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제삼자 후견인이라는 선택

가족이 물러난 자리에 제도가 들어오다

by 온지정원

법원의 봉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그 안에서 꺼낸 몇 장의 종이, 그 위에 찍힌
‘제삼자 후견인 지정’이라는 문구는
수년간 이어지던 가족의 소란을 조용히 멈춰 세웠다.


어머니의 딸이거나, 누군가의 누이로 불리던 시절은
그날로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법정의 기록부 위에서 우리는 이름을 잃고
사건 관계인 1, 2, 3이라는 숫자로 치환되었다.
법원은 누구의 감정도 다독이지 않았다.
다만 서로에게 휘두를 수 있는 책임의 범위를
차분하게 나누어 놓았을 뿐이다.


서류 속에서 나는 ‘관계인’으로 불렸다.
청구인도, 참가인도 아니었다.
의견을 낼 수는 있었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 위치는 오히려 나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나는 가족 중 누구도 후견인이 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제삼자 지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문장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대신해 결정하고, 관리하고,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가족이 서는 순간, 관계는 필연적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법정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장소였고,
제도는 그것을 문장으로 고정했다.


후견인으로 제삼자가 지정되던 날,
판사의 결정문은 담담했다.
이유는 충분히 정리되어 있었고,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안도도 분노도 아니었다.
관계가 마침내 제도의 경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확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 이후,
우리는 처음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돈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절차를 다투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저 늙고 병든 한 여성을 바라보는
각자의 위치로.


법원은 감정 이후를 정리해 주었다.
말해지지 않은 사정들은 기록되지 않았고,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다.
그 질서가 서운하면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제삼자 후견인이라는 차가운 장치는
가족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소모를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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