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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카야 Nov 22. 2023

이혼은 타이밍이다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노래한다고 방송국을 기웃거리고 있던

얼굴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24살 남편과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우리 엄마는 입에 거품을 물며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며

우리가 일 년 안에 이혼은 안 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며 온갖 악담을 퍼부었었다

그런 엄마가 무안하게 우리는 30년 가까이 아직까지 이혼도 안 하고 잘(은 아니고) 살고 있다

정작 그렇게 막말을 해댔던 엄마가 아빠와 그 후 몇 해 안돼 이혼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이혼을 안 하고 살고 잇는 것은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도 

남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속궁합이 너무 잘 맞아서도 아니다

단지 몇 번의 이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동갑인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나 배려 같은 부부간의 덕목 이런 것들이 진짜 눈곱만큼도 없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이겨먹지 못해 안달이다

상대방이 너무 웃긴 얘기를 해도 웃으면 진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고

재미로 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도 상대방이 좋다는 아이 말에 화가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여러 번이다. 


한 번은 왜 싸웠는지는 모르지만 밤새도록 박 터지게 싸우고 이젠 절대 같이 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새벽에 친정에 시댁에 이혼한다고  알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법원에 가기로 하고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너무 늦게 일어나 부랴 부랴 법원에 갔다

이미 오전 접수는 끝났다고 오후에 다시 오라 해서 

따로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마지막으로 밥이나 먹자며

싫다는 나를 끌고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기어이 나에게 따뜻한 국밥을 먹이는 거다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해서인지 나를 위해 숟가락을 쥐어주는 남편에 코 끝이 찡해졌고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이혼 위기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때 조금만 일찍 일어나 오전 접수 시간 안에만 도착했어도,

법원 접수 직원이 친절을 베풀어 오전에 접수만 받아줬어도

단언컨대 우리는 지금 남남이 되어있을 것이다


첫 아이가 돌도 되기 난 남편과 크게 싸우고 난 아들까지 두고 집을 나와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몇 달 별거를 하다 그러고 있는 딸이 너무 안타까웠는지 

아빠가 고모가 있는 캐나다로 가라며 내 의사와 상관없이 유학 수속을 해버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출국하기 며칠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찾아와 울며 비는데 

마음이 약해진 나는 바보같이 또다시 절호의(?) 타이밍을 놓쳤다.

그때 남편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며칠만 늦게 찾아왔어도

아마 난 자식을 버린 매정한 엄마로 우린 서로 원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쩜 브래드 피트 비슷하게 생긴 외쿡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지도...


난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도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수없이 이혼을 생각하고도 우리가 여기까지   있었던  인내와   그딴  보다 

나의 우유부단함과 남편의 질질 끄는 성격 탓에 시기를  놓친 것뿐이다


내가 이혼 안 한 게 다행이라고도

이혼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은 이런 둔함과 어리석음이

그러한 순간들을 넘길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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