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무직이 내 망함이 아니듯

육아, 개체 분리의 작업

by 애기곰

지난 10년간 남편이 무슨 일 하냐는 물음에 다양하게 답했다. 때로는 공부 중, 때로는 취업 준비 중, 때로는 대학원생, 그리고 최근에는 육아 중이라고 했다. 결혼 14년 중 남편이 직장에 다닌 건 4년 정도다.


<백수 남편 10년 부양기>를 기록하고 싶어서 그간의 심경을 브런치와 블로그에 종종 남긴다. 이 시절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환희를 잊지 않고 싶어서다. 우리 부부는 종종 '이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다부져진 것 같다. 서로에 대한 마음도, 삶에 대한 생각도 이 시간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남편이 무직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나는 주변으로부터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누군가는 인재가 아깝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런 건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공부하면 큰일 난다고 겁을 주기도 했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 거냐는 걱정 어린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런 소리를 듣는 동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화려했다. 남편과 같은 공부를 했던 누군가는 단박에 시험을 통과해 안정을 찾았다. 남편이 준비했던 자격증 중 하나를 소지한 사람과 결혼한 친구도 있었다. 남편 주재원으로 해외에 간다는 지인 소식도 들렸다.


남들의 화려한 삶 앞에서 많이 무너지곤 했다. 분명히 나와 비슷했던 친구들이었는데, 남편의 거처로 인해 우리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냐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직장에서 받는 압력이 거세질 때는, 사직서를 감히 디밀 수 없는 그 옛날 가장의 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시간이 나를 연단했다. 끝끝내 직장에서 버텨냈고, 내 힘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남편이 안정을 찾으면 하겠다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남편에게 온 인생을 의지했음을. '취집'을 꿈꿔왔음을. 남편의 성취를 바라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음을.


나의 속물적인 내면을 발견한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원래 사람이 다 이런 거라고 넘어가기에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오물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한 숟가락씩 오물을 퍼낸다는 마음으로 내 할 일을 하고 있다. 이는 남편의 성취를 내 성취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또한 남편의 무직이 내 '인생망'이 아니라는 격려다.






박혜윤 <도시인의 월든>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엄마는 너의 성공에 기뻐하지 않는 만큼 너의 실패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한 거야. 네가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해도 위로를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아예 위로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야. 너와 그런 관계를 맺고 싶어.


너는 지금과 다른 무엇이 될 필요가 없어. 엄마는 너의 성적이나 합격, 불합격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 따라 변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너 자체가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어. 네가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건 네 존재 자체로 엄마가 기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남편이 쌍둥이 육아 2년을 무사히 마치고, 이력서를 140군데 썼다. 8곳에서 면접 연락을 받았고, 딱 한 곳에서 최종 합격을 했다. 드디어 '백수 남편 10년 부양기'를 쓸 수 없는 날이 온 것인가, 기쁜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남편 존재 자체로 기쁜 것에 비하면 사소한 기쁨이었다.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정말 그가 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상황을 구구절절 쓰는 이유는, 나와 남편의 성취를 별개로 보는 것이 나와 자식의 성취를 별개로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키가 큰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명문대에 입학하고 큰돈을 버는 것이 부모의 성취가 되는 세상에서 부모 된 우리는 참 바쁘다. 아이의 잘 됨이 부모의 기쁨이라는 공식에 오늘도 교육 정보를 부단히 모은다.



가족의 성취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실패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삶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성패에 상관없이 존재를 기뻐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다른 집의 성패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 집 가족 구성원의 성패로 누군가의 가치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싶어졌다. 오롯이 그 사람 하나 자체를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0년의 연습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남편과 아이는 또 다를지도 모른다. 아이만큼 동일시되는 사람이 없기에 20년은 걸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개체 분리의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앞으로 엄마로 사는 20년이 딱 적당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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