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4학년, 단독주택 미니 2층집으로 이사하며 사글세 단칸방을 벗어나기 전까지 나의 세계는 문방구와 학교라는 좁은 굴레 안에 갇혀 있었다. 특히 학교는 나 같은 아이에게는 매일이 거대한 도전이자 공포였다.
나는 유난히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였다. 국민학교입학식 날, 다른 아이들이 설렘으로 들떠 있을 때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시절 아이들이 다 그랬듯, 가슴팍에는 옷핀으로 꽂은 가제 손수건이 있었다.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던 그 하얀 손수건은 수줍음 많은 내 영혼의 안전장치와도 같았다.
나에게 '변화'는 곧 공포였다. 소풍날처럼 일정이 바뀌는 날이면 도저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문 근처를 서성이다 줄을 맞춰 나오는 친구들을 발견하고서야 슬그머니 대열에 합류하곤 했다.
내외하는 성격은 친구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개학 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해 한참을 겉돌았고, 1년 내내 집을 오가던 절친과도 반이 바뀌면 부끄러움 때문에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져 버린 인연들. 수줍음은 때로 어린 나에게 절연(絶緣)이라는 쓸쓸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국민학교 2학년,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던 시절에는 그 혼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단체 예방접종이 있던 날의 공포는 또 어떠했나. '불주사'라 불리던 그 뜨거운 주삿바늘이 무서워 끝내 도망쳤던 나는, 언니와 여동생 어깨엔 다 있는 그 흔한 흉터 하나가 없다. 내 어깨의 매끈한 살결은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겁과 수줍음의 증거인 셈이다.
문방구 집 딸이었지만, 내 소지품은 늘 문방구에서 가장 안 팔리는 '재고'들의 차지였다.
"새 물건은 손님에게 팔아야 한다"는 엄마의 철칙은 엄격했다.
체육대회 날, 엄마가 내어준 낡은 체육복은 허리 고무줄이 다 삭아 느슨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바지가 흘러내려 한 손으로 허리춤을 꼭 붙잡고 뛰어야 했던 그 민망한 질주를 엄마는 아실까. 책가방 역시 유행이 한참 지난, 잠금 걸쇠에 녹이 슬어 뻑뻑한 것뿐이었다.
유일한 낙이었던 마루인형 놀이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준 두어 개의 인형 얼굴에 철없는 여동생이 모나미 검정 볼펜으로 가차 없이 낙서를 해놓았을 때, 나는 인형을 새로 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 했다. 엉망이 된 인형을 보며 속으로만 앓던 아이.
낡은 가방과 고무줄 늘어난 체육복을 입고, 수줍음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것이 내 유년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