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슴에 꽂은 가제 손수건과 늘어난 고무줄

by 온지정원

국민학교 4학년, 단독주택 미니 2층집으로 이사하며 사글세 단칸방을 벗어나기 전까지 나의 세계는 문방구와 학교라는 좁은 굴레 안에 갇혀 있었다. 특히 학교는 나 같은 아이에게는 매일이 거대한 도전이자 공포였다.

​나는 유난히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였다. 국민학교입학식 날, 다른 아이들이 설렘으로 들떠 있을 때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시절 아이들이 다 그랬듯, 가슴팍에는 옷핀으로 꽂은 가제 손수건이 있었다.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던 그 하얀 손수건은 수줍음 많은 내 영혼의 안전장치와도 같았다.

​나에게 '변화'는 곧 공포였다. 소풍날처럼 일정이 바뀌는 날이면 도저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문 근처를 서성이다 줄을 맞춰 나오는 친구들을 발견하고서야 슬그머니 대열에 합류하곤 했다.

​내외하는 성격은 친구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개학 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해 한참을 겉돌았고, 1년 내내 집을 오가던 절친과도 반이 바뀌면 부끄러움 때문에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져 버린 인연들. 수줍음은 때로 어린 나에게 절연(絶緣)이라는 쓸쓸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국민학교 2학년,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던 시절에는 그 혼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단체 예방접종이 있던 날의 공포는 또 어떠했나. '불주사'라 불리던 그 뜨거운 주삿바늘이 무서워 끝내 도망쳤던 나는, 언니와 여동생 어깨엔 다 있는 그 흔한 흉터 하나가 없다. 내 어깨의 매끈한 살결은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겁과 수줍음의 증거인 셈이다.

​문방구 집 딸이었지만, 내 소지품은 늘 문방구에서 가장 안 팔리는 '재고'들의 차지였다.

"새 물건은 손님에게 팔아야 한다"는 엄마의 철칙은 엄격했다.


체육대회 날, 엄마가 내어준 낡은 체육복은 허리 고무줄이 다 삭아 느슨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바지가 흘러내려 한 손으로 허리춤을 꼭 붙잡고 뛰어야 했던 그 민망한 질주를 엄마는 아실까. 책가방 역시 유행이 한참 지난, 잠금 걸쇠에 녹이 슬어 뻑뻑한 것뿐이었다.

​유일한 낙이었던 마루인형 놀이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준 두어 개의 인형 얼굴에 철없는 여동생이 모나미 검정 볼펜으로 가차 없이 낙서를 해놓았을 때, 나는 인형을 새로 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 했다. 엉망이 된 인형을 보며 속으로만 앓던 아이.

낡은 가방과 고무줄 늘어난 체육복을 입고, 수줍음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것이 내 유년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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