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이 두려워 차는커녕 면허도 없는 부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자동차인 것 같다.
2년 전 우리 부부가 쌍둥이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양가 부모님도, 지인들도, 한결같이 '빨리 면허부터 따라'며 성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면허 따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도 남편도.
우리는 이미 차 없이 사는 기쁨을 맛봤기 때문인데, 이 '가뿐함'과 '홀가분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서로에게 면허를 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기 싫은 것은 (되도록) 안 한다' 그리고 '내가 싫은 것은 배우자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주의다.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은 책, 박혜윤 글, 유희진 그림 <부모는 관객이다>의 한 장면이다. '희생과 강요가 없는 가족'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나와 남편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는) 면허를 따고, (원치 않는) 자동차를 마련한다는 상당한 희생을 거부하고, 우리 둘 다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는 거 보면 말이다.
게다가 더더욱 면허를 따고 싶지 않은 이유는, 면허를 따면 자동차를 사게 되고, 최후에는 자식들 '라이딩 뒷바라지'하는 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에서 자유롭지 않을 우리의 앞날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부릴 욕심을 원천 차단하고 싶어졌다. 차가 없다는 핑계로 라이딩을 못하게 될 운명을 일찍부터 만든 셈이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학원에 다니길 간절히 원한다면 스스로 '묘수'를 알아내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또한, 그렇게까지 묘수를 짜내어 다니는 학원이라면 아이에게 큰 가치가 있을 테니 더욱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기동력이라는 부분은 기차, 버스, 지하철, 택시라는 공공자원에 기대면 된다. 그렇게 '재빠르게 도달'해야만 하는 상황이 많을까 싶고, 오히려 재빠르게 도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느릿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전대미문의,
이전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이 생에서 처음 시작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생에서 처음 시작된 우리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온 힘껏 상상력을 펼쳐보고 있다. 차가 있을 때의 미래와, 차가 없을 때의 미래. 차가 있으면 편리하고 조금은 화려하고, 확실하지만 무거운 삶이 그려지는 데 반해, 차가 없을 때는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고, 불확실하지만 가벼운 삶이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언제까지 차가 없을지 우리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들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면허를 따고 싶지 않다. 반대로, 아이들도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부모나 주변의 압박 때문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아무리 그게 맞다고 해도 스스로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재차 물어보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동할 때, 바로 그때 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미니멀 육아란, 그런 것이니까.
가족 중 어느 누구에게도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자유를 압박하지 않고,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 말고, 각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그러니, 차가 없다고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가 없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걷고, 더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재미'라 여긴다. 차가 없다는 것은 '제약'이 아니라, 더 많은 길을 걷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다.
우리의 '차 없는 쌍둥이 육아' 실험은 2년째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