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 예찬
아침부터 커피를 쏟았다. 아주 크게 쏟았다. 하루를 고요하게 시작하고 싶어 커피 내리는 의식을 갖기로 했는데, 의식부터 난리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쓱 닦고 다음 커피를 내리는 일에 착수하든가, '나는 왜 맨날 하는 일이 이 모양이냐'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든가.
나의 선택은 주로 전자였지만, 오늘 아침만큼은 후자가 되었다. 마음의 힘이 남아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순간 거대한 불꽃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이때는 슈퍼맨이 곁에 있으면 좋다.
나의 탄식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왜? 무슨 일이야?' 달려왔다. 커피가 반쯤 담겨있던 컵이 나동그라져 사방이 커피로 가득한데, 머신은 여전히 시끄럽게 추출 중이고, 커피를 내리는 주체는 눈동자에 초점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이 아수라장에서, '안 다쳤지? 그럼 됐어. 내가 치울게.' 말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내가 벌여놓은 난장판을 수습했다. '멋지게 아침을 맞고 싶었는데, 진짜 이런 실수 안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나의 말에 씩 웃으며 '나는 애기(아내)의 실수에 가장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때 기억나? 내가 유리병 깨뜨렸을 때 애기가...'
내 실수에 가장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슈퍼맨의 한 마디가 심장에 내려앉았다.
커피를 흘린 자국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슈퍼맨은 제 할 일은 마치고 다시 자고 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또 한 뼘 깊어졌다.
나의 아침은 커피를 쏟기 전보다 더 풍성하고 따뜻해졌다. 이제 나도 멋 부리며 할 말이 생겼으니까.
'나는 여보의 실수에 가장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때 기억나? 내가 아침에 커피 쏟았을 때...' 호시탐탐 이 말을 해 줄 기회를 찾게 될 테니까.
좋은 사람이란 나의 슈퍼맨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타인의 소란에 잠이 깼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책하는 사람을 돌보며 위로를 건네는 사람. 지나간 자리는 금세 말끔해졌지만 그 여운은 결코 얕지 않은 사람.
나는 슈퍼맨과 산다.
하마터면 슈퍼맨인지 모를 뻔했다. 나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 아침이 아니었다면. 그러니 나의 실수에도 축배를.
실수 투성이인 두 사람이 영화처럼 사는 법은 의외로 간단할 지도 모르겠다. 실수하기와 실수 덮기. 그 사이에 슈퍼맨(슈퍼우먼)의 멋 내는 제스처 약간.
오, 영화가 잘 될 것 같아 한 번 더 축배를 들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