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문방구에는 아빠의 고단한 지혜가 담긴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 가게 입구안쪽, 연탄 두 개가 딱 맞게 들어가는 아궁이였다.
엄마는 그 위에 걸터앉아 가게 밖 진열대를 살피며 손님을 맞았다. 추운 겨울, 엄마가 연탄을 새로 갈아 끼우면 금세 훈훈한 온기로 차올랐다.
언니와 나는 그 옆에 붙어 앉아 군용 모포를 덮고 갓 구운 고구마를 까먹었다. 그 달콤하고 구수한 맛은 사글세 단칸방의 눅눅한 공기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에 단칸방은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아빠는 궁여지책으로 가게 천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다락을 만들었다.
성인은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천장이 낮았지만, 단칸방 입구의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그곳은 언니와 나만의 요새가 되었다.
백열등의 노란 조명이 일렁이던 그 낮은 천장 아래에서 우리는 잠을 잤고, 숙제를 했으며, 가끔은 서로의 답지를 찢어 공유했다. 노란 불빛은 아늑했지만 동시에 답답했다. 내 유년의 시야는 늘 그 낮은 천장에 가로막혀 있었다.
여동생은 골목에서 소문난 귀염둥이였다. 수줍음 많고 소심했던 나는 그 화려한 자매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예쁨을 받으려 발버둥 치던 둘째였다.
취학 전, 콩나물이나 두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받으면 인정받았다는 기쁨에 신이 나서 달렸다. 그러다 슈퍼 앞 나무의자에 걸려 넘어져 우측 콧방울이 크게 찢어졌다. 대여섯 바늘을 꿰매야 했던 그날의 통증보다 더 아팠던 건 엄마의 태도였다.
엄마는 늘 언니의 칭찬만 했다. 일곱 살 때 단 한 번 아궁이에 냄비 밥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늘어놓으며 언니를 대견해했다.
비록 밥은 다 탔을지언정 어린 맏이가 기특하다는 엄마의 말은 나에게 편애로 들렸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가족을 위해 대견한 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것은 엄마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결국 내 나이 열한 살, 4학년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나는 다락방 창문에 매달려 길 건너 ‘부자 복덕방’ 앞에 앉아있는 엄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복덕방 아줌마는 목사 남편을 둔 유복한 집안의 안주인이었고 엄마의 절친이었다. 두 사람이 하하 호호 웃으며 나누는 평화로운 대화가 창 너머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나는 허리벨트를 가져와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들키기 위함도 아니었다. 오직 나만이 아는 침묵 속에서 숨이 막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엄마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막함, 나를 봐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 혹은 이 노란 다락방에서 영영 사라지고 싶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었을까.
11살 소녀가 감당하기에 문방구의 공기는 너무나 서늘하고도 무거웠다. 그날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직 나만의 비밀로 그 낮은 다락 천장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