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편이 예전 첫사랑과 몇 달 동안 SNS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여서 첫사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너무 좋아했지만 자기랑 너무 차이가 나는 좋은 집안의 딸이라
어쩔 수 없이 혜어졌다고 술 먹고 질질 짠 기억이 있다.
그럼 난 딱 지 수준이란 얘긴가? 은근 기분 나빴지만 뭐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암튼 서로에게 애틋한 그들이
몇 달 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남편의 첫사랑은 이혼을 하고 외국에서 아들을 키우며 혼자 살고 있었다
내가 그때 충격을 받았던 건 남편이
그 여자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을 힘들어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우리 남편은 무엇을 해주고 싶었을까
정말 할 수만 있었다면 그 여자한테 가고 싶었을까
절대 고상하지 못한 난 당연 그 여자한테 전화를 해
다시 우리 남편과 연락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결국 그 일은 세 사람 모두에게 생각하기조차 싫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그 후로 그 여자가 살고 있는 그곳은 우리 부부에게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나의 첫사랑은 대학교 과선배였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를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날부터 나는 일 년 가까이 혼자서 짝사랑했다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선배를 짝사랑하며 써온 일 년간의 일기장을 주며 고백을 했고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그 선배는 군대에 가고 그 사이 난 졸업을 하고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나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더 예쁘게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난 그때 정말이지 너무 어리고 순진해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선배의 의미 없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혼자 멍청한 짓을 했었더랬다
그래도 난 그 기억이 소중하다
너무도 어설퍼서 더 간직하고 싶다
가끔은 그 선배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그뿐
난 나의 소중한 기억에 어떠한 것도 더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때의 순진했던 나로
내가 기억하는 멋진 선배로
아주 많이 설레었던 첫사랑으로 그냥 기억하고 싶다
가끔 남편에게 미안하다
내 첫사랑의 추억이 소중한 만큼 남편의 것도 그랬을 텐데
남편은 이제 첫사랑을 떠올리면 그때의 안 좋은 기억 또한 함께 생각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첫사랑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지 못한
남편의 잘못이 크지만...
예전 책에서 어떤 노부인이 80대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시들어가는 남편에게 설렘을 준 그 여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는 글을 읽었다
그때는 참 이상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난 그때 남편의 첫사랑을 모른 척 지켜주는 게 맞았을까..
그게 혹시 진정한 사랑일까
난 절대 아니 적어도 아직은 그런 사랑은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나에게 다시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나의 바닥을 보여주는 대신
남편을 그 여자에게 보낼 것이다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