 날에, 지리도 잘 모르겠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캐나다 달러로 700불도 아니고 70불을 내겠다고 땀을 흘리는 상황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2/ 실내가 실외보다 더 추워요... 믿어지세요?
처음 교원 기숙사 외관을 볼 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이 건물이 금방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귀가할 때 저 멀리 이 건물이 보일 때마다 조금씩 흠칫한다.
대만을 처음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만의 기후와 주거 환경에 대해 아주 문외한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 타이난이라는 남쪽 지방을 여행했을 때, 현지 친구의 타이난 전통 가옥에서 지냈던 적도 있고, 동네에서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영롱하게 날아가는 걸 본 적도 있어서 아주 모르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캐나다에서 spoil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꼭 하우스나 타운하우스, 듀플렉스가 아니라도, 건조하지만 깔끔하게 유지되는 콘도들. 목조 건물이라 무너지겠다고 농담하곤 했었던 학교 기숙사들은 사실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이었던 것이었다...
대만의 겨울도 밴쿠버랑 조금 비슷한 것 같다. 기온은 10-15도를 넘나들지만 우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가 잦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실내 난방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것. 물론, 요즘 짓는 고급 빌딩에는 냉난방 겸용 시설이 있겠으나, 대부분의 가옥에는 난방 시설이 없단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학장이 나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 "숙소가 추울 텐데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경고를 몇 차례 날렸었다. "흥, 왜 이래, 나 그래도 캐나다 너굴이인데!" 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다. 대만이 추워봐야 얼마나 춥겠어, 여름에 쪄 죽을까 걱정이지,라는 생각을 갖고 도착했더니 꽤 썰렁한 온도의 습도가 상당히 높은 날씨가 나를 반겨주더라. 밴쿠버의 겨울도 습도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대만의 겨울에 비하면 밴쿠버는 건식 사우나 같은 곳이었다. 잠시 책상에 올려두었는데 바삭하게 말라버린 귤껍질이 하루에도 12개씩 생성되는 뭐 그런 곳...
습도가 높은 기후는 건물의 외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진이 발생하는 지대라 건물이 대체로 낮게 유지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다운타운 쪽은 고층 빌딩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학교 주변은 주로 2-3층 짜리의 주상복합 건물이나 10층 내외의 아파트가 전부였다. 특히 낮은 건물들의 외벽은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일단 주렁주렁 고물처럼 달린 에어컨 실외기가 그 풍경에 한몫을 하였고, 습도가 높아 이끼며 곰팡이로 건물 외벽이 뒤덮인 덕분에 모던한 느낌을 주기에는 애초에 도가 튼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지내는 기숙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빌딩이라고 하니 말 다했지 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심 곧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며칠 전에 약간의 지진을 느꼈는데, 의외로 건물은 튼튼했다!).
더 큰 충격은 첫날밤 일어났다. 당시 2월 초반 이곳의 온도는 10-13도, 그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하루만 머물고 구정 명절을 보내기 위해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당최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샤워를 한 번 하고 나왔을 뿐인데, 방 내부의 습도는 거의 90%에 달하는 것 같았고 난방이 되질 않으니 높아지지 않는 온도 때문에 습도도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준비해 간 핫팩을 몇 개 뜯어 손과 발에 붙여봤자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그러니 습한 냉기가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파고드는데... 비행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서 공항에서 시간을 죽일 생각으로 숙소를 일찍 나섰다. 택시 안, 카페, 공항 등등 실내보다 실외가 더 따뜻했다...
믿거나 말거나, 1주일이 아주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기에 적합한 시간이었음을, 타이베이의 기후를 보며 체감했다. 한국에서 1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불과 떠나기 전 한낮의 기온은 10-15도였는데 이제는 25-27도를 넘나 든다. 왜 사람들이 버블티를 도시락처럼 싸들고 다니는지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 다시 돌아서 아날로그
보편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도 디지털 도어록보다는 열쇠를 선호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학교 내부에서는 그렇다. 밴쿠버에서의 내 열쇠 꾸러미랑 달리 (무슨 대감집 곳간 열쇠 모아놓은 것처럼 꾸러미가 묵직하다) 이곳의 열쇠 꾸러미는 아주 단출하여 그 존재가 미미한 탓에, 어느 날 내가 열쇠를 방안에 둔 채 문을 잠그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참고로 이곳에서 문을 잠그는 방법은, 그냥 방문 잠그듯이 안에서 잠그고 닫는 것. 열 때는 밖에서 열쇠는 여는 것. 문은 나무 문짝. 여차하면 바디체킹으로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허술함... 뭐 그 정도...
하지만 내가 영화적 상상력이 너무 뛰어났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마동석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실제로 바디체킹을 시도했을 때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바로 그 멍청한 생각을 어젯밤에 실천하고야 만 것이었다. 부산스레 움직이며 옷을 갈아입다가, 단출한 열쇠 꾸러미를 살포시 선반 위에 놓아두고 당당하게 문을 잠그고 나온 것이었다.
때는 금요일 밤 10시. 이 건물에 상주하는 관리인도 없는데. 나는 대만 로컬 번호도 없고, 있다 한들 문제해결을 할 정도로 중국어가 뛰어나지도 않은데. 큰일 났다 싶어서, 나를 도와주던 학생에게 염치 불고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1층 화이트보드에 암호처럼 휘갈겨 놓은 관리인과 locksmith들의 전화번호는 정녕 장식이었던가. 관리인은 스페어키가 없다고 했고, locksmith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단다.
오늘밤 타이베이 에어비앤비라도 구해서 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건장한 중국 청년 하나가 건물로 들어온다. 상황 설명을 했더니, 친절히 locksmith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주고, 그냥 몰래 열쇠 하나 복사해서 다니라는 귀띔을 날린 채 불금을 즐기러 나가더라. 뒤이어 도착한 locksmith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흥분한 마음에 영어로 조잘거리는데 아저씨가 자기 영어 못 한다면서도 계속 영어로 말 걸어서 나는 중국어로 떠듬떠듬 대답하는 촌극을 빚었다.
영웅처럼 보이던 locksmith가 내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가 뭐... 하다못해 무슨 연장이라도 들고 문을 따거나, 혹은 스페어 키라도 보여줄 줄 알았다. 주머니에 숨겨둔 닭뼈를 꺼내는 기안84처럼, 아저씨는 두터운 파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쇠꼬챙이 하나를 꺼냈다. 나의 '설마'는 얼마 가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허술하게 생겼지만 내 바디체킹에는 꿈쩍하지 않던 방문 손잡이 열쇠구멍을 쑤시더니 몇 번의 휘적임 끝에 문을 따는 것이었다!!!
열쇠가 내 방에 있음을 확인한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NTD 400불(CAD 17불 정도)을 지불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쇠꼬챙이에 뚫리고 말 정도의 방범체계가 못내 불안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착하고 친절한 대만 사람들을 믿어야지. 뭐, 이 김에 나도 쇠꼬챙이 하나 정도는 주머니에 상비하고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