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진단서 한 줄에 담기지 않는 시간

치매 판정의 문장 뒤에 숨은 7년의 단절과 기억

by 온지정원

심문기일 법정에서, 판사는 화면에 띄운 진단서를 통해 어머니가 치매 상태라는 점을 나에게 직접 알렸다.
그 설명은 길지 않았고, 판단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보호자도, 청구인도 아닌 ‘관계인’의 위치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년간 단절된 시간 동안 서류 속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사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상태에 대한 설명은 차분했고, 법정은 조용했다.
판사는 진단서의 내용을 짚으며 인지 기능과 판단 능력의 저하를 설명했고, 나는 화면을 바라본 채 그 말을 들었다.
그 순간까지도 이 모든 것이 여전히 기록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개입될 틈은 없었고, 질문과 확인만이 이어졌다.

이후 열람이 가능해진 USB에는 여러 첨부 서류가 저장되어 있었다.
진단서, 생활 상태 평가표, 의학적 소견서, 재산 관련 문서들.
모두 법원이 판단을 위해 요구한 최소한의 기록이었다.
문서들은 간결했고, 필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밀도까지는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파일을 하나씩 확인하며, 나는 7년간 단절되어 있던 시간을 조심스럽게 되짚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한 차례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 혼자서 거동이 어려워졌다.
일상생활 전반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으며, 인지 기능 역시 점차 저하되고 있었다.
기록 속 어머니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분명히 생존해 있었다.
문서는 그 사실만을 정확히 남기고 있었다.

법정의 문장에는 감정이 기록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후회나 미안함, 관계의 균열이나 단절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판단에 필요한 것은 오직 현재의 상태와 관리 가능성, 그리고 위험 요소뿐이다.
나는 그 문서들을 읽으며, 이해하려 애썼다.
연민이나 비난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사실의 범위 안에서.

법정에서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 본인’으로 호명되었다.
이름 대신 지위가 불렸고, 삶 대신 상태가 설명되었다.
나는 감정을 가진 딸이 아니라, 기록을 확인하는 관계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차이는 분명했고, 그 거리 또한 명확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판단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진단서 한 줄로는 담기지 않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확인하는 방식이 법정에서는 오직 기록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었다.
문서와 문서 사이, 판단과 판단 사이에 남겨진 공백 역시 기록의 일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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