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굴이 Mar 17. 2024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길을 건넙니다

타이베이에서요

어느덧 타이베이 어느 구석탱이에서 머무른 지 1달이 조금 넘었다. 


내가 지내는 곳은 타이베이 어느 모서리 산자락 아래에 있어서 중심지와 잘 연결되어 있는 곳은 아니다. 아마도 여행다운 여행은 짝꿍이 놀러 오는 5월 초가 되어서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어리버리하게 중국어 단어를 내뱉으며 지낸 세월이 1달은 되는지라, 밴쿠버와 타이베이의 차이, 그리고 서울과 타이베이의 차이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자의 반 타의 반 학교 근방에만 머물게 되어서 대만을 바라보는 내 시야가 많이 치우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관찰 일지 한 토막을 적자면. 




1/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길을 건넙니다


타이베이를 구석구석 다녀본 것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최소한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중심지와 내가 지내는 학교 근처의 차도와 인도 사정은 매우 좋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직도 이 부분이 가장 불편하고 앞으로도 절대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건물은 물론이고 도로 인프라도 한국의 8-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타이베이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다. 현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학생의 말로는, 도시의 낙후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만 타이베이 시에서 이를 관리할 의지도 없고 여력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그 학생 개인의 견해입니다만). 예를 들어, 때 되면 건물 외벽 청소를 한다든지, 창문 청소를 한다든지, 실외기 관리를 한다든지, 도로 청소를 한다든지, 등등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도시 미관을 위한 행정'이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단다. 거기에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타이베이의 기후가 합쳐져서 건물 외벽은 항상 곰팡이와 이끼로 덮여있기 때문에, 도통 '모던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 경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도시 관리의 역사는 차치하고서라도, 도시의 낙후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역시 좁디좁은 도로라 볼 수 있겠다. 지내고 있는 기숙사에서 학교 도서관까지 가는 10분 거리에도 제대로 된 인도는 보기 힘들다. 나름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려고 시뻘건 페인트를 경계에다 발라놨는데, 외국인의 눈에는 이게 미관상 좋지 않은 이미지만 줄 뿐, 전혀 인도를 인도로서 보호하는 기능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도랍시고 있는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가면 뒷사람이 차도로 내려가지 않는 한 이들을 앞지르기 힘들 정도로 매우 협소하다. 그 와중에 전봇대도 간혹 올라와 있으니 비라도 와서 우산을 쓰고 지나가야 하는 날이면 그냥 우산을 접고 비를 맞는 게 편할 정도로 보행자의 편의는 보장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학교 주변만 이런 줄 알았다. 하지만 중심지로 나가봐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 상황이었기에 (대로에만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골목길 사정은 똑같다), 자체적으로 '도시가 인구 증가에 따른 현대화를 거치지 못했던 건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 대만도 한국과 비슷하게 수도인 타이베이와 그 나머지로 나뉘어져 있다고 할만큼 모든 인프라가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정작 그 수도의 노후화 문제가 심각하다니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로 1시간 거리에 떨어져있는 신추 (Hsin-chu) 지역의 국립 칭화대를 방문했을 때에는, 최소한 타이베이 중심지나 내가 있는 정치대 근처보다는 도시 관리가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부분은 좁은 차도와 인도에 비해 과도하게 큰 차량에 있는 듯하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도로가 많이 좁다는 생각을 했지만 크게 불편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 대부분의 승용차들이 아담한 크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택시는 대부분 기아 모닝보다 조금 더 크거나 아니면 비슷한 크기였고, 밴쿠버나 서울에서 볼 법한 SUV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베이에서 지금까지 마주친 차량은 대부분 세단 혹은 SUV급이었으니, 이들이 좁디좁은 차도와 인도 사이를 오가는 곡예를 할 때마다 나는 운전자들의 운전실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게다가 최종 보스는 인도와 차도 구분 없이, 때로는 정차된 차량들 차이를 무법자처럼 비집고 다니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이다. 한국에서 스쿠터라고 불리는 그런 오토바이는 이곳에서 일반 차량보다 더 필수품처럼 여겨지기에, 어딜 가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고, 오토바이가 골목에서 휙 튀어나오거나 심지어 인도에서 보행자 등 뒤를 바짝 쫓아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차라리 바이크였으면 좋겠다)를 볼 때마다, 헬멧 하나에 의지해서 달리는 운전자들의 안전 걱정을 오지랖 넓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부분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의 안전이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호등이 있어도 애매한 크기의 건널목에서는 무시되기 마련이며,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많다. 뉴욕에서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관광객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질서 속에 분명 질서가 있었다. 워낙 바쁜 현대사회를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신호조차 기다릴 여유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뉴욕에서 길 건너다가 차에 치일 것 같다는 공포를 가진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곳에서 보행자의 공포를 한층 가중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내버스. 부산도 버스 운전기사의 횡포(?)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이 곳과 부산 중 어느 쪽이 더 무법도시일까 궁금해진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인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돌진하는 오토바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그들은 뱀처럼 알아서 피해 간다), 일반 차량도 운전자와 보행자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 맞으니 '저 차가 나를 봤으니 치진 않겠지'라는 믿음을 어렵게나마 키워갈 수 있다. 하지만 버스는 보행자 입장에서 도무지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기도 힘들뿐더러, 분명 매일 정해진 길을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것일 테니 이쯤이면 횡단보도가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멈출 생각이 1도 없는 것처럼 돌진해 온다. 버블티를 멍하게 입에 물고 있다가 '내가 언제쯤 건널 수 있을까, 대체 사람이 건널 시늉을 하면 차를 세울 의지는 없는 건가, 밴쿠버 그리웡', 이런 의식의 흐름을 하루에도 3-4번 맞이한다. 심지어 도로를 까 뒤집는 공사를 하는데도 보행자가 따로 건널 수 있는 길을 마련해놓지 않고 포크레인 아래를 차와 사람이 뒤섞여 그냥 지나다니게 할 때에는, 먹던 타피오카도 넘어올 것 같다. 


어느 날은 횡단보도 앞에서 나이스하게 멈춘 일반 차량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살짝 올리며 'thank you'를 속삭였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벽안의 외국인이 나를 보며 '나도 안다'는 식의 미소를 흘리고 갔다. 다른 이야기인데, 여기서 영어 쓰는 사람 만나면 되게 반갑다...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닌데도... 



2/ 중국어가 시끄럽지 않을 수 있다니


중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중국어란 언어는 그 자체로 조곤조곤하게 말하기란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했었다. 밴쿠버에서 들었던 중국인들의 중국어, 성조 가득 넣은 영어, 그리고 중국어 선생님의 패왕별희 노래하는 듯한 중국어 등등.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도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본토 중국어를 배우고 왔으니. 


흔히 중국어를 하면 싸우는 줄 안다고 농담을 하는데, 중국어를 잘 못 알아듣는 내 귀에도 내용은 홀랑 빼고 말의 높낮이만 들어오니까 '저 사람들 또 싸우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제로 TA로 tutorial을 진행하러 들어간 수업에서 중국인 학생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워낙 말을 던지듯이 하는 것처럼 들리다 보니, '저 친구들이 수업 와서 싸우나, 나는 언제 말려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거의 매주 비슷한 발음과 성조로 대화를 시작했고, 나중에 중국어를 아주 조금 알아듣게 되고 나서야 그들이 '친교와 정서를 위한 대화'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그저, "아침 먹었냐, 안 먹으면 어쩌냐, 밥은 잘 먹고 다녀야지", 뭐 이런 대화를 하는 것뿐이었다. 


밴쿠버나 리치몬드에서 중식당을 가면 늘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들이 싸움을 건다는 느낌이 들게끔 말을 거신다. 물론 대부분은 '몇 명이냐', '현금만 받는다', '차를 무슨 차로 줄까', '물 줄까', 정도의 대화가 전부다. 한 번은 옆 테이블 중국인 가족이 이미 서빙이 끝난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고, 서버 아주머니가 계속 첨언을 하며 메뉴판에서 이것저것 공격적으로 탁탁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 컴플레인을 건 것인가, 드디어 중국어로 하는 싸움을 보는 것인가, 이 흥미진진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 짝꿍과 나는 조용히 밥을 먹으며 귀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 가족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서버 아줌마도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말투는 여전히 쌈닭이었지만 아이들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가는 그 장면을 보며, 짝꿍과 추측을 마쳤다. "메뉴 추천해 달라는 거였나 봐". 


흥미롭게도 대만 중국어는 본토 중국어에 비해 부드럽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대화를 시작할 때 쓰는 말인 不好意思 (뿌하오이쓰)는 영어로 치면 excuse me에 해당하고, 일본어로 치면 しつれいします(시츠레이시마스)에 해당한다.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할 때 거의 대부분 '뿌하오이쓰'로 대화를 시작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본토 중국어를 배울 때처럼 '我問一下 (질문 좀 할게요)'로는 대화를 잘 시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대만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만나보지 못했다 (참고로 저의 대만 중국어 경험은 매우 미천합니다). 


그 외에도 말을 부드럽게 만드는 조사 '啊(아)'가 단어 뒤, 문장 뒤에 많이 붙는다. 실제 본토 중국인인 내 친구에게 본토 중국어와 대만 중국어의 차이를 물었을 때에도 이 부분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본인 귀에 대만 중국어는 부드럽게 말하는 것에 초점을 많이 두기에 발화자에 따라 귀엽게 들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단어나 표현, 문법의 차이보다는 성조나 발성의 차이가 가장 많이 느껴진다. 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마치 권설음이 조금 들어간 일본어를 듣는 것 같은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고 (시장에서는 예외다), 대륙의 호탕함이 느껴지는 중국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지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는 한 학생은 식당에서 겁나 크게 떠드는 무리를 보면 십중팔구 본토 중국인 아니면 술 먹은 한국인이라고 말해주었다. 



3/ 영어를 대하는 온도 차이


일본에서의 내 경험이 절대 일반화될 순 없겠지만,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 짝꿍이나 일본 전문가인 지도교수, 그리고 일본과 어느 정도 밀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내가 겪은 것을 종합해 보건대, 일본 사회에서 영어 포비아는 어느 정도 존재하는 듯하다. 재미있게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추앙에 가깝다)도 상당하고, 생활에서 영어 단어를 많이 쓴다는 자부심(...)도 대단한 일본 사회인데도, 영어에 대한 포비아 역시 꽤 가시적으로 존재한다. 


(또) 부끄럽지만 나의 일본어도 매우 미천하여, 일본에서는 "제가 일본어가 많이 서툴러서요. 영어로 대화할 수 있을까요?"를 일본어로 외워 모든 대화 시작 전에 던져 놓고 다음 대화를 진행했다. 학자나 관료같이 인터뷰이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기에 괜찮았다. 문제는 식당, 상점, 카페, 역무원, 공항직원, 항공사 직원 등을 상대할 때 발생했다.


물론, 일본에서 모든 업무를 영어로 무난하게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절대 아니다. 그 나라에 갔으면 현지어에 어느 정도 능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중국어도 잘 못하는데 대만에 와 있는 내 마음은 늘 불편하다. 하지만, 역무원이나 공항직원, 항공사 직원과 같이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 못해서 엉뚱한 정보를 알려줄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정보를 잘못 알아듣거나 잘못 알려줄 거면 애초에 영어를 못한다고 말하거나,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온다든지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그들의 책임이 아닐까. 실제로 일본에서 출국하던 마지막 날, 지하철에서 공항버스를 타는 곳을 잘못 알려준 직원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다 버스를 놓칠 뻔한 일이나, 공항에서 탑승 게이트를 잘못 알려주는 항공사 직원의 미소를 너그러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애초에 나는 일본어가 서투니까 영어로 하거나 아니면 번역기를 쓰겠다고 말을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에서 한번 움찔하고, 일본어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 것을 알 텐데도). 혹은 서툰 영어로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다. 최악은 물품보관함을 찾지 못해서 한 역무원에게 위치를 물어보려고 했을 때였다.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자마자 마치 진저리를 치듯이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일본어로 무언가를 엄청 빨리 말했다. 구글 번역기를 켤 새도 없이 그 역무원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종래에는 '노 잉구리시'로 마무리 지었다. 일본어를 못하는 것이 분명한 상대를 앞에 두고 일본인에게 하듯 일본어를 하는 사람들을 매일같이 만났지만, 이 정도의 두려움(?)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기에 매우 무안하게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다. 지도교수의 부인(본토 중국인, 일본어 못함) 역시 남편을 따라 일본을 왕왕 다녔는데, 갈 때마다 이런 경험이 있다고 했었다. 


타이베이에서도 내 대화 시작법은 똑같다. "중국어를 잘 못해서요. 영어로 할 수 있을까요"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간단한 영어 단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영어 못합니다"라고 말을 해서 내가 구글 번역기를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가장 큰 차이는, 상대가 본인의 언어를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도 자신의 언어로 계속 대화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말을 천천히 해 준다는 점이었다. 


물론, 대만에 와서도 간단한 회화 외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진행해야 하는 내 모습이 이 곳의 누군가에게는 무례하게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런 행동이 무례하다 생각하기에 틈틈이 회화 공부를 하지만 중국어 공부가 이번 방문의 목적이 아니다 보니 무례함을 반복해야 할 일이 계속 생겨서 안타깝다. 다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같은 비영어권 국가임에도 영어를 대하는 온도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퍽 신기하게 다가오긴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동안, 주로 타이베이에 머물렀지만 1박으로 신추 (Hsin-chu) 지역을 다녀오기도 했고, 현지인과 인터뷰를 할 기회도 있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정책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 전환이 조금 느린 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내가 더 추워서 히터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지금의 숙소에도 적응되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게 되었다 (aka. 포기했다). 학교 근처에서도 제법 단골로 가는 카페와 식당도 생기고, 일반 밥집에서는 밴쿠버에서처럼 서버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지 말고 손님이 주인의식을 갖고 주저 없이 아무 데나 앉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튀긴 취두부도 처음으로 먹어봤지만 그냥 도전을 해 봤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나는 망고주스나 마셔야겠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롄우"라는 대만식 사과에 속하는 과일이 내 입에는 일반 사과보다 더 맛있고 상큼해서 밴쿠버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보행자를 향해 돌진해 오는 차와 버스, 그리고 보행자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오토바이에는 절대 적응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대만은 겨울 아니면 여름이라는데, 이제 겨울이 끝나가고 있으니 여름이 곧 다가오겠다. 

여름은 여름 나름의 에피소드가 생기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의 겨울이 따뜻하다는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