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일, 작명, 돌잡이 없는 육아

미신으로부터 단단해지고 싶어서

by 애기곰

*지극히 개인 성향에 의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비판의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시험 날이면 미역국 먹기가 싫었다. 집안 누군가의 생일과 겹치는 날에도, 시험을 보는 날이면 미역국으로부터 나를 절대 사수해야만 했다. 어쩌다가 미역국이 '미끄러진다'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는 날 일부러 미역국을 끓이기도 한다. 작은 우연에 흔들렸던 마음이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내 이름을 빨간색으로 쓴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그러면 큰일 난다고 얼른 지우라고 성화였다. 'Why can't I write my name in red?'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연하게 물었더니, '미국에서는 안 그러나 봐.'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아이들이 찜찜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빨간 내 이름을 지우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죽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다:) *



임신을 하고 첫 출산을 앞두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출산 일을 고민하는 것을 봤다. 아이에게 줄 첫 선물로 좋은 날을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일 것이다. 부모 될 예비 엄마 아빠는 택일에 큰 뜻을 두지 않더라도, 집안 어른이 택일을 받아오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 아이에게 줄 좋은 선물을 마다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날이 좋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는, 더욱더 그날 낳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인 것 같다.



지인이 셋째를 낳았다고 연락이 왔다. 출산 전, 셋째 아이 이름에 대해 통화했던 기억이 있어서 아기 이름을 물었는데, 그 이름으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명소에서 그 이름이 안 좋다며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작명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작명소에서 지어준 이름은 학교에서도 매년 수없이 마주한 아이 이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엄마로서 안 좋다는 이름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어주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돌잔치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파트가 돌잡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조카들의 돌잡이를 재미있게 지켜봤고, 돌잔치를 한다면 당연히 돌잡이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돌잡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돌잡이에는 아이를 향한 부모의 '기대'가 들어가 있는데, 부모의 기대를 배제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이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 속에서 자라온 남편이기에 그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택일, 작명, 돌잡이와 무관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생략하며 '힘 빼는 육아'를 연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받아온 좋은 날이 아닌, 내가 아이를 낳는 날이 좋은 날일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아이의 이름을 짓는 부부만의 서사가 있었으면 했다. 아이의 성취를 향한 기대보다는 존재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사실 이 글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슬며시 부모의 욕심이 고개를 들 때, 기대가 싹트려 할 때,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고자 기록해 두는 글이다. 아이들의 시험 날, 미역국을 다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진시황 때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너무나 귀한 색이었서 왕만 쓸 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왕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왕을 모욕하거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고, 진시황이 다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 정재승 <열 두 발자국>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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