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벽 집의 견고하고 매끄러운 외관은 달동네에 살거나 방 한 칸을 임대해 사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단단한 벽 안에서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단한 ‘살림꾼’으로 살아야 했다.
띠동갑 늦둥이 남동생이 태어나자 아홉 살이던 여동생은 빼앗긴 관심에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나는 누구의 사랑을 독차지해 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그 변화마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내게 네 살 어린 여동생은 집안일을 나누어 시킬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보호해야 할 연약한 아이일 뿐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공부’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통제했다. 외출할 때면 안방 문을 걸어 잠가 텔레비전을 못 보게 했다. 우리가 TV 앞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때, 혹은 엄마의 허리 찜질을 도울 때뿐이었다.
연탄아궁이에서 달군 평평한 돌을 쌀포대 종이에 싸고 담요로 겹겹이 덮어 엄마의 허리에 올리는 것이 내 일과였다. 찜질이 끝나고 엄마가 부르면, 나는 자개장롱을 붙잡고 올라가 엄마의 허리를 살살 밟으며 안마를 해야 했다.
그 당시 인기 있던 외계인들이 초록색 피를 흘리는 주말 외화 시리즈 <V>를 보기 위해 식사 시간을 맞췄다. 그 찰나의 시청 시간만이 내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휴식이었다.
엄마는 나를 일꾼으로 부리면서도 입버릇처럼 나를 깎아내렸다. 동네 아줌마들이 집안일을 돕는 나를 기특해하며 칭찬이라도 하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꼴 보기 싫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네 할머니를 닮아서 게으르고 주전부리나 좋아한다”는 말로 나를 내동댕이쳤다.
집안의 평화는 늘 언니에 의해 위태롭게 흔들렸다.
언니는 중학교 2학년 ‘열등반’의 반장이 되면서 마치 억눌렸던 보상심리가 터져버린 듯 더욱더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앞머리를 닭 볏처럼 세우고 외모를 가꾸며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자, 그 공백은 고스란히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밖으로 나도는 맏딸에게 집착하며 쏟아내는 엄마의 신경질은 집에 남은 내 몫이었고, 집안은 언제나 날 선 말들이 오가는 아슬아슬한 전쟁터 같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언니가 일찍 귀가하는 날이면 엄마의 얼굴에는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나를 향한 모진 말들을 견디면서도, 나는 오직 엄마의 그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언니가 제발 일찍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부모님은 우리를 집안팎으로 부리면서도 용돈 한 푼 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고 하교 후에 즉석떡볶이를 즐길 때, 나는 돈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준비물비나 과제비를 핑계로 거짓말을 해서 얻어낸 푼돈이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렇게 구걸하듯 얻어낸 동전 몇 닢에 기대야 하는 현실은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초라했다.
가장 가슴이 시렸던 건 엄마의 ‘잠금장치’였다. 엄마는 외출할 때 안방 문뿐만 아니라, 안방에 있는 검은 자개장롱의 왼쪽 칸까지 열쇠로 잠그고 다녔다.
그 안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건오징어와 간식, 그리고 현금지갑이 숨겨져 있었다.
창가에 시원하게 보관해 둔 사과 같은 과일들도 오직 엄마만의 몫이었다.
엄마는 정서적 교류나 응원 대신 문제집 한 권을 툭 던져주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그 문제집을 검사하는 것이 엄마가 아는 교육의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늘 권위적인 목소리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 고아 안 만들려고 이혼하지 않고 사는 거다.”
문방구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말.
1화에서 기록했던 평창 장터의 기억들.
당시 시집살이와 아빠를 견디다 못해 짐을 쌌던 엄마는,
짧은 소동이 아니었다. 엄마를 찾아내 다시 집으로 데려온 아빠의 애걸이었든 외가 식구들의 설득이었든, 엄마는 결국 제 손으로 다시 짐을 풀었다.
정말로 우리를 버리려다 그 발길을 돌렸던 것이었다. 엄마에게 그 회군(回軍)은 자식들을 ‘고아’로 만들지 않겠다는 인생 최대의 결단이자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엄마는 그 희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우리를 더욱 옥죄었다. 엄마가 선택한 그 인내는 자식들에게는 평생 갚지 못할 부채를 지우는 잔인한 족쇄가 되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중심에서 모두의 관계를 갉아먹었다. 조부모님부터 막내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엄마가 쳐놓은 결핍과 히스테리의 그늘 아래서 우리 중 누구도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시절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오직 통제와 의무,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열네 살 소녀의 한숨만이 돌벽 집의 벽을 타고 소리 없이 흘렀다.