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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카야 Dec 10. 2023

내가 나이 50에 공부하는 이유

대학교 때도 징그럽게 공부 안 해 일 년이나 더 다니고 겨우 졸업한 내가

50이 넘은 나이에 공부하는 이유...


10년이나 이를 악물고 버티던 직장을 욱하는 마음에 하루아침에 그만둔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후회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들이 수백 가지였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 모든 일이 생각만큼 신나지 않았다

회사를 안 다니면 매일이 주말 같을 줄 알았지만 

주말은 그냥 금요일 다음날과 월요일 전날일 뿐 더 이상 예전의 그 주말이 아니었다

애들 학교 보내고 우아하게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엄마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몇 번 해보니 돈도 너무 아깝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않았다

매일 똑같은 엄마들이랑 똑같은 주제로 같은 시간에 만나 수다 떠는 일이 익숙지 않아서 인지

시간이 갈수록 지겨워졌고 생산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워졌다

집안일은 잘하지도 못하지만 잘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동안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소 닭 보듯 하던 남편과도 

내가 일을 안 하고 집에 있으면서 남편을 잘 보필하면 없던 사랑이 생길 줄았았지만

보는 시간이 느니  싸움 횟수만 늘었다

이젠 돈을 안 번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돈을 좀 아껴 쓰라는 남편의 지나가는 한 마디에도 

발끈해 니가 돈을 더 벌면 되지 왜 나보고 아껴 쓰라고 스트레스를 주냐며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그만둘 거면 진즉에 그만두지 애들 다 키워놓고 왜 이제 와서 일을 그만두냐는 시어머니의 말이

자기 아들 힘들까 봐 그러는 거 같아 너무나 서운하고 화가 나 몇 달 동안 시어머니 전화도 받지 않았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두 아이들은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엄마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했고

혼내기라도 하면 그동안 엄마가 해준 게 뭐냐는 가슴에 멍이 드는 말들을 하곤 했다

줄어든 수입도 문제지만 넘쳐나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면서

나에 대한 실망이 커지며 자존감이 떨어져 무기력해지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40대에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상처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평생 일을 계속하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전문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언젠가는 평생 일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50이 되어서야 나는 캐나다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만 하라는데도 죽어라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누구 하나 공부하라는 사람 없는데도 기어이 공부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공부는 본인이 하고자 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늦은 때는 없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인생에 딱 알맞은 때는 없었다 항상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다고 느꼈다

20대에는 아이들 때문에

30대는 돈이 없어서 

40대는 이젠 너무 늦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50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지금 안 하면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지금 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참 상대적인 거라 40대가 보기엔 지금 내 나이 50살은 인생을 다 산 나이이지만

60대가 보기엔 도전하기엔 아직 늙지 않은 부러운 나이일 것이다.

늦은 나이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아이들이 웬만큼 자라 고나니 살아온 시간들이 허무해지고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어제인 날들이 이어진다

그나마 공부를 하면 매일 할 일이 있고 막연히 늙어만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특히 시험 다음날이나 과제를 힘들게 마무리하고 제출하고 나면

똑같은 날이라도 훨씬 행복하고 활기가 생긴다

시험 때는 벽을 보는 것만도 흥미롭다는 말이 있듯이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들이 유독 그립고 소중하고

시험 끝난 다음날은 아침 일어날 때부터 기분이 좋고 뭘 해도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뭘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 들도 많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지금 해야 할 공부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어렵고 긴 여정이라 끝까지 해낼 자신은 솔직히 없지만

그리고 문득문득 이 나이에 뭔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공부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만약 공부를 끝까지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일도 잘 해낼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생겼다


나이를 먹으면서 뒤돌아보면

실패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세월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래도 내가 나이 50에 아직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아직도 무언가 되고 싶고

내가 아직도 무언가 될 것만 같고

아직도.... 주책없이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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