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문방구 감옥과 답지를 찢는 자매들

by 온지정원

크면서 집 밖의 세상은 조금씩 복잡해졌다.

여자아이들 특유의 무리 짓기, 친구 집 놀러 가기, 그리고 셋 이상 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돌아가며 따돌리기'까지.

가해자와 피해자를 오가는 그 치열한 정치질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하지만 그 정글보다 무서운 건 집안에 세워진 '문방구 감옥'이었다.

​엄마는 언니가 국민학교 입학하자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나도 보내달라고 며칠을 징징댄 끝에 언니가 다닌 지 한 달째 되던 날, 엄마 손을 잡고 학원에 갔다.

선생님은 나를 피아노 의자에 앉히더니 물었다. "도가 어디니?" 나는 망설임 없이 건반을 눌렀다. 선생님은 엄마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동생은 한 번에 아는데, 언니는 한 달이 되도록 도를 몰라요. 못 가르치겠어요."

그날 이후, 내게 피아노를 배울 기회는 영원히 박탈되었다. 언니가 못한다는 이유로 나까지 묶여 취급당한 것이다. 억울해하는 내 입을 막으려 엄마가 보내준 건 딱 한 달짜리 미술학원이 전부였다.

엄마는 무당집을 드나들며 "우리 첫째가 머리는 좋은데 안 해서 그래"라는 말을 믿고 싶어 했지만, 그 기대는 고스란히 언니와 나를 짝지어 주판학원과 산수 그룹수업으로 몰아넣는 채찍이 되었다.

​교육받지 못한 부모의 한(恨)은 독이 되어 자식들에게 쏟아졌다.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의 못 배운 설움을 우리 자매가 씻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방식은 강압적이고 거칠었다.

언니가 피아노 학원에서 퇴짜를 맞자, 엄마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우리를 문제집 더미 속에 가뒀다.

​문방구에 널린 게 문제집이었으니 우리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새것은 팔아야 한다"는 철칙 아래 재고 체육복과 낡은 가방을 주던 엄마였지만, 공부에서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엄격했다.

명절 대목에 가게 문을 열고 부부싸움을 벌이던 부모님은, 우리에게 산더미 같은 문제집 과제를 내주었다.

​사실 나는 언니와 달리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나만의 수식으로 문제를 풀어내곤 했지만, 엄마가 원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복종'에 가까운 학습량이었다.

결국 연년생인 언니와 나는 살아남기 위해 공모자가 되었다. 문제집 뒷장의 답지를 찢어내 서로 채점해 주고, 성적표 숫자를 고치는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며 그 지옥 같은 문방구 시절을 견뎠다.

​부모님의 한이 서린 교육열은 우리에게 지식이 아닌, 억울함과 생존 본능을 먼저 가르쳤다. 사글세 단칸방의 습한 공기 속에서 우리 자매는 서로의 답지를 훔쳐보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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