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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싶은 나를 위해 책을 썼다

에필로그, 글이 지켜낸 사랑 이야기

by 애기곰

<이혼하고 싶을 때 읽는 책>

브런치 스토리라는 곳에 발을 딛고 무작정 시작한 이 책은, 사실 나 자신을 위한 책이었다.


결혼 14년 동안 무직 10년이라니.

생전 양파도 안 썰어본 사람이라니.

무얼 해야 좋을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람이라니.


이런 사람과 살아서 뭐 하나,

징글징글한 고생 끝에 낙은 와서 뭐 하나,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나 혼자 살고 말지.


오만가지 비겁하고도 치졸한 생각과 함께

삶 전체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역시 그때 이혼했어야 했는데,

이혼 이혼 이혼... 이혼만이 답이었는데,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매일 부르짖던 날들이었다.


<이혼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은

삶에서 나를 꺼내기 위해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내 삶을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역시 그의 퇴사부터 시작해야겠지,

자판을 두드리는 마음이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답답해져 왔다.


흰 바탕에 촘촘히 적어 내린 그동안의 삶은 누가 볼까 무서울 정도로 초라했다.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한탄도 나왔다.


목차를 만들고, 4화쯤 써 내려갔을 때 깨달았다.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살리지 못한 자기 한탄, 합리화로 가득한 비겁한 글이라는 것을.


불티나게 팔렸을 드라마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단 한 편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야기'로 바꾸었다.

그가 날 너무나도 아꼈던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결혼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이야기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났다.



<이혼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을 연재하면서 남편과 싸운 날도 있다.

글을 다 써두었는데도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에게 먼저 사과했고, 사랑한다 말을 한 후에야

비로소 서랍 속 글을 꺼낼 수 있었다.


사랑이 글을 쓰게 했지만, 글이 사랑을 지켜낸 순간이었다.




바라건대 이 책을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지나가면 더 좋겠다. 이혼은 남의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어가면 정말 좋겠다.


혹여라도 이 글을 나와 당신이 (다시) 읽는다면, 더 사랑할 한 뼘의 힘을 얻어가길. 이혼하고 싶었는데, '안'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길. 이혼할 오만가지 이유가 다 합리적이어도 결혼을 유지할 비합리적인 이유 딱 한 가지만이라도 찾을 수 있길.



나는 10년이 필요했다.

9년이 되도록 내 사람에 대해 온전한 사랑을 건네지 못했다.


당신의 진짜 사랑의 끝을 보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p.s.

10년 간 진짜 사랑의 표상을 보여준 나의 남편,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수벌도 '드론'이 되는 세상이라는 당신의 말은 오늘도 날 웃게 합니다.





그동안 <이혼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의 독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게 응원의 손짓을 보내주신 한 분 한 분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의 한 줄을 당신께 선물로 드립니다.


사랑은 만남으로 요약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에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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