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석조(石造)의 위용, 미니 이층 집의 교차로

by 온지정원

그 무거웠던 사글세 단칸방의 계절이 비로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의 겨울, 우리는 드디어 습한 그림자를 벗어나 차갑고도 단단한 질감이 돋보이는 돌벽의 단독주택, 미니 이층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은 단순히 주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이 한 단계 격상되었음을 알리는 눈부신 증명서였다.


​그러나 시작은 여전히 누추한 현실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집을 비워주기로 했던 임차인과 이사 날짜가 어긋나는 바람에, 우리 다섯 식구는 작은 방 하나에 온 집안의 짐을 몰아넣고 몇 개월간의 낯선 동거를 시작해야 했다.

문방구를 정리하며 챙겨 온 문구류들을 이웃의 정이라는 명목으로 서슴없이 받아 가면서도, 정작 한 지붕 아래 섞여 살게 된 우리 가족에게 눈치를 보내던 그들의 이름은 지금도 내 기억의 서랍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새집을 향한 동경은 그렇게 짐더미 사이에서 조금씩 빛이 바래갔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가족의 풍경을 급격히 재편했다. 유치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채 자라난 우리 자매와는 달리, 막내 여동생은 유치원에 입성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동생은 그곳에서 피아노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집에는 이사와 함께 새로 구입한 검정 영창피아노가 들어왔다. 거실 한편에서 자태를 뽐내던 그 피아노는 나에게는 넘볼 수 없는 성역이자 상처였다.

언니가 '도'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아노 의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나의 해묵은 갈증은, 막내의 작은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맑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찔러왔다.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건반의 무게가 막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 흐르는 것을 보며, 나는 돌벽 집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둘째의 서러움을 다시금 곱씹어야 했다.


​엄마의 일상에도 화사한 균열이 생겼다. 여동생의 유치원 원장님이 오후마다 열어주는 에어로빅 교습에 마음을 뺏긴 것이다.

땀을 흘리며 생동감을 확인하는 엄마의 변화를 아빠는 못마땅해했고, 집안에는 다시금 날카로운 고성이 오갔다.

엄마는 복덕방을 드나들며 부동산 투자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여동생을 낳고 무거운 들통을 들다 다친 허리디스크 때문에 침술원과 한약방을 전전하면서도, 복덕방 모포 위에서 화투를 치는 시간만큼은 모든 육체적 통증을 잊은 듯 평온한 몰입의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아빠는 영등포 로터리 상가에 문구 도매점을 내고 본격적으로 삶의 반경을 넓혔다.

산더미처럼 쌓인 전과와 실내화, 찰흙 덩어리들이 즐비한 그곳은 아빠가 가족의 내일을 일궈가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다.


​좁디좁은 다락방을 벗어나 꿈에 그리던 돌벽의 미니 이층 집으로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상처와 욕망을 품은 채 조금씩 엇갈리고 있었다.


엄마의 환한 웃음과 내 목을 죄던 허리벨트의 감각. 그것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나는 고학년이라는 성장의 문턱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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