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마깡과 쪼글쪼글한 손

by 온지정원

나의 기억은 친가인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어느 시장통의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중반, 아마도 내 나이 네 살 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수줍음이 심한 아이였다. 집 밖은 늘 미지의 공포로 가득해서, 언니나 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문밖을 나설 용기가 없던 아이였다. 수줍음 많은 유년시절의 몇 가지 기억 중 한 가지는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손등이 쪼글쪼글했던 나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시장에 가며 내 손을 꽉 쥐고 점방으로 향하셨다. 그때 사주셨던 고구마깡의 달콤한 맛은 지금도 혀끝에 생생하다. 갑자기 내린 비에 시장통 점방 한쪽에서 낮잠을 자다 그만 소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이제 큰일 났다' 싶고 부끄러웠다. 무서운 엄마 얼굴이 떠올라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사실 이제는 할머니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쪼글쪼글한 손으로 나를 다독여주던 그 찰나의 온기가, 수줍음 많던 어린 나를 지탱해 준 첫 번째 다정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의 변두리 문방구 한편에 딸린 사글세 단칸방에 살았다. 번듯한 집이라기보다 삶의 터전 한 귀퉁이에 얹혀사는 모양새였다. 화장실조차 네댓 가구의 임차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라, 어린 나는 화장실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볼일을 보곤 했다. 부끄러움보다 앞섰던 건 그저 그게 일상이었던 시절의 풍경이었다.

​방벽 한쪽에는 내가 씹던 껌이 붙어 있었다. 내일 또 씹기 위해, 혹은 그 단맛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붙여두었던 보물 1호. 흙바닥에 떨어진 먹을거리를 주워 먹어도 배앓이 한번 안 하던 강인함과, 길거리에서 파는 삼각형 모양의 계란 입힌 식빵 튀김을 보며 침을 삼키던 갈망이 그 좁은 문방구 방 안에 공존했다.

​그 무렵,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을 간절히 바랐던 엄마의 산부인과 검진을 따라나섰던 길. 엄마와 나는 물냉면 한 그릇을 나눠먹었다. 생전 처음 맛본 냉면의 그 쫄깃한 면발과 차가운 국물 맛은, 훗날 태어난 네 살 터울 여동생의 분홍빛 얼굴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16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의 존재가 내 유년의 평화를 어떻게 흔들어놓을지. 문방구 금고에 손을 대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던 언니 때문에, 집순이인 내가 왜 같이 매를 맞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 문방구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던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운 연탄집게의 기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내 인생의 첫 페이지는 달콤한 고구마깡과 눅눅한 시장통의 냄새,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폭풍 전야의 고요함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