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약 냄새 진동하던 집

by 온지정원

막내 남동생의 탄생은 우리 집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었기에, 온 가족은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새 생명을 맞이했다. 하지만 환희 뒤에는 부모님의 고된 육체가 남긴 흔적들이 있었다.

심한 허리디스크를 앓던 엄마와 온종일 물품을 나르고 납품하던 아빠는 약의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우리 집에는 사시사철 한약 달이는 냄새가 진동했다. 때로는 늙은 호박 속을 파내 꿀을 가득 채워 찌는 보양식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기도 했다.

우리는 그 코를 찌르는 냄새에 진저리를 치며 입도 대지 않았지만, 훗날 마흔 즈음 만난 한 친구는
“그때 너희 집에서 나던 그 호박즙 냄새가 맛있어 보였어. 나도 한입 얻어먹고 싶더라”며 의외의 기억을 꺼내 놓기도 했다.

우리에겐 부모님의 통증을 억누르는 비릿한 향기였던 것이, 친구에겐 꼭 한번 맛보고 싶은 귀하고 달콤한 간식의 냄새였던 셈이다.

​노산이었던 엄마는 아들을 낳은 포상으로 짧은 병원 생활을 마친 뒤, 고질적인 디스크 치료를 위해 전문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고작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나와 중학생 언니였다. 하필 그해 늦여름은 장마가 기승을 부렸다. 쏟아지는 폭우에 물난리가 나고 급기야 단수까지 선언되었다.

골목길에는 급수차가 올라왔고 세대당 할당된 물은 턱없이 부족했다. 갓 태어난 남동생의 기저귀 빨랫감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평소 같으면 귀찮은 일은 나 몰라라 했을 언니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언니는 동네 언니와 함께 빨랫감을 한가득 들고 관악산 기슭 계곡으로 향했다.
​수돗물이 끊겨버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저귀를 세탁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을까. 놀이 반 노동 반이라 해도, 그 무거운 빨래 보따리를 짊어지고 계곡물에 기저귀를 흔들어 빨아 오던 언니의 뒷모습.

평생 엄마가 "맏이답다"라고 칭찬을 늘어놓을 때마다 코웃음을 쳤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언니를 '맏이답다'라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동생이 백일이 될 때까지 녀석을 전담해서 돌본 것은 나였다. 고물거리는 아기가 너무 예뻐서 나는 틈만 나면 동생을 품에 안고 ‘깨물 깨물’하며 애정을 퍼부었다. 그 과한 사랑이 화근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내 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때 생긴 ‘깨물기’ 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볼 때면 튀어나오는 나만의 독특한 애정 표현이 되었다.

​엄마의 부재와 단수의 고통 속에서도 동생은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 자매는 그렇게 조금 이른 ‘작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벽 집의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한약 냄새와 계곡물에 갓 빤 기저귀 냄새가 뒤섞인, 우리의 열세 살 열네 살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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