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년생 그리고 연좌제

by 온지정원

16개월 차이. 우리는 한 살 터울의 연년생 자매였다. 하지만 성격만큼은 자석의 양 끝처럼 달랐다. 나는 언니나 엄마 없이는 집 밖도 안 나가는 수줍음 많은 아이였지만, 언니는 동네가 좁다며 사방팔방을 누비는 아이였다.

​언니는 늘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서툴렀다. 언니는 엄마 몰래 문방구에 구비된 학습도구를 박스째로 들고나가 학교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업의 밑천을 아낌없이 뿌린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영악했다. 물건을 받을 때만 언니를 띄워줄 뿐, 뒤에서는 이용만 하거나 물건을 받지 못한 친구들의 고자질로 엄마 귀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결국 그 끝은 언제나 매질이었다. 언니는 잘못을 지적당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왜 때리냐"며 악을 바락바락 쓰고 도망 다니다 엄마를 더 화나게 해서 매를 벌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즐겁던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여동생은 너무 어려서 제외됐고, 고작 한 살 터울인 나는 매번 언니와 세트로 묶여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가혹한 ‘연좌제’였다.

​언니는 맞으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이라도 다녔지, 겁 많은 나는 벌벌 떨며 약속된 매를 그대로 다 맞고 숨죽여 울어야 했다. 언니가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들어와 엄마를 출동시키고, 그 때문에 언니 친구들이 만만한 나까지 괴롭히려 들면 우리 반 친구들이 도와주는 민망한 상황이 반복됐다.

​절정은 금고 사건이었다. 국민학교 저학년인 언니가 문방구 금고통에 손을 댄 것이다. 그 돈으로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느라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던 날, 집안의 공기는 살얼음판이었다. 결국 밤늦게 돌아온 언니와 나는 나란히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나는 그냥 문방구 구석에서 책 읽고 있었을 뿐인데.

밖으로 나도는 언니 때문에 집순이인 내가 같이 벌을 서고, 같이 매를 맞아야 했던 그 시절.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소심하고 겁 많은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공포로 변했던 어느 추운 겨울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가 연탄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날의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오른손 끝에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2. 물냉면의 냉기와 분홍빛 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