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외모에 대해 덜 말하기

덜 말할수록 덜 중요해지겠지

by 애기곰

더하기보다 빼는 육아를 지향한다. 부모로서 뭘 더 해주려 하기보다 안 해도 좋은 것, 안 하면 오히려 더 좋은 것들을 찾아본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외모 언급'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 읽은 책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고 '보디 토크 body talk (외모에 대한 대화)'를 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는 나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는데, 말랐다며 보약을 먹인 할머니, 뚱뚱하다며 그만 좀 먹으라는 부모님, 팔뚝이 두껍다고 말하는 중학교 친구들, 다이어트 권유하던 고등학교 선생님들, 못생겨 보이니 안경은 쓰지 말라는 대학교 친구들까지... 내 외모에 대한 수많은 말들로 내 몸 하나 사랑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외모를 중시하는 가정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몸에 대한 건강한 심리를 갖추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열두 살 때부터 돼지라는 별명이 붙었고, 체육시간마다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나의 외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공기처럼 존재했다. 먹을 때도 괴로웠고, 먹지 않을 때도 힘들었다. 공부도 잘해야 했고, 얼굴도 예뻐야 했고, 몸도 늘씬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피부에는 여드름 하나 없어야 했다. 나를 둘러싼 폭력적 시선이 도처에 있어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답답했다.



더 예뻐져야겠다고, 더 살을 빼야겠다고, 나를 호되게 다그쳤는데, 아무리 다그쳐도 나는 예뻐지지도 날씬해지지도 않아 그냥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이 악순환을 끊고 싶어 아이를 낳으면 어떤 모양이든 사랑해 주겠노라 결심했지만, 내 아기의 뭉뚝한 코를 0.01mm라도 높여주겠다고 여러 번 잡아당기고 있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그 시절 우리 엄마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낮은 코보다 높은 코가 아름답다는 걸 나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이후, 아이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이와 내 외모에 대해서도 덜 말하고 덜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됐다. 가끔은 결심을 잊은 채 관성으로 '살 빠졌다, 예뻐졌다'는 인사를 건네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만나서 너무 좋다'라고 말한다. 노화가 시작되는 내 몸 어딘가를 보며, '여전히 활발히 기능해 줘서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본다.



청년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 힘듦에서 외모 강박의 문제는 자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화가 시작되는 중장년들도 힘들다고 한다. 그 힘듦에서 안티에이징과의 사투는 덜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겪게 될 삶의 고난의 무게가, 외모 하나 덜 언급함으로써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뭉뚝한 코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0.01mm도 깎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하루라도 외모에 대해 덜 말하고 덜 생각해 본다.



내 아이가 자신의 몸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정의하기를, 우리는 어떤 정답에 의해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그러면 이 실험은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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