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탄 트럭의 무게와 수치심

by 온지정원

미니 이층 집의 주방 바닥에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마치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미니버전처럼 마루판을 들어 올리면 어두운 돌계단이 나타났고, 그 길은 지하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탄 트럭이 대문 앞에 산더미처럼 연탄을 쌓아놓고 가면, 그것을 지하실까지 옮기는 것은 오롯이 언니와 나의 몫이었다.


인건비를 아끼려는 엄마의 생활력 앞에 열두 살, 열세 살 딸들의 가녀린 팔뚝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쓰며 연탄을 나르는 일은 우리 자매가 짊어진 가난의 무게였다.

아빠가 ​영등포 로터리의 매장을 접고 집을 창고 삼아 도매업을 이어가게 되면서, 우리 자매의 노동은 더욱 정교해졌다. 신학기나 대목이면 대문 앞에는 연탄 대신 전과, 찰흙, 실내화, 체육복이 쌓였다.


우리는 아빠의 무보수 직원이 되어 물품을 분류하고 주문서를 확인하며 포장했다. 등굣길에는 학교 근처 문구점까지 배달 가방을 들고 가기도 했다. 수줍음 많고 자존심 강했던 나에게 배달 가방은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굴레였다. 친구들을 마주칠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던 그 등굣길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무너진 것은 중학교 입학 후였다. "머리는 좋은데 안 하는 것뿐"이라던 엄마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언니는 전교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아왔다.


급기야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꼴찌들을 모아 만든 '열등반'에 배정되었고, 그곳에서 언니는 반장까지 맡게 되었다. 1학년으로 입학한 내게 우리 반 반장이 다가와 "전체 임원 회의 갔더니 너네 언니가 있더라"며 말을 건넸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언니가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이 전교에 퍼지는 순간, 나까지 싸잡아 무시당할 거라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친구들에게 언니를 포장한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언니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언니 때문에 망신이야! 왜 하필 열등반에서 반장까지 해서 날 창피하게 만들어!"


공부 못하는 건 참아도, 존재를 드러내는 언니의 무신경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언니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우리가 자매가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에게 필터 없는 가시가 되어 가장 아픈 곳만 골라 찌르고 있었다. 돌벽 집의 견고한 침묵 속에서 우리 자매의 사춘기는 그렇게 서로를 상처 내는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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